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에 고로 존재한다는 어느 철학자(데카르트)의 말처럼 우리 인간의 생각이 만들어낸 가장 심오한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일 것 같습니다. 현재가 있기 위해선 과거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니까요.
이런 현존재의 근원에 관한 수수께끼는 종교와 철학 그리고 과학에 다양한 사상적 발전을 불러왔는데, 그래서인지 우리들은 절대적인 힘의 능력이나 그로 인한 믿을 수 없는 결과물에 많은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경외감이란 느낌을 가져다주는 대표적인 음악 작품으로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 합창>을 들 수 있는데, 작곡가인 베토벤은 자신의 이전까지 교향곡의 형식이 관과 현악기만을 위주로 작곡되어온 전통과 달리 당시 독일의 낭만주의적 감성을 잘 살리고 있는 실러의 시를 끌어와, 교향곡 안에 독창과 합창으로 이루어진 성악 부분을 삽입시키며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음악 양식 중 하나인 교향곡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성악이 포함된 교향곡 9번의 4악장에서 드러나는 경외감은 사용된 가사의 내용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는데
우리 인류를 지구 상에 존재하게 하여 준 절대자의 힘에 대한 경외감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hygZLpJDNE
음악은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선 환희, 그 순간을 존재하게 해 준 절대자에 대한 경외감 같은 모든 극적인 감정들을 한데 모아서, 엄청난 에너지를 통해 절정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종종 자연이 만들어 낸 거대한 풍경으로부터 깊은 경외감을 느끼곤 하는데, 독일의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구어스키는 바로 이 거대한 자연의 힘을 카메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Rhein II> 1999, Photograph, C-print mounted to acrylic glass, 190 cm × 360 cm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는 구어스키는 뒤셀도르프를 가로지르며 도도히 흐르는 라인강을 렌즈에 담아냈는데, 이 작품이 주는 우리에게 전달하는 느낌은 '절대적인 고요'와 '무한한 거대함'이라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고요함이란 나의 본질을 가장 근원으로 되돌려 놓는, 다시 말해 정신적 육체적 상태를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는 정신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기에 아무 소리도 없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자극하는 소음이 전혀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만 들리는 한적한 바닷가에서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면, 비록 음악 소리가 들리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고요하고 편안함을 느낄 것이라는 거죠.
그렇기에 고요함을 다른 의미로 명상이나 종교 등에서 경험하는 것과 같이, 정신이 내면으로 편안하고 깊게 가라앉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음향적 환경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고요한 산사에 울려 퍼지는 정갈한 목탁소리 역시 최고의 고요함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거대함이란 물리적으로 시각이 인지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공간에서 받을 수 있는 초월적 느낌이라고 생각되는데, 우리가 무엇인가를 본다는 물리적 현상은 반사된 빛이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을 뇌에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각적 인지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어떠한 감각은 오직 정신세계에서만 가능할 테죠.
현실세계의 물리법칙 하에서는 아마도 불가능한 이런 거대함에 대한 개념은 역시 종교나 철학적인 관점에서 정신 수양 등을 통해 우리의 정신력과 사고력이 발달한다면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해탈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제가 생각하는 거대함을 가장 잘 묘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다시 한번 구어스키의 사진 작품 <Rhein 2>를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면, 내가 바라보는 대상인 자연과 관찰자인 나 사이에 아무런 방해물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현실 세계에서는 내 눈만을 통해서는 볼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는 확장된 공간을 한 번에 바라볼 수 있다는 독특함이 관찰자의 사고를 사로잡기 시작합니다.
이렇듯 사고가 하나의 깊이로 집중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주변의 소음이 귀를 통해 뇌로 전달되는 통로가 막혀버리고 내가 떠올리는 것 이외에는 어떤 소리도 느껴지지 않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이런 놀라운 고요함과 거대함은 이미지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소리로도 경험할 수 있을 듯한데, 바로 다음의 음악을 통해서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인 <파르지팔>의 전주곡인데요
https://www.youtube.com/watch?v=JeJ0zqMyGNA
쇼펜하우어와 동양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후 완성된 곡으로, 거대한 구조를 가진 오케스트라 곡이지만 아주 고요하고 장엄한 느낌을 전달해 줍니다.
영국의 화가 윌리엄 터너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감상자의 감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하는데
Norham Castle, Sunrise, c.1845, oil on canvas, Tate Britain 91 cm * 122 cm
그의 작품 중 하나인 <놀럼성의 일출>은 우리에게 숭고함과 경건함이란 감정과 만날 수 있는 색다른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감정들은 신의 기적으로 여겨지는 자연의 완벽함을 관찰하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들인데, 그림을 다시 살펴보면 검푸른 차가운 색조가 옅은 푸른색의 하늘 아래 서서히 자리를 잡고, 그 주변을 점점 따스한 느낌의 노란색이 지배해 나가면서 호수의 풍광이 만들어 내는 감동이 이미지 속에 재현되고 있습니다.
터너의 주요 특징인 느슨한 붓놀림과 희미한 형체들은 당시에는 미완성이라는 비판도 종종 받았지만 오히려 감상자들의 마음속에 희미하게 자리 잡고 있는 정체모를 신비함을 서서히 숭고함과 경건함으로 고양시켜 나가며 색다른 감동을 선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