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지는 없는 항해
어릴 적부터 나는 주변 사람들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 꿈이 크든 작든, 꿈을 이야기하면서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가 즐거웠다. 당장 어떻게 이룰지 보이지 않더라도, 꿈을 나누다 보면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넘쳐났다.
돌이켜보면, 이런 도전 정신은 가족과 환경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나는 거의 6개월을 벙어리처럼 지냈다.
영어 한마디도 꺼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학교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 했을 ‘고등학교 차석 졸업’이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 여기엔 어머니의 말씀이 큰 힘이 되었다.
“희주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꿈을 향해 도전해 봐.
그러면 어느덧 그 꿈 이상으로 훌쩍 성장해 있을 거야.”
어머니의 말씀은 내게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단단히 심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작은 도전들이 하나둘 현실이 되었고, ‘이 한계는 과연 내가 스스로 세운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은 더 큰 도전을 향해 내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환경도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매 순간이 도전이었기에, 혹 실패해도 잃을 것이 별로 없다고 여겼다.
망설이다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 설령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해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두드리는 모든 문에서 잃을 건 거의 없었으니, 도전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짧게 끊기는 듯 보이는 경력들을 쌓으며 “connecting the dots”를 외쳤지만, 한편으로는 조바심과 고집도 함께 커졌다.
미국에서 외길만 파고들다 크게 다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내 마음부터 지키자”라고 다짐했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다.
사실 내가 나 자신을 온전히 믿지 못했기에, 더 많이 부딪히고 더 많이 아팠던 것 같다.
“난 여기서 잘해야 해. 다른 길을 벌써 찾을 순 없어.”
이런 생각은 결국 나를 좁은 궁지로 몰고 갔다.
‘이곳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수개월간 고민 끝에 결국 어렵게 퇴사를 결심했다.
그때는 한 번 무너지면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가 전부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한번 도전에 성공했다.
처음 기회가 찾아왔을 땐 가능성보다 불가능성이 훨씬 커 보였지만, 나에게 '그나마 나은 선택지'가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이 끌리는 길을 택해 도전해 보기로 했다.
여러 갈등과 초조함이 있었지만, 결국 나는 또 한 번의 도전을 해냈다.
이 도전이 가능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나는 스스로를 온전히 믿지 못해 망설였고, 변화가 두려웠다.
그런데 누군가는 아무런 대가나 이유 없이 “네가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가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결국 그 믿음이 나를 한 발짝 더 내딛게 했고, 마침내 도전할 용기를 줬다.
이 과정을 통해 깨달은 건, 누군가가 내게
“사람을 먼저 믿어주는 게 우선일까, 아니면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 신뢰를 얻는 걸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믿어주는 게 먼저”라고 답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잘해서가 아니라,
나를 온전히 믿어 주고 기다려 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덕분에 한 걸음 한걸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선뜻 믿음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길만 보였고, 그 길만 고집하던 내가 정말 어렵게나마 붙들고 있던 것을 놓아 버렸을 때, 내 앞에 펼쳐진 건 낭떠러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딛고 걸어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이었다.
낡은 고집을 버리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선택지가 열렸다.
이번 도전을 통해, 붙잡고 있던 걸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새 가능성도 열릴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외길만 고집하던 내가,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 길 위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