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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도토리 Mar 22. 2022

영원한 안식처는 없다

열심히 일하지 않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아직까지 적을 두고 있는 나의 회사는, 요즘 대기업들이 다 그렇겠지만 그중에서도 근속연수가 유난히 짧고 퇴직 평균 나이 역시 낮은 그런 회사다. 우리 회사의 직급 체계에는 일반 회사의 차부장급에 해당하는 ‘시니어 매니저’라는 직급이 있는데, 우리는 그들을 주로 시니어라고 불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 단어 그대로의 의미인 시니어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회사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성공적인 황금 동아줄 라인을 타는 데 성공한 이들은 30대 중후반부터 팀장 타이틀을 달기 시작한다. 임원들의 나이도 대부분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다. 60대는 사장급 임원진 이외에는 볼 수는 없다. 임원도 팀장도 되지 못한 4,50대가 어떻게 되는지는 다들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시니어리스한 회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지독히도 성과 중심적이다. 그 해 본인의 평가에 따라 같은 연차, 같은 직급이더라도 성과급이 몇 천씩 차이가 난다. 기본급의 수준이 나쁘지 않다면 성과급이 플러스알파의 개념일 테니 뭐 좀 배가 아프긴 하더라도 그냥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회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고 관대할 리는 없지. 성과급의 비중이 높다는 이유로 기본급이 동일 업종 대비 현격히 낮다. 이렇다 보니 연말 평가 시즌에는 모든 이들이 예민하고 날카로우며 신경질적이다. 일부 Top고과를 받은 소수의 직원들만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두둑한 성과급으로 뭐 하면 좋을지 즐거운 상상에 빠진다. 성과 중심적이라는 표어는 얼핏 보면 합리적으로 들린다. 일을 잘한 사람에게 돈을 더 준다는 이 명제야말로 얼마나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를 잘 함축하고 있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시험지를 풀어야 하는 학창 시절과는 달리 회사에서는 성과를 명확히 평가할 기준이 없다. 나와 코드가 잘 맞는 윗사람을 잘 만났느냐에 따라 똑같이 일을 하더라도 매 해 평가가 극과 극을 오가기도 한다. 모두에게 상위 고과를 주지 못하게 하도록 회사는 머리를 써서 저평가 TO를 고정시켜놓았다. 팀에서 무조건 몇 명은 최하위 고과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니 일 잘하는 팀에 끼어있다가는 평균적인 능력으로도 최저 평가를 받아 일 년간 손가락을 빨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부서장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일 못하기로 소문난 이를 일부러 팀에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에게 최저 고과를 주고 나면 나머지에게 보통의 고과를 챙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섭지만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Boiling Frog


 30대라는 연령구분구간대가 익숙해질 때쯤이 되자 나의 현 상태 혹은 상황 혹은 꼬라지에 대해서 냉정하게 진단해보게 되었다. 서서히 물이 끓는 줄도 모르고 헤엄치는 개구리처럼 각박하고 살벌한 회사에 어쩌다 보니 익숙해져 불안하게 장기근속 중인 나의 재직 상태, 이직을 하기엔 애매하고 소소한 나의 커리어, 미혼과 비혼 그 어디쯤 걸쳐진 marital status, 먹고 살만은 하지만 금수저와는 거리가 먼 나의 경제 상황. 이 속에서 어느 순간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에 압도되기 시작했다. 나는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다. 걱정이 많은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걱정은 많은 반면 대책 없이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이 모순되는 특성이 어떻게  공존하는가를 설명을 해 보자면 이렇다. 나는 항상 어떠한 상황에 닥치면 미리 다양한 시나리오를 써가며 온갖 걱정을 한다. 그러고 나서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넘어가버린다.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건강하지 않은 삶의 태도라 할 수 있겠다. 걱정을 할 것이라면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상상해서 그에 따른 케이스별 해결책을 모색하던지, 그게 귀찮다면 애초부터 걱정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꽃노래를 부르던지 둘 중 하나만 해야 할 텐데, 실컷 걱정은 해놓고 뒤에 가서는 금세 귀찮아져 버려 긍정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걱정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회사 생활 초반에는 이런 걱정이 크지 않았다.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어리기도 했다. 그리고 사원으로서의 업무 스페셜티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덧 아직 젊다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어리지 않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실무자보다는 관리자급에 가까워지자, 내가 특기라고 생각했던 능력은 대리급에서나 먹히는 잡기에 불과한 역량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HR의 특별관리대상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채 권고사직의 순번을 기다리는 때가 곧 다가올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걱정은 점점 과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분간은 망할 것 같지 않은 회사에서 내 몫의 임금을 받으며 열심히 톱니바퀴를 굴리고 있는 게 분명한데도 이상하게 불안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점점 현재를 잠식하며 현실에 대한 불만까지 커지게 만들었다. 왜 더 좋은 회사를 들어가지 못했는지? 왜 나는 그동안 돈을 이것밖에 못 모은 거지? 나는 왜 제대로 된 커리어를 쌓지 못했지? 나는 아직 현재 진행형임이 분명한데도 이미 현재가 완료된 사람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해결책을 생각해보았다. 상담을 받아볼까 생각했지만 불안의 원인이 명확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상황에 대한 해결 없이 치료를 받는 것이 의미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실제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더라도 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안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인정받는 직원이 되자.

 그래. 사실 마음을 먹는다면 열심히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열정이 부족한 사람이더라도 열심히 해야 살아남는다면 내 남은 에너지를 다 쏟지 못할쏘냐. 하지만 그동안 내가 봐온 회사라는 곳은 내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고 밤새워 보고서를 준비한다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곳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복잡하고 더러운 이해관계가 얽힌 이곳에서 과연 내가 몸 바쳐 일을 한다고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임원이 된다면 과연 노후가 보장되는 것일까? 그간 보아온 임원들은 임원이라는 고급 계약직 타이틀을 다는 순간 하루살이 목숨의 시작이었다. 임원이 되자마자 몇 번의 ceo보고 후에 조용히 사라진 이들이 몇이었던가... 이 방법은 잠시 유보해보는 게 좋겠다.


로또 1등을 하자.

 이건 포기하지 않은 나의 궁극적인 꿈이다. 한 주도 빠짐없이 계속해서 도전해왔고, 앞으로도 도전할 것이다. 로또뿐 아니라 가끔은 스피또와 연금복권을 추가해 확률을 높이려는 시도도 잊지 않고 있다. 로또는 매주 5천 원 씩 구매하고 있다. 5천 원 X 52주, 1년에 26만 원.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이 돈을 아낀답시고 언젠가 내 손에 들어올지도 모르는 로또 1등 당첨금을 놓치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다. 


재테크를 해보자.

  열심히 공부 중이다. 수년 전부터 푼돈이지만 주식을 해왔고, 요새는 국내 주식, 미국 주식, EFT, 원자재, 단기투자, 장기투자, 올웨더 투자, 퀀텀 투자 모두 건드려보고 있다. 적은 돈을 굴리던 시절에는 적게 잃었고, 좀 큰돈을 굴리던 시절에는 크게 잃었다. 웬일로 좀 벌었다 싶으면 여지없이 한 번에 깎아먹고 있다. 올해 수익률 역시 웅장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드문드문 신문과 책을 보면서 공부는 하고 있는데, 공부로 나아지는 영역이 맞는가 싶기는 하다. 다만 언젠가는 빛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오늘도 눈물을 흘리며 영웅문 어플을 켠다.


퇴사해서도   있는 일을 찾자.

 사실 회사가 나에게 당신은 더 이상 쓸모가 없으니 회사를 나가라고 한다면 다른 곳을 찾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는 부끄럽게도 여태껏 회사를 옮겨본 일이 없기 때문에 이직이라는 행위는 나에겐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그렇다 보니 남들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내가 다른 회사에 다닐 수 있을지 혹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그러한 확신이 생긴다면 이 답 없는 답답함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것 같았다.


 우선 언젠가 써먹을지 모르는 토익 점수를 다시 땄다. 간만에 두뇌를 풀가동하여 시험을 보는 일은 생각보다 유쾌했다. 그리고 학원에 등록했다. 영상 번역 학원.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대학 때부터 미드로 다져진 쓸데없는 잡지식과 그나마 예전부터 좋아했던 영어를 단순히 곱하니 영상 번역을 공부해보자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몇 군데 학원을 검색해 본 뒤 후기가 좋았던 한 곳에 등록했다. 매주 목요일 두 시간,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은 과제가 많아 벅찼지만 새롭고 즐거웠다. 오랜만에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 매주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출석하며 수업을 들었다. 강의 등록 전 한 가지 나와의 약속을 했는데 선생님이 내주는 과제는 하나도 빼먹지 말고 다 해보자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내 의지로 등록했던 수업이었기 때문인지 의외로 끝까지 쉽게 지켜낼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수업을 수료했다. 그것이 끝이었다. 기초반이라 큰 기대는 없었지만 엄청나게 대단한 무언가를 배우지는 못했다. 다만 이 업이 어떤 것인지 겉핥기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느낀 점은? 마음이 편해졌다. 단순히   수업을 들었을 뿐이지만 뭔가 안심이 되었다. 언젠가 내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일이 없어지더라도, 내가 회사에 나가 일하던 시간만큼을 투자하여 열심히 공부한다  자신을 부양할  있는 소소한 수익 정도는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머릿속으로 걱정에 잠겨 있을 때는 몰랐지만 생각보다 세상에는 내가 선택할  있는 일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나는 종강   번도 번역 책을 다시 열어본 적이 없다. 번역으로  푼도 벌어보지 못했으며, 퇴사 후에도 번역을 2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가능성을  몸으로 직접 경험한 것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답답하던 나에게 산소호흡기를 달아 주었다.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는 (지금 회사보다 문턱이 조금 낮은)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는 것도 있을 것이다. 지금껏 내가 만들어 낸 소소하고 맥락 없는 커리어도 어딘가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지금 회사에서의 내가 가진 불안과 긴장의 레벨이 한 단계 낮춰질 수 있다.


 쫄지 말자. 미래는 우리의 걱정보다 어둡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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