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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Mar 22. 2022

Emotion Insights 10 - 평온 혹은 풍요

옛날 한국의 마을들은 저마다 동네 어귀에 커다랗고 오래된 느티나무들을 보유하고 있었죠. 먼길을 걸어서 우리 마을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시원한  그늘의 휴식처를 제공하고, 마을 사람들도 들로 농사일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잠시 앉아서 하루의 노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주 고마운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더운 여름이었다면 이런 정자나무 옆에 있는 우물에서 찬 냉수를 한 바가지 떠서, 푸르름이 만들어 주는 나무 그늘 아래에 시원함을 즐기는 당시로는 최고의 호사가 아니었을까요?


 헨델은 그의 오페라 <세르세>에 이런 나무 그늘이 만들어 내는 평온함과 풍요로움을 잔잔하고 차분한 리듬 그리고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를(그가 활약한 바로크 시대를 생각해보면 매우 특징적인) 통해 구현해 내고 있는데, 지금까지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리아 "Largo - 라르고(나무 그늘 아래서)”가 바로 그 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7XH-58eB8c



여유로운 주선율 위로 흐르는 긴 여운을 남기는 장식음이 사용된 화려한 바로크적인 노래를 카운터 테너가 아주 유려한 목소리로 불러줍니다. 잠시 조용히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을 하면 우리를 둘러싼 많은 불안과 걱정이 사라지고 평온함이 찾아오는 만족스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Hiroshi Sugimoto – North Atlantic Ocean, Cape Breton, 1996



스기모토 히로시는 전 세계의 다양한 바다를 여러 해에 걸쳐 찍은 연작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세계 각지의 바다 풍경은 저마다 고유한 빛과 경계선들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시각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작가는 이 작업들을 바다와 자신과의 관계를 엮어나가는 '통찰 여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다를 볼 때마다 차분한 안도감을 느끼는 나는 통찰의 여행을 시작한다"


파도가 멈춘 그곳에는 시간마저 정지한 듯 멈춰 선 거대한 수면 위로 은은한 빛이 잔잔하게 펴져나가고 있고, 이 광경을 찍은 사진을 보는 이들을 깊은 명상의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국내에서도 한남동에 위치한 미술관 리움에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사진을 전시하는 공간은 주변을 아주 어둡게 만들어서 온 시선을 사진에만 집중하도록 해주었던 전시 큐레이션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무런 물리적 경계가 보이지 않는 무한의 공간은 갇혀있던 우리의 정신에 자유로움을 더하고 이런 느낌은 자연스럽게 평온하고 풍요로운 편안함으로 연결되곤 합니다.


  




다시 음악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현대 음악의 대가죠. 소리를 통해 무한의 공간감을 만들어 내어 우리에게 평온과 풍요를 들려주는 작곡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놀이 공원등에 있는 '거울의 방'에서 연속적으로 설치된 거울에 맺힌 자신의 이미지가 무한히 반복 복제되는 광경을 경험하곤 합니다. 이렇게 확장되며 무한히 멀어져 가는 내 안의 타자들을 바라보면, 우리는 내부로 끊임없이 가라앉으며 차분해 지곤 하는 또 다른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명상이 아마도 이런 느낌을 전달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아보 패르트는 다양한 소리의 실험을 통해 이런 인식 현상을 음악으로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J6Mzvh3XCc




아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 - Spiegel im spiegel>입니다.






포레는 영원한 안식이라는 믿음에 관한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자신의 음악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레퀴엠>은 자신의 장점인 아름다운 선율과 특유의 몽상적인 화성이 고스란히 들어있으며,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난 지금도 그의 <레퀴엠>을 듣는 우리들에게 편안함과 정신적 풍요로움을 선사합니다. 


포레의 <레퀴엠>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Pie Jesu" (자비로운 예수)"도 한번 들어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xTf14maKtT8







풍요로움과 자유, 맑은 태양이 내리쬐는 천사의 땅

비와 흐림의 나라 영국에서 나고 자란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에게 난생처음 방문한 캘리포니아의 눈부시게 밝은 풍경은 천국과도 같이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그는 두드러진 날씨의 특징이 가장 잘 포착되는 캘리포니아 주택의 수영장과 수영장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에 많은 관심이 생겨났고, 그런 예술가적 관심은 작가의 대표작인 3부작 <Splash - 풍덩> 시리즈를 완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호크니가 보여주는 화면은 고요하고 풍요로우며, 사막 위에 펼쳐진 끝없는 하얀 모래밭과 그위로 나란히 전개되는 푸른 하늘 같은 끝없는 자유가 느껴집니다. 강렬한 태양에 반짝이는 수영장의 물보라에 왜 그가 그렇게 집착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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