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순수하고 열정적인 노력의 과정을 통해 마침내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면, 아마도 우리는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의 어떤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성취감이라고 불리는 감정이 바로 그 느낌의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런 감정에 관한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 중에 올림픽 경기 같은 것이 있습니다. 4년마다 열리는 대회를 위해 그 오랜 세월 묵묵하게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에만 정진해 온 국가대표 선수가 자신이 참가한 올림픽 종목에서 메달을 따게 된 순간, TV 화면에 잡힌 그들의 얼굴에는 아주 밝은 느낌의 감정이 떠오르는데, 그 표정이 바로 그 성취감이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취감을 많은 경우에 승리의 느낌과 연결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운동경기뿐만 아니라 시험과 같이 특정 목적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며 노력하여 얻은 결과를 통해 우리는 성취감이라는 감정을 진하게 경험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어떤 일이나 경쟁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 우리는 당당해지고 자신감에 충만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죠.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 Oil on Canvas, 94.8 cm × 74.8 cm
독일의 낭만주의 시대 화가인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의 <방랑자>가 바로 이런 자신감과 당당함 그리고 성취감을 정확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림의 한가운데에 놓인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 정상에 올라선 주인공은 자신의 발아래를 지나는 구름으로 덮인 저 너머의 산봉우리들을 꼿꼿하게 서서 당당한 자세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작가의 가장 대표 작품인데요, 인기가 높은 작품이다 보니 그림에 관해서 다양한 해석들이 등장합니다. 많은 비평가들은 산 정상에 당당한 자세로 서있는 주인공의 모습, 그리고 발아래 펼쳐진 안개 위로 저 멀리 보이는 산의 형상, 또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그렇기에 주인공의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가능한 점 등을 가지고 그림에 내포되어 있는 다양한 내러티브를 읽어 내는데, 저는 이 그림이 가지고 있는 특이점 중에 하나로 산에 오르고 있는 주인공의 옷차림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인물이 입고 있는 멋진 정장 패션이 특이점으로 보이는 이유는 한눈에 보기에도 아주 가파른 그림 속의 산을 오르기엔 적합하지 않은 차림이기 때문인데요, 묘사된 산의 형태가 바위가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는 아주 오르기 힘든 구조인데, 어떻게 저렇게 잘 차려입은 모습으로 산 정상에 올라설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죠.
이런 지점에서 바로 당시 사람들에게 산이 암시하고 있는 의미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낭만주의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겐 산이 가지고 있던 의미가 이전 시대와는 극적으로 바뀌면서, 산의 정상에 올라선다는 것이 당시 사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즉 높은 산의 정상에 선 인간은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의 영역에서 더 높은 신의 영역에 다가가고 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 등이 읽히고 있는 것이죠.
이렇듯 당당하고 멋진 모습으로 정상에 올라 거센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로 저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점차 사람들의 관심이 그때까지 미지로 남아 있던 신비로운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신비로운 영역에 도전하며 성취감을 찾고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새로운 의욕을 고취시키고 있던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19세기 후반에 접근하면서 색다른 감각의 성취감과 승리에 대한 감정이 표현된 교향곡이 등장하게 됩니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번 - 거인>이 그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일 텐데요,
베토벤이 이끌어낸 승리와 성취감이 작곡자를 둘러싼 사회적 그리고 스스로의 정신적 업악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면, 말러의 음악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경 삼아 악에 대항해서 승리를 거두는 선의 모습과 같은 좀 더 인간 본질을 표현하고자 하는 다양한 소리들의 집합으로 쌓아 올려지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UypHJHFBq4
1악장은 긴 겨울을 지나 봄이 소생하는 모습을 소리로 묘사해 내는데, 부드럽고 느리지만 평이하지 않은 개성적인 울림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울림으로 시작된 교향곡은 승리와 성취감의 극적 효과를 더하기 위해 3악장에서는 재미있는 민속동요인 "Frere Jacques"를 단조로 바꾸는 풍자를 통해 어두운 장송 행진곡을 이끌어 내기도 하며 결론을 향한 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교향곡은 폭풍과 악을 찬양하는 팡파르로 시작되는 4악장에서 긴 여정의 끝을 맺고 있는데 이 마지막 악장에서는 많은 악기들이 투쟁에 참여하며 힘겨운 사투를 벌이다가 끝끝내 폭풍우를 몰아내고 드디어 승리에 도취된 금관이 화려하고 우렁찬 음색으로 총출동해서 음악에 사로잡혀 있던 청중들을 신비하고 즐거운 낙원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환경과 사회 모든 부분에서 점점 더 암울한 전망이 커지고 있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이 어려움들을 무난히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성취감과 승리의 감정을 만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