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지배했고,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은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선생님 삼아 공부하고 있었다. 문득 아이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지 궁금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밖에 나가서 그냥 가만히 바람만 맞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날씨에 스터디카페에 처박혀 꾸벅꾸벅 졸면서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도 우리 스카는 공기가 좋으니 많이들 오세요. 사랑합니다.)
나는 인터넷 강의를 틀어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한 고등학생 아이에게 묻고 싶어 졌다.
넌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니?
우리가 아는 꿈은 크게 두 가지 뜻이다.
첫 번째는 자는 동안에 머릿속을 지배하는 어떤 영상들. 사람에 따라 흑백이기도 하고 컬러이기도 하며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너무 생생할 때는 진짜 아프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한다는 그것.
얼마 전 꿈을 꾸었다.
거울을 보니 앞머리 쪽에 흰머리카락이 삐죽 올라와 있었다. 놀란 마음에(진짜 개 깜짝 놀람) 그 가닥을 잽싸게 뽑고는 다시 거울을 보는데 순식간에 군데군데 머리가 하얘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 나이에 벌써 머리 꼬락서니가 이러면 어쩌나 싶어 허둥지둥 대고 있었는데 잠이 깨버렸다.
그 바쁜 아침 시간에도 일어나서 곧장 '흰머리 나는 꿈'을 검색해 보았는데, 흰머리가 나는 꿈은 그동안의 걱정거리가 해소되고 재물이 들어오는 꿈이라는 해석이 있었다. 꿈 덕분인지 이상하게 그날 우리 스터디카페 매출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좀 더 자세히 검색을 해보고 나서야 거울로 흰머리를 보는 것은 두려움과 불안의 상징이라는 말도 보게 되었다. 역시 뭐든지 자세히 알면 안 되는 거야. 대충 보고 대충 생각해야 돼. 그리고 뭐 어때. 안 불안하고 안 두려운 사람이 어딨다고. 심신안정에는 정신승리가 짱.
꿈의 또 다른 뜻은 이루고 싶은 소망이나 희망, 넓게는 인생 전체의 목표이자 좁게는 가지고 싶은 직업.
졸고 있는 아이에게 묻고 싶었던 것은 두 번째 의미의 꿈이었다.
내가 살았던 곳의 바로 옆에는 동네 전체가 아카데미라고 불릴 정도로 학원이 밀집한 동네가 있다. 나도 한때는 그곳에 있는 건물 중 하나에 시간 맞춰 들어가곤 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그랬던 걸까. 그때는 어떻게 하면 학원 수업을 째고 농구장에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냥 대놓고 농구장에서 살았다면 지금쯤 그 구단에서 뭐라도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1교시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쏟아지는 잠에 정신을 못 차리면서도 뭘 위해 그렇게 일찍 일어나 공부했던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소용없는 걸. 그냥 책이나 많이 읽고 영화나 많이 보고 글이나 많이 써둘걸.
나는 하염없이 헤드뱅잉을 하고 있는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어차피 네가 서울대쯤 가는 거 아니라면 대학은 딱히 의미가 없단다, 친구야. 어차피 아주 높은 확률로 취업을 위해 또 시험공부를 하게 될 것이니, 그냥 지금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렴. 아니면 주식 투자 같은 걸 해서 돈이나 왕창 땡겨 놓든지, 영어 인강을 보고 있을 게 아니라 부모님을 졸라 일찌감치 유학이라도 가 진짜 네이티브의 언어를 익히는 것이 더 낫지 않겠니?
더 솔직하게는,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공부를 줄이고 그것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네가 멀쩡하게 공무원 준비를 하다가 서른 살에 갑자기 (예를 들어) 래퍼가 되려고 한다면 부모님은 아마 까무러치겠지만, 넌 아직 18살이니 사고를 치려면 지금 쳐. 충분히 그래도 되는 나이니까. 아직까지는 너에게 이것저것 해보다 안 되면 포기해도 되는 시간들이 있단다.
하지만 독서실 사장이 되어서 차마 이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 그저 아이의 책상에 박카스 하나만 살짝 놓아주었다.
그리고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 꿈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tvN/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김원석/ 장동건, 송중기, 김지원, 김옥빈 등 주연)
이 드라마에서 꿈은 특별함의 상징이다. 드라마에서 꿈은 잠을 자면 만나게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아는 개념은 아니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못 보는 것을 본다는 의미가 강하다. 아직 꿈이라는 것의 개념이 없던 역사 이전의 시대에 꿈을 꾼다는 것은, 그러니까 꿈을 '만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인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 탄야(김지원 분)는 그렇게도 꿈을 만나고 싶어 하고, 은섬(송중기 분)은 꿈을 통해 자신의 쌍둥이 형제인 사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은섬은 자신이 가진 비범한 능력 덕분에 와한족의 꿈, 즉 희망이 된다.
드라마의 외부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이렇다.
<아스달 연대기>는 우리나라 최초로 역사 이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뿌리 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선덕여왕>등 임팩트 있는 역사물을 만들어낸 두 작가의 작품이기에 시작 전부터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더구나 장동건에 송중기까지 붙은 캐스팅만 봐도 이 작품에 주목을 안 할 수가 없긴 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시청률은 기록하지 못했다. 사실 실제로 본 사람은 아주 재미나게 이 드라마를 본다는데 이상하게 재미가 없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주입식 망드라는 오명까지 얻게 되었다. 재미없다, 재미없다 하니까 진짜 재미가 없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나름대로의 이유를 찾아보자면, 일단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미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각종 OTT를 통해 다양한 장르, 다양한 국가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재미없다는 건 더 안타깝게도 사실일 수도 있다. 장르의 특성상 이 드라마를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과 비교하곤 한다. 제대로 된 역사 이전, 부족 국가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실제로 <아스달 연대기>의 대흑벽은 <왕좌의 게임>에서의 북쪽 장벽을 연상케 하고 각종 캐릭터 설정이나 의상 컨셉 등이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작가는 절대 이 드라마를 <왕좌의 게임>과 감히 비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미 시작된 비교를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스달 연대기 역시 오백 억이 넘는 제작비를 들여 만들었고, 회당 25억에서 30억 원 정도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거대한 서양 자본에 비하면 그 규모나 퀄리티가 현저히 떨어지기는 했다. 스토리와는 별개로 그래픽이 너무 그래픽 같아 보이는 안타까운 상황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니, 근데 뭐 어쩌라고 규모 자체가 다른 걸. 뭐 퀄리티 있게 만들기 싫어서 안 만듭니까? (왕좌의 게임 제작비는 시즌 5까지 약 68억 원, 시즌 6과 시즌 7은 113억 원, 마지막 시즌에서는 회당 172억 원 정도가 들었다고 한다.)
<왕좌의 게임> 엔딩이 아무리 거지 같았다고 욕을 많이 먹었다고 해도 그 드라마 속 백귀와 용, 거대한 숲, 그리고 어마어마한 전투를 본 우리에게 한국형 역사 드라마는 미안하지만 재미없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아주 재밌게 본 사람으로써, 갈수록 몰입되는 스토리와 인물 구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베테랑 작가의 플롯은 초반부의 실망을 후반부에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로 만들어 놓기 충분했다.
<아스달 연대기>가 의미 있는 이유는 이제껏 다루지 않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나와 같이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새로운 시도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영향을 주고,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