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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도토리 Mar 26. 2022

일하기 싫은 날

열심히 일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일하기 싫은 날이 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뭐 언제는 그렇게 일이 하고 싶었던 적이 있나 싶지만, 그래도 유난히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이 있다. 할 일이 메일함에 잔뜩 쌓여있는데, 지금 하지 않으면 결국 내일 혹은 미래의 언젠가의 내가 꾸역꾸역 어거지로 하면서 엉성한 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리란 것을 알면서도 당장 오늘 지금 이 순간 머리가 텅 비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은 그런 날이 있다. 그리고 그런 날들은 회사 생활이 지속될수록 빈번히 그리고 길어진 모습으로 찾아왔다.


 처음 일하기 싫어진 시기가 왔을 때 나는 내가 일에 대한 권태감이나 번아웃이 온 것으로 생각했다. 아, 내가 이 일을 꽤 오래 하다 보니 지겨워졌나 보다. 일이 익숙해져서 깊은 생각을 하기 싫어지고 어떻게든 미루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것으로 판단했다. 리프레시를 위해 팀을 바꿔보자는 큰 결심을 했다. 변화를 무서워하는 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다행히 회사가 자의에 의한 팀 이동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았던 관계로 기존에 하던 업무와 180도 다른 업무를 하는 팀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다시 신입의 군기가 바짝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일도 미루지 않았다. 새로운 업무 영역인 만큼 관련 책들도 읽고 기존 업무 문서들도 열심히 찾아보며 공부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3개월쯤 지났을까, 주위 사람들이 익숙해지고 보고서의 낯선 용어들이 익숙해지는 순간 나는 다시 예전의 게으른 나로 돌아갔다.




 게으름을 부리면서 최상의 결과물을 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들이 일주일 넘게 끙끙거리던 업무를 하루 만에 뚝딱해내면 참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후다닥 만들어 낸 결과물은 어딘가 모르게 듬성듬성 구멍이 나 있기 마련이다. 우선 급하게 만들었으니 자잘한 실수가 많다. 헉소리나는 오타는 물론이고 깊게 고민하지 못한 탓에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뻔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작업을 하면서 시간을 두고 동료와 상사의 피드백 없이 후다닥 만들었으니, 보고 결과가 그리 좋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의 썩어빠진 정신 상태를 개조할 수 있을까. 팀을 옮기는 것의 효과가 3개월 남짓 지속되었으니, 회사를 옮긴다고 해도 한 6개월 정도 바짝 긴장하다 그 이후로는 예전의 나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다. 일을 잘해야 연말 보너스도 받고 진급도 하지!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더라도, 연말 보너스를 받는 나는 미래의 나이고 놀고 싶어 하는 나는 현재의 나이다. 미래의 나는 항상 현재의 나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 몰래몰래 웹서핑을 하고자 하는 즐거움이 미래에 높은 성과급을 받고 빠른 진급을 하는 성취감을 이기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태를 계속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적당히 다니자 하는 주의였지만서도 일을 미루고 멍 때리는 행위는 당장의 업무 퀄리티와 직결되고 나아가 나의 평판에 해를 끼치는 일이었다. 당장은 성과급과 진급을 포기하는 정도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냐에 대한 생존의 문제였다. 무기력한 나를 그대로 두기엔 그 희생의 정도가 크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생활습관을 바꿔보자고 생각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아직도 가끔 회사에서 아무 화면이나 켜 두고 멍하게 마우스를 움직이는 날들도 많다. 하지만 미룸의 강도가 예전보다 낮아졌다.


 우선 내 성향을 파악하기로 했다. 나는 시작을 어려워한다. 시작을 하면 어떻게든 하는데 시작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시선과 통제가 있을 때 더 효율을 내는 사람이었다. 데드라인 없는 업무는 정말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때로는 뭉개다 자연소멸하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거 오늘 퇴근 전까지 꼭 해줘’라고 떨어진 일은 어떻게든 마치고 퇴근을 한다. 자율과 창의를 강조하는 요즘 시대와 동떨어진 인재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성향의 내가 최소한의 업무 효율을 내기 위해 해오고 있는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이 중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루틴 만들기


나의 아침 루틴

 Atomic habits라는 책이 있다. 습관 형성을 위한 방법을 설명해주는 유명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해야 하는 일을 분명하고, 매력적이고, 하기 쉽게 만들라고 조언한다. 이 책에서 읽은 내용과 자기 계발 팟캐스트 및 유튜브에서 들은 내용을 조합해 나만의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일어나서 출근을 한 뒤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일련의 행동들을 루틴화 하는 것이다. 루틴은 구체적일수록 좋으며, 내가 특히 추천하는 방법은, 내가 습관적으로 어렵지 않게 하는 일상의 행동들을 루틴에 끼워 넣으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저녁 루틴]

오메가3를 먹는다 > 20분 동안 방에서 요가를 한다  > 바로 샤워를 한다  > 치실을 한다  > 책을 30분간 읽는다

 이 중에서 오메가3을 먹는 일과 치실을 하는 일은 내가 매일 빠짐없이 하는 일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미 오랜 기간 습관화가 되어 쉽게 지킬 수 있는 일이다. 저 행동들을 하는 것에 부가적인 노력이 들지 않으며, 하지 않으면 오히려 찝찝할 정도이다. 이렇게 지키기 쉬운 일들을 루틴의 사이에 끼워 넣으면 전체 루틴을 유지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회사의 루틴도 이렇게 세워보자.


회사 루틴)

출근을 한다 > 1분 간 책상을 정리한다  > 텀블러에 물을 떠 온다 > 노트에 적는다 >  1시간 동안 오전 집중타임을 가진다 > 점심을 먹는다  >  비타민을 먹는다

 이렇게 회사에서의 일을 구체적으로 단계화하면 각 단계를 완료하였을 때마다 매우 작은 성취감이 쌓이게 된다. 이렇게 쌓인 성취감은 루틴 전체를 완료하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 요즘 시중에 이런 루틴 관리 앱이 많이 나오고 있다. 사용해보지는 않았지만 마이루틴 이라던지 루티너리 등의 어플이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나는 Streaks라는 앱을 꽤 오랜 기간 사용하고 있는데 쉽고 직관적인 부분이 마음에 든다. 나에게 맞는 루틴을 최대 6단계로 설계할 수 있고 총 4개의 루틴을 만들 수 있다. 각 단계를 완료하였을 때마다 아이콘을 누르면 색이 변하면서 완료 처리가 된다. 나는 아침/출근/자기 계발/자기 전 루틴으로 나누어서 활용 중이다. 가끔 루틴을 완료하기 위해 땀 하나 안 나게 설렁설렁 운동을 하고 운동 완료를 체크하거나 대충 머리카락만 줍고 청소 완료를 체크하거나 하는 날도 있지만 대부분의 날은 열심히 루틴을 지속하고 있다. ‘업무에 연속 2시간 집중합니다’라는 루틴은 21년 한 해 82.9%의 달성률을 기록했다. 20%는 하루에 연속 2시간 집중 근무를 하지 않고 놀았다는 뜻이지만 이 정도로도 대단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하루 루틴을 망쳤더라도 루틴을 놓아버리지 말자는 것이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들이 자주 하는 실수가 한 번의 실수로 전체를 놓아버리는 것이다. 오늘 너무 피곤해 루틴을 지키지 못했다면, 내일 다시 시작하면 된다. 생활 습관도 복리가 붙는다. 꾸준히 실천하다 보면 1년 전과의 나와는 달라진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집중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자.
Forest, 내가 심은 나무들

 이렇게 루틴을 짰다고 하더라도 가끔 실행이 어려울 때가 있다. ‘1시간 오전 집중타임을 가진다.’라는 단계에 왔지만, 카톡도 좀 하고 인스타도 들어가 보고 하다 보면 어느새 30분은 후딱 지나가 있기 마련이다. 자기 의지력이 강한 사람들은 스스로 집중력을 되찾을 수 있겠지만 나는 여기서도 반강제적인 도구를 활용하고 있다.  Forest라는 앱이 바로 그것인데,  핸드폰 잠금 앱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구매한 몇 안 되는 유료 어플 중 하나이다. 시중에 다양한 핸드폰 잠금 앱들이 있지만 여타 강제적인 잠금 앱과 달리 Forest는 인정에 호소한다. 앱을 켜고 내가 집중하고 싶은 시간을 선택한다. 30분이면 30분, 2시간이면 2시간. 시간을 선택하고 시작을 누르면 그 시간 동안은 핸드폰을 만져서는 안 된다. 정해놓은 시간 전에 핸드폰을 만지면 나무가 죽는다. 정해진 시간을 채우면 건강하게 자란 나무가 나의 숲에 심어진다. 이렇게 한 그루씩 나무를 심다 보면 나의 숲은 빽빽한 나무로 가득 차게 된다. 강제성도 없고 효과가 있을까 싶지만, 핸드폰을 멀리하는 습관을 의외로 잘 길러준다. 나무를 죽이게 되면 죽은 나무가 나의 숲에 남는다. ‘나무야 미안해. 핸드폰 안 만지고 일할게…’ 하는 마음으로 모니터에 집중한다. 유치하겠지만 나에게는 잘 맞는 시스템이다. 꼭 Forest가 아니더라도 나의 집중을 도와주는 방법을 잘 찾아보자. 유튜브에서 도서관 소리를 들으면서 일하는 것도 좋을 것이고, 클래식 음악이라든지, 핸드폰을 서랍 속에 넣는다든지. 저마다의 집중력 강화 방법을 사용해보자.  



극약 처방


 루틴과 폰 잠금 어플은 나를 꽤 생산적인 인간형으로 바꾸어주었다. 하지만 이따금 찾아오는 나의 의지가 와르르 무너진 날에는 극약 처방이 필요하다. 해야 할 일이 쌓여있는데 너무나 하기 싫은 날, 루틴을 실행하라는 알람이 핸드폰을 울리고, Forest어플에는 죽은 나무들이 한 그루씩 생겨가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큰 마음을 먹고 팀장님 혹은 직속 상사에게 이야기한다. 어제 시키신 자료 오늘까지 드리겠습니다! 이제 나는 배수진을 쳤다. 죽어가는 나무도, 나의 일상에 커스터마이즈드된 루틴 관리도 살리지 못했던 나의 의지가 다시 샘솟는다. 말을 뱉었으니 뭐라도 해놔야 한다. 등에는 땀이 나고 눈은 바쁘게 모니터를 휘젓는다. 어떤가? 도움이 되긴 하지만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고 수명이 단축될 단점이 있을 수 있다. 우리 모두 극약처방까지 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루틴을 지키고 나무를 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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