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기회비용에 두 손 두 발을 들다
학교와 교회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편입 소식을 전하며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믿던 순간, 학비 고지서가 날아왔다. 눈앞에 적힌 금액은 청천벽력 같은 숫자였다.
나는 오하이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같은 주 내의 대학을 다니며 in-state 학비 혜택을 받아왔다. 성적 장학금과 학교 장학금까지 더해져 부담은 오히려 줄었고, 나와 가족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같은 주 국립대로의 편입이라면 이 혜택이 당연히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학비는 지금보다 두 배 가까이 비쌌지만, 편입 후 ‘2년만 감내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준비에 몰두했다.
그러나 고지서의 금액은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처음엔 학교의 착오라고 생각했다. 내 신분을 잘못 적용한 단순한 실수일 거라고. 곧바로 국제학생처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지만, 돌아온 답은 한결같았다.
내가 받은 혜택 자체가 예외적인 오류였던 걸까. 반복해서 묻고 설명했지만, 그들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당장 입학을 앞둔 나로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미국에서의 행정 절차는 한국과 달리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기에 더 막막했다. 때마침 고등학교 시절의 호스트 가족과 연락이 닿았다. 사정을 들은 그들은 망설임 없이 멀리까지 차를 몰고 와 나를 데리러 와 주었고, 한 시간 반의 거리를 함께 달려 편입 예정 학교까지 함께 갔다. 그 차 안에서 나는,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잠시나마 붙들었다.
고속도로 위에서 나눈 대화는 순식간에 시간을 흘려보냈다. 곧 도착한 편입 예정 학교는 같은 오하이오라도 도시 규모부터 달랐다. 웅장한 캠퍼스를 바라보며, 언젠가 이곳에서 더 넓은 세상과 새로운 기회를 마주할 수 있으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국제학생 오피스에 들어가 모든 서류와 신분증을 내밀고 차분히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담당자의 대답은 단호했다.
“유학생이 in-state 학비를 내는 경우는 없습니다. 단 한 번도.”
나는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의 혜택을 증명하는 레터를 내밀며 간절히 설명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 자체가 오류였던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대화는 끝내 제자리였다. 어떤 여지도, 가능성도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연락처만 남기고, 별다른 답을 얻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돌아오는 길은 씁쓸했다. 마음속에서 그렸던 2년 뒤의 더 넓은 세상, 새로운 기회는 조용히 사라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편입하게 되었어”라고 전하던 입은 이제 “안 가게 되었어”라는 말을 반복해야만 했다.
마지막까지 꾹 참고 결과가 확정되면 전하리라 다짐했는데, 내 뜻과는 또 다른 변수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