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친구의 친구를 소개받은 적이 있는가? 친구와 나는 평소에 그 흔한 말다툼도 한번 안 했을 정도로 잘 맞아왔는데, 걔와 친하다는 또 다른 이는 정말 나와 공통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경우가 가끔 있다. 내 친구가 쟤랑 친하다고? 쟤랑 어떻게 놀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당연하게도 사람은 입체적이고 다면적이다. 사람의 성격은 다양한 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인 조각이 뒤섞여있다. 이러한 성격 조각들은 항상 동일하게 발현되기보다, 특정 상황, 특정 인간관계에 따라 발현되는 조각의 조합이 달라진다. 일부 특성 조합들이 상황에 따라 우세종처럼 발현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내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가족들과 있을 때는 ‘가족들을 챙기는 예민한 장녀의 성격’이 나타날 것이고 오래된 회사 선배들과의 모임에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실없는 소리도 잘하는 막내 성격’이 나온다. 현재 회사 동료들과 있을 때는 ‘시니컬하고 현실적인 성격’이 대학교 친구들과 있을 때는 ‘둥글둥글하고 무난한 성격' 이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무슨 다중 인격을 묘사해 놓은 것 같지만 누구나 다들 이런 복합적인 성격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물론 모두 내 안에 혼재되어 있는 특성들이며 다만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서 특정한 나의 모습이 좀 더 강하게 드러나게 된다.
친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내가 내 친구와 함께할 때 드러나는 성격 조합이 있다. 나는 그 조합이 친구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음 내 친구도 사람 많은 곳은 싫어하는 조용한 성격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친구와 유대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친구의 그런 면은 친구의 다양한 성격 중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 그도 그 나름의 다양한 성격 조합을 가지고 있고 그 친구가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는 다른 조합들이 나오게 된다면? 그 다른 조합이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조각들이라면? 친구의 친구가 항상 내 친구일 수는 없다는 당연한 결론이다.
회사에는 왜 싫은 사람이 많을까를 이야기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다. 회사의 인간 군상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회사가 사람을 채용할 때는 보통 적게는 한 번 많게는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 인원을 선별한다. 일반적인 회사라면 이 사람이 정상적으로 기능할지,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 등으로 큰 사고를 치지는 않을지를 검증하는 단계를 통해 직원을 뽑고, 그렇게 뽑힌 사람들이 모여 한 공간에서 일하게 된다. 그렇다면 얼추 한번 걸러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날것의 정제되지 않은 환경에서 접하는 인간 군상들과 비교해 점잖고 이성적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얼핏 생각해보면 맞는 말 같다. 확률상으로 길거리에서 만난 랜덤한 1인보다 내가 일하는 회사의 과장이 매너 있을 확률이 높아 보이지 않은가?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런 일은 없다. 면접 때 면접관이 졸았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본인의 본색을 꼭꼭 숨기고 면접을 본 것이 아닐까? 아니면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인가? 하는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싫다는 말로는 온전히 묘사할 수 없는 다양한 군상의 싫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회사다. 저 먼 옛날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도 이렇게 다채로웠을까? 아니면 수백 년에 거쳐 다양한 지랄 맞은 상황을 만나면서 각각 다채롭게 지랄 맞은 사람들로 진화한 것일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회사라는 공간에서 싫은 사람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성격의 특정 부분만을 강조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그들도 밖에서는 저렇지 않겠지, 다들 친구도 있어 보이고 결혼도 했고 평범하게 사는 것을 보면 회사에서만 지랄 맞은 것일 수 있다. 내가 가끔은 듬직한 장녀이면서, 순진한 막내가 될 수 있듯이 그들도 일머리 하나 없이 지적질만 하는 꼰대이면서 든든하고 사려 깊은 아빠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인간의 다면성 때문에 회사에서는 더더욱 유난스러운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다. 가뜩이나 다들 회사에서는 나름의 생존전략을 위해 각자 자신의 특성 중 회사에서 살아남기에 특화된 영역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을 터이다. 그러다 보면 내면에 가지고 있는 동정심,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대감, 유머 감각과 동정심 따위는 잠시 묻어둘지 모른다. 대신 회사에서는 뇌가 주관하는 많은 특성 중 추진력, 성과주의, 경쟁의식 등이 우세종이 되어버린다. 회사 밖에서 만나면 참 좋은 옆집 이웃일 수 있으나 회사에서는 그 누구보다 싫은 사람으로 나를 괴롭힌다. 왜 저렇게 말하지? 왜 그렇게 행동하지? 때로는 순수한 호기심이 들 정도로 신기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얼굴을 쳐다보기도 싫고 숨소리, 목소리 그 사람이 존재하는 공간까지 싫어지게 만드니 이 또한 대단한 능력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정도로 사람들을 회사에서 만났다면 우선 유감의 말을 전한다. 회사라는 공간이 주는 강제성 때문에 밖에서라면 근처에도 안 갈 인간 군상을 숨 냄새까지 맡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서 겪어야 한다는 것이 회사 생활의 x같음 중 가장 최고봉일 것이다.
나 역시 그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좋았던 사람들도 많고, 사적으로도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의 친교를 맺은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 역시도 또라이 질량 법칙의 예외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몇몇 진상들을 접할 수 있었다. 뉴스에 나올 정도로 심한 사람은 없었으나, 직장내괴롭힘금지법이 그 당시에도 있었다면, 집에서 요건을 검색해가며 이 또라이를 신고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할 만한 정도의 아슬아슬한 진상들은 꽤 있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안 그래도 회사라는 공간에 잔뜩 겁을 먹었던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뾰족한 수가 없어 보여 혼자서 힘들어하곤 했다. 스스로가 무력하게 느껴졌다. 회사에서의 경험이 쌓일 대로 쌓인 요즘 들어서는 회사에서 사람 때문에 힘이 들거나 너무나 싫은 사람이 생길 때면 과거에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곱씹어본다. 이게 무슨 고약한 취미냐 싶겠지만 나에겐 나름 소소한 도움이 되었다. 여기서는 핵심적인 세 명만 적어보기로 한다.
1 팀장 O 씨
말할 때 대명사를 쓰지 못하게 하였으며, 내가 쓰는 수첩과 펜의 스타일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지적했었다. 남자를 뽑고 싶었는데 내가 와서 아쉽다는 망언을 매우 자주 하곤 했다. 엑셀을 못 하는 것이 본인의 큰 장점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엑셀은 숫자에 대한 감을 익히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2 팀장 H 씨
팀원이 휴가를 쓰는 것을 싫어해 온갖 회사에도 없는 이상한 자체 HR 규정들을 만들어 팀원들이 따르도록 강제하였다. 촌각을 다투는 일도 아니었는데 추석 당일 쉬고 있는 나를 불러 일을 시켰다. 생각해 보니 생일날 퇴근하려던 나를 붙잡고 일을 시키기도 했는데 이쯤 되면 내가 쉬는 걸 그냥 싫어했던 게 아닌가 싶다.
3 팀장 L 씨
사람 자체가 나쁘지는 않았는데 비효율의 끝판왕이었다. 자료 수집이 취미라 아무도 요청하지 않은 업무를 팀원들에게 시키고는 그 결과물은 본인 만의 전용 폴더에 고스란히 묻어버리곤 했다. 매달 새로운 보고 양식을 만들어 매번 새롭게 회신해야 했으며 나중엔 거짓말까지 해가며 일을 시켰는데 ‘ㅇㅇ팀에서 시키는 일이니 준비해주세요’ 라는 말에 낌새가 이상해서 확인해보니 ㅇㅇ팀은 시킨 적 없는 일이었다.
지금이야 소소해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참기 힘든 순간들이었다. 실제로 회사를 옮기겠다고 마음먹고 면접을 보러 다니기도 했고 무속신앙의 힘을 빌려 ‘회사 상사랑 너무 안 맞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는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으며 O팀장에게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로) 사무실이 떠나가라 호통을 들었을 때는 내가 회사에서 운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저 들 중 나에게 지속적인 데미지를 입힌 인간은 없다. 나의 마음속 상처는 보다 친밀한 관계에서부터 발생했다. 저들은 애초에 나에게 단기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단기적인 상처가 그 당시에는 매우 깊게 느껴졌다. 하지만 조직은 바뀌고 사람들은 퇴사를 하며 그렇게 나의 사내 인간관계는 변화해왔다. 저 들 중 몇몇은 꽤 인연이 끈질기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그들과 나의 인연은 끝이 났고, 끝나지 않은 인연들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그들이 그만두든지 조직이 바뀌든지 내가 나가든지 셋 중 하나이다. 저 중 임원까지 살아남아 마주칠 때마다 특유의 시니컬한 말투로 조롱을 담은 인사를 건넸던 1 팀장 O 씨 역시 얼마 전 있었던 임원 물갈이의 희생양이 되었다. 회사를 나간 뒤 재직 시절에 벌인 불미스러운 일로 블라인드에서 언급되며 잔잔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들 때문에 화가 나지 않으며, 언젠가 그들이 나에게 주었던 스트레스와 상처도 빛이 바래가고 있다. 그 들이 나에게 의미가 없는 사람인만큼 그들이 나에게 준 상처도 그만큼 미미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