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어찌어찌 살아갑니다
몸과 정신이 아파왔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가장 큰 고민은 퇴사였다.
한창 커리어를 쌓아가도 모자랄 나이에, 그 이후가 확실치 않은 퇴사라니. 한국에 돌아오고, 한 번도 이렇게 단번에 그만두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저 이직해요."라는 반박이나 질문 없는 퇴사도 당연히 꿈꿔 보았다.
상황이 여유로웠다면,
내 자존감이 바닥을 치지 않았더라면,
내가 더 건강했더라면,
무조건 고민해 보았을 경로였다.
퇴사를 회사에 이야기했을 때, 다음 계획을 묻는 질문이 가장 많았다.
"일단 조금 쉬고 생각하려고요."
나의 대답에 걱정스러운 표정도 많았다. 최근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제 주부가 되는구나?라는 시선도 꽤나 되었다.
회사 사장님께서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그만두기에는 조금 너무 젊다. 아쉽다."라고 하셨다.
내 평생 일을 그만두는 것도 아닌데, 미래가 정해지지 않은 결정은 모두에게 당황함만 안겨주었다.
그렇게 무턱대고 한 퇴사는 나에게 더 불안감만 줄 것 같았다. 실제로 갑자기 더 많아진 시간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것이 아니면, 그리고 당장의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으면 포기자, 실패자가 된 것만 같았지만, 나를 돌보는 것을 우선시하고 살아가다 보면 '나를 알아가는 시간', '새로운 것을 그려보고 도전해 보는 시간'이라는 소중한 기회로 점차 변화되어 간다.
불안감은 안타깝게도 매일매일 나를 찾아온다. 잘 지내다가도 문득 걱정이 되고 불안에 휩싸이는 밤도 많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더더욱 괴롭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후회는 없다. 같은 순간이 또 오더라도 나를 우선순위에 두고 결정을 한다면, 나는 같은 선택을 해야 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매우 조심스럽다. 나는 운 좋게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상황이 힘들고 자신을 갉아먹는다 해도 모두가 그 상황과 환경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상황이 괴롭고 힘들어도 마주한 현실은 냉혹할 때도 있고, 엄청난 책임감이 잇따를 때도 있다. 하지만 어느 상황에서든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또는 어떠한 상황으로부터 지독한 toxic을 마주하고 있다면, 그것이 가까운 상대이든, 상황이든, 나를 위해 온전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때로는 지독한 솔직함이, 주변에 도움 요청이, 또는 어려운 거절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시간과 주변의 도움을 받아 이 시간을 보내본다. 나의 집중을 다른 곳으로 옮겨보는 것도 한몫한다.
퇴사는 내가 일하는 내내 입으로만 외치고 시간 등 여러 가지 핑계로 미뤄두었던 전문 분야 공부와 자격증 공부도 시작하게 해 주었다. (아직.. 은 매우 시작단계다)
이번에 깨닫게 된 것이지만, 내심 내 마음속에는 학교와 직장 외에 다른 방법으로 공부나 지식을 터득할 수 있는 기회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뚜렷한 학위나 프로젝트만 내게 정작 커 보였던 것일까.
하지만 실무에서 부족한 부분을 알고 시작한 공부는, 더 배워야 하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해 준다. 학교나 직업이라는 시스템 안에 있지 않더라도, 나의 시간을 들이고 계획하여 성장하는 법을 배운다.
아직은 집중력이라고는 콩알 같아서, '엉덩이로 공부한다'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 또한 천천히 나아져보고자 한다.
그 외에, 내게 평소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하고 싶었던 것들은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 본다.
운동 (헬스, 테니스)
집 꾸미기 (대청소, 공사 및 수리)
공부 (자격증, 엑셀)
멘탈 헬스 (Mental Health)
책 읽고 글 쓰기
지금 주어진 시간이 언제까지 얼마나 나에게 허락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내게 가치 있는 일들로 채워나가기 위해 노력해 본다.
아래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된 문구이다.
나의 든든한 지원자인 교수님께서 공유해 주신 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이다.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th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the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 Reinhold Niebuhr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내게 주시고,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며,
그 둘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 라인홀드 니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