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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도토리 Mar 27. 2022

열정 사회의 고단함

과잉 열정 시대


 세상은 우리에게 다양한 종류의 열정을 강요한다. 신입사원에게는 패기를, 과장급에게는 노련한 관리 능력을 지니라고 채근한다. 대리급에게는 빠릿빠릿한 업무 능력을, 임원급에게는 미래에 발맞추어 나가는 전략 수립 능력을 요구한다. 여성은 집안일과 회사일 모두를 완벽하게 해내기를 바란다. 학생들에게는 공부에 온 힘을 쏟으라 말하며 노인에게는 나이가 들어도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라고 한다. 이러다 태어나서 죽는 시점까지 힘만 주는 삶이 될 것 같다. 언제쯤 되어야 힘을 주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 오는 것일까? 이 정도면 웬만한 열정을 가진 사람도 나가떨어질 것 같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라는 책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 많을 것이다. 벌써 10여 년 전 출판된 책이지만 워낙 베스트셀러였던 터라 아직까지도 여러 매체에서 인용되곤 한다. 그 유명한 1만 시간의 법칙이 이 책을 통해 유명해졌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의 93년도 연구 결과를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인용한 것이다. 익숙한 개념일 테니 짧게 간추리면 바이올린 연주자들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와 나머지의 실력 차이는 대부분 연주 시간에서 발생하였으며, 상위 집단의 평균 연습 시간은 1만 시간 이상이었다고 한다.

 글래드웰은 책에서 그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1만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의 구성이 중요하다고 학자다운 고급스러운 어투로 이야기했지만 어쩌다 보니 한국에서는 한국 스타일대로 ‘어떤 분야에서든 당신이 성공하고 싶다면 1만 시간 이상을 투입해라’라고 단순 명료하게 해석되어 사용되고 있다. ‘1만 시간의 법칙’이 불변의 성공 법칙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1만 시간의 법칙을 검색해 보면 ‘주식투자 1만 시간의 법칙’,  ‘개발자 1만 시간의 법칙’과 같이 다양한 형태로 가공된 1만 시간의 법칙을 볼 수 있으며 ‘행복을 위한 1만 시간의 법칙’과 같은 책도 볼 수 있다.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제발 행복을 위해 1만 시간의 노력을 투입하자!라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과연 1만 시간 이상 노력하면 우리는 어떤 분야든지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내가 매일 3시간씩 10년을 부동산을 진심을 다해 공부하면 난 10년 뒤 한남 더 힐에 살 수 있는 것일까? 1만 시간 법칙에 대한 여러 후속 연구 결과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는 지금, 19년 미국의 또 다른 연구팀의 조사 결과가 눈을 끌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1만 시간이 어떤 일을 능숙하게 만들어 주기는 하지만, 뛰어나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연습이 실력을 결정짓는 주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뭐냐고? 결국, 유전자다.


 공부라면 지능, 운동이라면 체력, 체스라면 작업기억력이 엘리트가 될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다고 한다. 그렇다. 결국 타고나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타고나길 처음 보는 길도 기똥차게 잘 찾아간다. 누군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거리낌 없이 너스레를 떨면서 말을 잘한다. 어떤 사람은 혼이 서려있는 피피티를 어렵지 않게 만들고 누군가는 처음 접하는 게임도 금방 끝을 보곤 한다. 참 불공평하다. 나는 밤새워 준비한 프레젠테이션도 버벅거리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는데, 저 동료는 급히 잡힌 보고도 자료를 한번 쓱 보고 나서는 하나의 막힘도 없이 술술 이야기한다. 내가 3시간씩 10년 동안 프레젠테이션 고수에게 사사를 받은 후에는 저 동료보다 보고를 잘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일 것이다. 결국 누구나 자신이 가진 뛰어난 부분이 있고 이는 노력으로 쉽게 따라잡을 수 없다. 특히 목표가 세계적인 음악가, 올림픽 메달리스트, 저명한 학자라면 1만 시간은 물론 10만 시간을 투입하더라도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우리 모두가 최고가 될 필요는 없다. 나는 최고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하는 편이다. 물론 당연히 스스로가 항상 예뻐 죽겠고, 매일매일 내가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는 않다. 이상하게 일진이 안 좋은 날은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의 이런이런 부분이 아니었다면 더 좋은 내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건강하지 못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삶에 만족하는 편이다. 매우 만족까지는 아니지만 적당히 만족 혹은 다소 만족에 동그라미 칠 정도는 된다. 나는 적당히 평범하지만 적당히 행복한 회사원이고 이 삶에 어느 정도 만족한다. 그리고 적당한 회사원으로 살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노력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태도는 현재에 안주하게 만들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이다. 그런 무기력한 태도로는 개인적인 발전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고 회사에서는 이런 직원은 절대 채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해 보자. 우리의 평범한 회사 생활에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 필요했던가? 애초에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요구하는 능력이라는 게 무엇인가? 문서를 작성하고, 현황을 파악하고, 보고를 진행하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자잘한 오퍼레이션을 수행하고…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이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이런 일에는 대단한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일을 받는 처음에야 벅차고 힘들 수 있겠지만 결국 경험이 쌓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 힘을 들이지 않고도 루틴하게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많다. 물론 평범한 회사원들과는 비교되지 않는 치열하고 경쟁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지속적인 추가 노력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면? 평범한 회사원으로도 괜찮다면? 나는 지금 내가 해내는 업무 결과에 만족한다면? 딱히 칭찬을 받지는 않지만 욕을 먹지도 않는 무난한 업무 수준에 만족한다면? 1만 시간까지의 엄청나 노력은 필요하지 않다. 내 에너지 한에서 적당히 업무를 처리하는 것으로도 차고 넘친다. 누군가는 여우와 신포도 우화를 언급하며 내가 그 정도 밖의 능력이 안 되는 거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뭐 그래도 상관없다. 이게 내가 낼 수 있는 능력의 최대치라고 해도 크게 나쁠 것도 없어 보인다.




 회사에서 열정은 과대평가되어있다. 모두들 열정이 필요하다며 이를 강요한다. 이러한 열정 강요는 관습처럼 굳어져서, 사장은 이사에게, 이사는 부장에게, 부장은 과장에게, 과장은 대리에게 열정을 강요한다. 시킨 일보다 더 한 일을 해오기를 바라고, 일만 하고 집에 가는 게 아니라 적당히 술자리에도 얼굴을 비치고 때로는 야근도 하는 그런 꽉 찬 인재를 원한다.


 회사생활에 있어서 열정은 임원 혹은 임원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월급을 많이 받고 싶으면 당연히 플러스 알파로 일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나는 회사를 이끄는 임원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부품이 되어도 상관없다. 회사에서 부품이라는 사실이 나의 가치를 저하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 오작동 하지 않는 부품이 될 정도의 노력은 할 준비가 되어있고, 이를 위해서는 꼭 1만 시간 혹은 그 이상의 노력을 들여야 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나처럼 열정 없이 일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충분히 회사생활 잘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회사 생활을 막연히 두려워하는 사회 초년생들이 이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안심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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