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 브리너를 사랑한 홍이
친구를 배우다 2-나의 첫 번째 글쓰기 선생님
“엎드려뻗쳐”
“퍽, 퍽, 퍽, 으으윽”
1984년, 00 여자중학교 1학년 11반 교실에서는 매질이 없는 날이 드물었다. 체격이 건장한 30대 초반의 체육 선생님이 담임을 맡은 반이다. 담임은 학창 시절 핸드볼 선수였다고 했다. 팔 힘이 얼마나 좋은지 셀 수 없을 만큼 매질을 해도 지치지 않았다.
학기 초에는 지각, 자습 태도, 청소 상태 같은 이유로 매를 들었다.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우리 반 성적이 11개 반 중에서 꼴찌를 하자 담임 눈이 뒤집혔다. 그리고 ‘11반 법’을 만들었다. 아침 자습 시간부터 종례 시간 전까지 빽빽이 다섯 장을 완성해야 맞지 않고 집에 갈 수 있었다.
글씨도 느린 데다 순진하기만 했던 나는 점심도 거른 채 빽빽이를 하는 날이 많았다. 대걸레 자루로 만든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는 것보다 차라리 굶는 게 나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 친구들은 모나미 볼펜 두 개를 묶어 한 번에 두 줄씩 쓰고 있었다. 알고 나서도 나는 따라 하지 못했다. 그런 사실을 담임에게 들키는 날에는 누구 하나 초상을 치르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1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 나는 가까스로 담임의 몽둥이를 피했다.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기어이 담임 입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아니야. 아닐 거야’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쳤지만 후들거리는 내 몸은 이미 교탁 모서리를 잡고 있었다.
열 대쯤 맞았던 것 같다. 중간고사 성적보다 평균 10점 하락의 벌이었다. 내 생전 그런 매질은 처음 당해봤지만 아프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오면서 수치심과 분노가 솟구쳐 입을 틀어막고 오열했다. 1학년 기억은 거기서 끝나버렸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담임 얼굴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이상하게도 그 지옥을 함께 견뎠던 친구들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기대도 설렘도 없이 부디 1학년 때 담임만 만나지 않기를 바라며 2학년이 되었다. 나는 31번, 홍이가 32번이라 짝이 되었다. 홍이는 나를 몰랐지만 나는 이미 홍이를 잘 알고 있었다. 홍이는 나와 같은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부터 소문난 우등생이었다.
역시 반장으로 내 짝 홍이가 뽑혔다. 리더십도 있고,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재미있게 하는, 운동 빼고는 못하는 게 없는 친구였다. 쉬는 시간마다 홍이는 전 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했는데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 나와 함께 하려고 했다. 자기에게 물어보라고 하고, 내게 질문도 하고 대답을 못하면 찬찬히 설명도 해줬다. 선생님이 설명할 때보다 홍이가 알려주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더 이상 빽빽이도 없었고, 점심을 거르는 날도 없었다. 도시락을 먹으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계란 반찬보다 맛있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홍이는 월요일마다 ‘주말의 명화’를 보고 와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화 ‘왕과 나’의 주인공, 율 브리너가 얼마나 멋있는지,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 헵번은 또 얼마나 예쁜지 설명하느라 열을 올렸다.
TV에 외국인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는 우리 집에서 나는 그런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홍이가 오드리 헵번을 얘기하면 나는 캔디를 떠올렸고, 율 브리너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라고 말할 때는 내가 짝사랑한 테리우스 오빠를 상상하면서 맞장구를 쳐주었다.
점심 도시락을 먹고 시간이 남으면 홍이는 숙제를 하자고 했다. 얼마나 알뜰한지 홍이는 공책을 아낀다고 반으로 접어 썼다. 글씨도 깔끔하고 예뻐서 따라 하느라고 나는 매일매일 애를 썼다. 숙제를 빨리 끝낸 날에는 일기까지 썼다. 많은 것을 척척 하면서도 힘들지 않고 시간이 아까울 만큼 재미있었다.
영화만큼 음악을 좋아한 홍이는 고등학생 언니의 영향인지 우리가 모르는 음악을 좋아했다. 우리 언니도 고등학생이었는데 언니는 조용필 아저씨 왕팬이었다. 텔레비전에 조용필 아저씨가 나오면 무조건 그 채널을 봐야 했고, 언니의 카세트에서도 매일 조용필 아저씨 노래만 나왔다. 음악 시간에 배운 노래와 조용필 아저씨 노래 외에 내가 아는 음악은 없었다. 홍이가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해줘도 들어보지 않은 음악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 홍이가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내밀었다. '폴 모리아 악단의 영화 음악'이라는 글씨가 테이프 위에 있었다.
“진짜 좋아. 너도 들으면 정말 반할 거야.”
정말 그랬다. 열다섯 소녀의 감성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흔들어 놓았다. 영화 <디어 헌터>의 OST ‘카바티나’를 들으면 말 한마디 걸어본 적 없는 테리우스 오빠가 생각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테이프가 늘어져 이상한 소리를 낼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홍이의 음악이 짝사랑을 성공시키지는 못했어도 음악에 대한 첫사랑을 만든 건 분명하다.
2학년 1학기의 중반을 넘은 유월, 호국보훈의 달에 글짓기 대회가 있었다. 점심시간마다 함께 일기를 써 오던 홍이가 물었다.
“너도 쓸 거지?”
“내 주제에 무슨”
“그냥 일기 쓴다 생각하고 조금 길게 써 봐.”
절대 못 쓴다고 말하고 집에 와서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너무 빤하지만 6.25 전쟁과 통일 이야기를 쓰기로 결정했다. 집에는 참고할 만한 책도 없었고,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통일 이야기가 조금 나오는 도덕책을 읽고 글을 써 봤다. 적어도 홍이에게 최선을 다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햇볕이 따가운 운동장 조회 시간, 2천여 명의 전교생이 모였다. 교장 선생님 말씀이 점점 지루해져 우리는 조잘조잘 떠들기 시작했다. 그때 홍이와 내 이름이 마이크에서 흘러나왔다.
“툰자야, 뭐해? 빨리 나가자.”
얼빠진 모습으로 홍이를 따라 단상 위로 올라갔다. 홍이는 글짓기 금상, 나는 은상이었다. 그런 경험은 그때가 최초이자 마지막이다. 생각해보니 그런 선물을 준 홍이가 나의 첫 번째 글쓰기 선생님이다.
초경에 관한 모든 고민을 들어주고 걱정을 덜어주던 상담사였고, 영화와 음악, 글씨부터 글쓰기까지 개인지도를 해 준 스승이었다. 빽빽이도 몽둥이도 없었지만 놀랄 만큼 성적도 올랐다.
우리는 3학년 때 헤어졌다. 우리 교실은 1층, 홍이네 교실은 3층이라 오다가다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고입 시험 준비를 한다는 핑계로 서로 연락도 안 했다. 고등학교도 달라서 점점 잊혔다.
아주 오랜만에 홍이를 다시 만난 곳은 학교 앞 시내버스 안이었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의 스무 살 홍이는 열다섯의 홍이랑 똑같았다.
“홍이야, 너도 우리 학교 다닌 거야? 야, 반갑다.”
그 날 버스 안에서 홍이는 별로 말이 없었다. 모습은 그대로인데 이야기꾼 홍이는 아닌 것 같았다. 멀어졌던 시간만큼 어색했다. 몇 마디 주고받다가 다음에 만나자는 약속도 없이 헤어졌다.
요즘 책을 읽다가, 글을 쓰다가 문득문득 홍이 생각이 난다. 내가 지옥 같은 중학교 1학년을 보내고 학교와 선생님들을 증오했을 때, 홍이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다시 학교를 천국으로 만들어 준 천사가 아니었다면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을까?
가끔 고향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홍이 소식을 아는 친구들이 없다. 결혼은 했는지, 아직도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는지, 혹시 글을 쓰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만나면 꼭 놀려주고 싶다.
“빡빡머리 율 브리너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라고? 우리 테리우스 오빠가 열 배는 멋있다.”
5월의 문 앞에서 가장 생각나는 스승은 율 브리너를 사랑한 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