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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캐리 Sep 21. 2020

브람스를 좋아하려구요. 첫 번째

내가 금수저였다니.

2020년 가을에 방영된 월화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공식 포스터 문구는 바로 이것이다.


스물아홉, 인생의 한 챕터를 넘기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온 인생의 한 챕터를 넘기는 순간에 나는,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태풍 두 개가 몰아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맑아졌던 2020년의 여름은 그 해의 내 인생을 보는 것 같았다. 어느새 투명해진 가을의 하늘을 보며 그 해 여름이 정말 다이내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럴 원고를 쓰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반 수업도 들었으며 결정적으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세 자영업자가 되어 내 이름을 건 가게를 오픈했다.

어쩌다 (바지)사장이 되었는지 다 말하자면 너무 고달파서 그냥 잊고 싶지만, 어쨌든 매일 나의 매장으로 출근한 지 벌써 두 달이 된 시점이었다. 어김없이 주말에도 나의 스터디카페로 출근을 해 열심히 청소를 했다.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나도 가게에서 내 글을 쓰다 갈 생각이었기에 미리 샌드위치라도 하나 사 먹으려 밖으로 나왔을 때, 바람이 확연하게 선선해진 것이 느껴졌다. 더구나 스터디카페 가맹점 본부장님이 추석 선물이라고 보낸 곶감을 받았을 때는 확실히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만 계속 쏟아지던 이상한 여름에 사업을 시작하여 어느새 가을이 된 것이었다.







여름의 한가운데는 꽃이 있었다.

아주 작은 평수라도 야심 차게 꽃집을 차려볼까 하는 생각에 들었던 화훼장식기능사 수업에서 늘 꽃을 봤다. 물론 꽃집 창업은 더 큰 창업을 하게 되면서 없는 일이 되었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건 뭐든 하고 살자라는 마인드의 초석이 된 수업이었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수업이 끝난 기념으로 맥주를 한 잔  했다. 모두 꽃 수업이 끝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직장을 다니다 그만둔 언니도 있었고, 대학을 막 졸업한 아이도 있었으며, 어린 나이에 결혼에 삼십대 초반이지만 벌써 9살 딸을 둔 언니도 있었다.  내가 엄마와 함께 스터디 카페를 차리게 되었다는 말을 했을 때 대학생 아이가 말했다. 


"언니 금수저였어요? 대박 배신감."


금수저.

난 어디선가 금수저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이상해지곤 했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았지만, 대체로 의문이 들곤 했다. 금수저의 정의는 뭘까? 부모가 가게를 차려줬으니 금수저라 할 만한가? 그렇지만 우리 엄마도 마이너스 통장 만들어서 차려준 건데? 근데 그 금액의 빚을 아무나 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금수저 맞는 건가? 정작 나는 내일모레 서른인데 통장에 100만 원도 없는데? 그래도 금수저?

누군가는 아니, 엄마가 가게 하나 차려줬으면 금수저지 무슨 소리하는 거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나의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나 하는 말이지,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스터디 카페가 망하면 그 빚은 다 어떻게 하나 걱정이었고, 어떻게든 경비를 줄이려 쿠팡을 이 잡듯이 뒤져 제일 저렴한 핸드워시를 찾고 있었다.

이런 데도 수저는 무슨 수저... 아무것도 모르면 내 인생에서 다들 로그아웃 좀요.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완전히 인정하게 되는 날도 있었다.

나는 금수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드라마 속 재벌들을 떠올렸는데,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절대 금수저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 속 부자들은 어차피 평범한 사람들 인생에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이니 현실적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는 내가 적어도 은수저 이상은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이상했다.

우리 집은 분명히 돈 때문에 모든 불화가 생기는 집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빠의 사업은 자리를 잡지 못했고, 우리 엄마는 생계를 위해 어린 자식들을 집에 놔두고 일을 하러 나가던 비자발적 커리어우먼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히며 자랐고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게 스트레스인데, 그럼에도 나는 은수저 이상인가.


역시나 정답은 우리 부모님에게 있었다. 우리 집은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으나 부모가 자식에게 이제 너희도 좀 나가 살아라, 하며 완전한 독립을 강조하는 집은 또 아니었다. 특히나 우리 엄마는 자식이 지 알아서 살겠지, 하고 놔두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다. 믿음을 주지 못해서 일수도 있고, 워낙 걱정이 많아서 일수도 있으며, 근본적으로 자식이 뭔가를 헤매고 있으면 애가 타서 죽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대장부이지만 속으로는 생각이 많고 이것저것 다 신경 쓰이는 내 성격은 엄마를 닮은 게 분명했다.







학생 때부터 용돈을 집에서 받지 않고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충족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내가 수능을 끝내고(첫 번째 수능)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고깃집에서 먼저 일하고 있던 아이는 고등학생이었는데, 그때 당시의 나는 그 아이의 나이를 듣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고등학생이 알바? 나의 가치관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우리 집은 한 곳에서 벌어 세 곳에서 돈이 새어나가는 집이었음에도 나는 알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뭔가 나 혼자 이상한 아이가 된 것 같아 알바를 하려고 한다고 말하면 엄마는,


"벌면 얼마나 버니. 그냥 공부나 해."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되지도 않는 공부를 했다. 어리석게도 장학금을 따는 게 가장 좋은 경제활동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의 부모들은 자식이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그들이 알아서 살기를 바라고 지켜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아이였고, 우리 부모님은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자리를 잡게 해주는 사람들이었다. 오빠나 나나 워낙 정신 못 차리고 헤매고 있으니 그렇겠지만.

자식의 인생을 걱정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만은, 조금 유난히 걱정을 많이 하는 부모가 있는 사람이 금수저라면, 나는 금수저였다. 통장에 돈이 없어도 미친 듯이 돈을 벌 궁리를 안 했던 걸 보니 나는 쥐뿔 가진 것도 없으면서 사고방식이 금수저인 듯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는 나와 나이가 같은 각종 유형의 청춘이 등장한다.

(SBS/ 극본 조보리, 연출 조영민/ 박은빈, 김민재, 김성철, 박지현, 이유진, 배다빈 주연)

언제나 드라마를 볼 때 그러하듯 나는 이 드라마가 방영될 때 매회 여자 주인공에게 빙의하고, 가끔 나와 상황이 비슷한 다른 캐릭터들을 안쓰러워하며 월, 화요일을 보내고 있었다.







(모든 사진의 출처는 해당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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