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라는 어려운 말
최근 몇 주 동안 끊임없이 바쁜 일상을 보냈다.
회사를 쉬는 동안 하고 싶었던 일이 참 많았다(나는 그것을 ‘해야 하는 일’이라고 구분했다).
일을 쉬며 나에게 새로운 ‘일상’과 ‘루틴’이 좀씩 자리 잡아가고 있었는데, 요 근래에는 그조차도 소화하기 어려운 일정들을 감당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나의 ‘꾸준히 해오던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나를 위해 ‘하고 싶었던 일’을 뒤로하고, 다른 ‘해야 할 일’을 리스트에 가득 채웠다.
• 집안일, 공사, 지인 초대, 가족·지인과의 시간, 집다운 집을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구매·청소, 병원…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마무리하면서도, 꾸준히 해오던 일을 자꾸 미루게 되자 마음에 그리움과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나의 일상이었던 글을 다시 쓰는 데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알게 모르게 무리를 하고 있었다.
일상에서 불만과 자책감도 늘어났다. 묵묵히 무언가를 하는 듯하면서도, 조금만 심기가 건드려지면 불같이 화가 났다.
나는 노년에 건강을 잃은 할아버지를 돌보시며 묵묵히 역할을 감당하시는 할머니께 자주 하게되는 말이 있다. 80대 중반의 연세에 환자를 돌보는 것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할머니, 짜증 내면서 하는 것보다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대요. 할머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할머니가 더 힘들잖아요.”
그게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할머니께 드린 말씀이었지만, 오히려 이 말은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밀려오는 일들, 시간을 온전히 쏟고 싶은 만남과 대화, 더 잘 꾸리고자 하는 가정, 주변 관계.
모든 것을 내 삶에 버겁게 끼워 넣을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다 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의 기준 이상으로 다 잘하고 싶었지만, 결국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에 '아, 왜 나는 이 정도밖에…'라고 되뇌곤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라고 말하지만, ‘적당히’를 모르는 내가 ‘충분해’라고 인정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다.
한 채널을 우연히 보았는데, 대기업 15년 경력 후 사업 2년 차인 워킹맘 여성을 인터뷰하며 ‘워킹맘’에 대한 구독자들의 고민이 많다며 조언을 부탁했다.
그녀의 대답이었다.
회사에서 일찍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회사의 일원으로서 미안함이 생기고, 또 아이에게도 충분한 시간을 쏟을 수 없기에 똑같이 미안한 엄마가 된다고.
“집안일, 육아, 회사 일까지 다 완벽할 순 없지만, 대신 내가 있는 그 자리, 그 시간에 충실하면 돼요.”
인터뷰 내용을 들으며 나의 마음 상태도 조금은 정리된 듯했다.
나의 잣대가 ‘완벽’이 아니라 ‘충실한 나의 모습’이라면, 그 시간에 더 몰두하되 결과에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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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번 연재글 업로드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완결까지 좀 더 꾸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 인용 출처: [퇴사한 이형] (2024. 11. 21.) 40대 대기업 퇴직자가 알려주는 퇴사 후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