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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캐리 Oct 29. 2020

꿈을 꾸는 은섬에게. 두 번째

글을 쓰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


먹고 사는 게 너무 피곤해서 명색이 작가 지망생이라고 하기엔 너무 글을 안 쓰는 것 같은 순간들에도 역사 이야기를 한 번쯤 써본 적은 있었다. 역사적 지식은 많지 않기에 구상만으로는 사실상 퓨전 장르에 가까운 스토리였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 데에는 <아스달 연대기>와 <왕좌의 게임>의 영향이 컸다.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여러 가지 부족 사람들 중에서 과연 왕이 될 사람은? 빠밤! 

음모와 계락 속에 피어나는 사랑! 따단!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 몰아치는 배신과 또 다른 동맹. 뚜둥!

와, 너무 심한 명작이 탄생할 것 같은데 어떡하지. 나 너무 유명해지면 어떡하냐고!








물론 이때까지 수도 없이 봐온 고리타분한 이야기겠지만, 언제나 내가 생각해낸 이야기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글을 쓴다. 진도는 빨리 나가지 않지만 예전처럼 생각나는 대로 나불대는 게 아니라 진짜 하나하나 따져 가며 캐릭터 구상을 하고 있다는 느낌에 꽤 만족스럽기까지 하다.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해낼 때는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했다. 내가 뭔가 대단한 것을 쓰고 있다는 믿음, 모든 작가가 그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스스로 정하길 역사물이 아니고 퓨전 장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역사적 배경은 맞춰줘야 하는 거였는데 역사 공부를 했던 건 정확히 대학 졸업 직전 자격증 하나 만들어 놓겠다며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했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수능을 두 번 치고 자격증까지 땄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다시 칠 요량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태생이 느긋한 성격이며 당장 눈 앞에 닥쳐야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 당연히 꾸준하게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습관성 벼락치기). 하지만 누가 공부 안 한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시험을 망친다고 해도 물론 속은 조금 쓰리겠지만 내 인생에 큰 좌절을 가져다줄 것도 아니었기에 공부하는 것이 난생처음으로 재밌었다. 1급 따면 좋고, 아님 말고. 그래도 오랜만에 무언가를 공부한다는 것은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나름대로 열정을 다해 공부했다. 

역사 다음으로 시험을 치려고 하는 것은 한국어였다. 이것이야 말로 글을 쓰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작가인데 맞춤법을 틀릴 수는 없다는 강력한 마음속 외침이 있었다. 실제로 내가 쓴 글에서 틀린 말이나 엉망인 맞춤법을 발견했을 때는 머리를 다 쥐어뜯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으니까. 그래, 잘 쓰지는 못하더라도 정확하게는 쓰자. 수려한 문장과 상상력은 나중에 따지더라도 일단 띄어쓰기부터 정확하게 하자. 

하지만 내가 꾸물거리는 사이, 나와는 다른 아주 재빠른 사람들이 이미 고사장을 꽉 채워버리는 바람에 원서접수 조차 하지 못했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코로나때문에 고사장이 훌쩍 줄어버려 원서접수는 더 어려워져 어쩔 수 없이 계속 시험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귀차니즘 환자에게 이런 식으로 명분을 만들어주는 망할 바이러스. 






배경 지식을 쌓는 것과는 별개로, 글을 쓰는 것 역시 엄청난 공부가 필요한 법이었다. 어떤 날에는 진짜 엄청난 명작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대부분의 날에는 뭔가 잘 풀리지 않아 답답했다. 그럴 때는 그냥 이번에 쓰고 있는 이 작품도 훗날 사람들의 입에 미친 듯이 오르내릴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공부하고 연습하는 작품일 것이라 생각했다. 습작은 많으면 좋으니까. 지금의 이 너저분한 글들도 전부 내 빵빵한 필모그래피의 거름들이 되기를.

2030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신인 작가의 시작에는 이 작품이 있습니다!

과연, 진짜 왕이 될 사람은? 빠밤!

음모와 계략 속에 피어나는 절절한 사랑! 따단!

끝이 없는 동맹과 배신, 그 속에서 발견하는 진짜 왕의 자격은? 뚜둥!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연습작이 아니야. 명작 스멜이 너무 난다고.






글을 쓸 때 언제나 참고하려고 하는 두 권의 책이 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와 안젤라 애커만, 베가 푸글리시의 <트라우마 사전>이라는 책이다. 첫 번째 책은 글쓰기 전반에 대하여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 책이고, 두 번째 책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이해함으로써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를 를 만들어 내는 것에 많은 도움을 준다. 

<트라우마 사전>에서는 과거의 겪은 사건이나 어떤 경험들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가 현재에 어떤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갑자기 분노하며 사람을 죽일 수 없고, 별안간 사랑에 빠져 허우적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모든 캐릭터가 행동하는 데에는 마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동기이고 동기에 의해 행동이 나오고 그 행동에 대한 결과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을 때 시청자(관객)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소위 말하는 개연성이라는 게 생겼기 때문에이다. 


그동안 내가 써왔던 이야기들을 살펴보자면, 모두 그 동기가 부족한 상태였으며 그로 인해 개연성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단편적인 에피소드들만 엮어 놓았으니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캐릭터마저 입체적이지 못했으며 결국에는 내가 제일 극혐하는 민폐여주까지 만들어 내고 말았던 것이다. (미안해... 내 주인공들아... 난 너희들을 정말 사랑한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쓰기를 포기할 생각도 없었고, 그럴 이유도 딱히 없었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이 어딨어요. 막 쓰다 보면 잘 써지는 거지. 뻔뻔함과 당당함 그게 작가 지망생의 무기다. 






은섬(송중기 분)은 노예로 잡혀가 땅굴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일만 한다. 자신 때문에 와한족의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탄야(김지원 분)도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곧 땅굴 속에서 벗어나 새 세상으로 나갈 계획을 세운다. 아직은 포기할 수 없는 게 너무 많고 새로 만난 사람들과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탄야 역시 은섬이 죽은 줄 알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지만 힘을 가지기 위해, 자신에게 그리고 와한족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 사야(송중기 분)와 함께 대제관이 될 계획을 짠다.

그들의 계획은 성공할 것인지, 둘이 다시 만나게 될 것인지가 드라마 후반부의 주된 내용이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은섬이가 탈출에 성공하고 탄야가 대제관이 될 것이라는 것쯤은 다 예상할 수 있다. 주인공의 지략이 실패하면 그 드라마를 무슨 재미로 보나.







우리의 삶은 드라마가 아니어서 안타깝게도 예측할 수가 없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말을 무수히 많이 들어왔지만 슬프게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사람이 세운 대부분의 계획은 딱히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 수 없다. 은섬이가 말한 것처럼 아무것도 바라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숨이 쉬어지니까 쉬고 그저 눈이 떠지니까 일어나고 그저 씹히니까 아무거나 처먹어대는 짐승처럼 살 수는 없다. 다소 과격한 표현법이기는 하지만, 꿈꾸지 않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작은 소망마저 모두 잃은 채로,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이 짐승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내가 세워놓은 플랜대로 되지 않더라도 또다시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진짜 인간의 삶일지도.







<아스달 연대기>에서 마음에 드는 점 중의 하나는 여성들도 모시는 사람을 호위하면서 무술을 한다는 점이다. 더 중요한 건 그 여성 캐릭터가 여자임에도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묘사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냥 그런 것으로 나온다. 여자도 어라하(족장 같은 개념)가 될 수 있고, 대제관이 될 수 있다. 

사실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남존여비 사상은 모두 조선 후기에나 생겨난 것이고 우리 역사 대부분의 시기에는 지금보다 대체로 평등을 유지했다고 배웠다. 그래서 나도 그러 이야기를 쓸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성별에 상관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사야는 말한다. 강력한 힘을 이용해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다 죽여야 진짜 왕이 될 수 있다고. 그렇게 되면 내가 이그트(드라마 속 설정에서 특이한 힘을 가진 뇌안탈과 사람의 혼혈)인 것을 모두가 알게 되어도 상관없지 않느냐고. 하지만 타곤(장동건 분)은 말한다. 내가 죽여야 하는 사람들이 나의 대칸 부대, 나의 새녘족, 나의 연맹인들이기에 그럴 수 없다고. 그들은 이그트 왕을 원하지 않는다고. 

어떤 시대에나 진짜 리더에 관한 논쟁은 있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이끌어야 하는지, 진짜 자격이 무엇인지, 우리는 늘 궁금했고 많은 이야기가 그것에 대해 그려왔다. 나 역시 그런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역사 선생님들은 언제나 역사를 배우면서 현재 우리 삶에 적용시켜야 한다고 했다. 나 역시 역사적 배경을 잘 그려내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어떤 사람인지 나의 생각을 말해보고 싶다. 

기대하시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역사의 이야기! 빠밤!

우리가 원하는 리더는 과연 누구인가? 따단!

음모와 계락 속에서도 잃지 않는 사랑과 우정, 그 속에 피어나는 진짜 사람의 이야기! 뚜둥!









(모든 사진의 출처는 해당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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