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양도 뿔이 난다

친구를 배우다 1 - 호랑이와 늑대를 만난 우리

by 툰자

그 작은 아이가 내 기억 속에서 툭 튀어나온 이유는 순전히 ‘미투’ 때문이다. 미투(Me too movement)는 성폭행이나 성희롱을 고발하는 운동으로, 2017년 10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의 미투 운동은 2018년 1월 29일 현직 검사 서지현에 의해 촉발되었다. 그녀는 뉴스에 출연해 검찰 내의 성폭력 실상을 고발했다.

2018년, 검찰에 이어 문화계, 정치계, 교육계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고발이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고, 가슴이 답답했다. 누구와 얘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남편은 미투에 관심이 없었다. 고3인 큰아들과 시작한 대화는 매끄럽지 않았고, 결국 의견이 달라 고성까지 오갔다.

“엄마, 시대가 달라졌어요. 피해자가 다 여자는 아니라고요.”

여성들의 고통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게 대든다고 생각했다. 분한 마음에 며칠 잠도 설쳤다. 뒤척이며 아들 말을 여러 번 곱씹어보니 ‘아들도 상처가 있었구나.’하는 생각에 닿았다. 여자든 남자든 폭력을 당한 사람은 오히려 털어놓고 말하기 힘든 사회다. 용기를 내어 고발해도 비난과 소송이 잇따르는 더 큰 고난에 빠질 위험도 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매일 그 날 배운 내용으로 쪽지 시험을 보았고,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아이를 제외하고 모두 매를 맞았다. 숙제 공책에는 부모님 사인을 꼭 받아야 했다. 최고점을 맞기는 어려웠지만 숙제는 열심히 했고, 아버지 사인도 성실하게 받아 갔다.


어느 날,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셔서 아침에 사인을 받아야지 했다가 깜빡하고 그냥 학교에 갔다. 숙제 검사 시간이 다가오자 입술도, 심장도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매일 봐 온 아버지 사인은 어렵지 않았다. 크게 숨을 내쉬고 나는 아버지 사인을 그렸다. 내 눈에는 감쪽같았다. 한 명씩 숙제 검사를 받는데 내 차례가 되었다.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선생님 귀에 들릴까 불안했다. 그때 선생님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지 사인 맞지? 아버지가 하신 거 맞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라고 하자 선생님은 내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들켰구나. 심장이 이렇게 방망이질을 하는데 다 아시겠지.’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그런데 선생님은 혼내지 않고 웃으면서 들어가라고 했다. 그때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부끄러웠던 이유가 나는 거짓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미투 운동을 보면서 알았다. 내가 왜 분노하는지. 그건 죄책감이 아니라 수치심이었다. 5학년인 내 가슴에는 이미 살구만 한 몽우리가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우리 교실에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등교한 우리는 새까맣게 그을린 선생님 책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난 밤, 교실에 도둑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수업 시간이 되었는데 선생님 대신 아저씨 두 분이 들어왔다. 경찰이라고 소개한 아저씨들은 종이를 나눠주며 학교에 바라는 점이 있으면 솔직하게 쓰라고 했다.

‘학급 문고에 책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쉬는 시간에도 조용하게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음 날엔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불에 그을린 책상을 발견했을 때보다 나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쓴 이야기가 그대로 선생님 입에서 나왔다. 비웃음과 함께.

“뭐 책이 부족해서 책을 못 읽는다고? 니들이 언제 쉬는 시간에 책을 읽었다고 참.”


나는 거짓말을 했을 때보다 더 떨려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호랑이 선생님이 이제 괴물로 변할 것 같았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선생님이 읍내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시골 학교로 떠났기 때문이다.

호랑이 선생님이 떠난 교실에 평화는 오지 않았다. 새끼 늑대가 여자 아이들을 괴롭혔다. 선생님이 없는 복도나 운동장에서 여자 아이들 가슴을 치고 달아나는 짓궂은 장난을 했다. 그동안 담임선생님이 남자라 여자 아이들은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고 속만 태웠는데 이제 호랑이 선생님이 없는 교실에서도 뻔뻔하게 못된 짓을 했다. 아이들은 폭력을 두려워하면서 시나브로 배우기도 한다. 새끼 늑대는 교실의 새로운 지배자라도 된 양 우쭐댔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새끼 늑대와 눈이 딱 마주쳤다. 녀석이 씩 웃었다. 그건 일종의 신호였다. 몇 초 후면 녀석이 내게 돌진한다는 메시지. 끔찍했다. 그 순간 책상 위의 리코더를 들어 힘껏 녀석을 향해 던졌다. 녀석을 맞추지도 못하고 리코더는 바닥에 떨어져 두 동강이 났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평화가 왔다. 새끼 늑대는 다시는 그런 못된 짓을 하지 않았다.

6학년이 되자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5학년 때 화재 사건은 선생님의 매를 견디기 힘들었던 우리 반 아이가 중학생 형과 함께 벌인 일이었단다. 마르고 키가 작은 조용한 아이였다. 36년이나 지나 불쑥 그 남자아이가 떠오른 것은 미안함과 안타까움 때문이다.


교육이라는 이유로 폭력이 끊이지 않던 교실. 맞은 아이도 맞지 않은 아이도 모두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였다. 하지만 경찰들이 교실에 들어온 그날 우리는 모두 용의자였던 것이다. 다음 날 선생님 입에서 우리가 경찰 아저씨에게 써냈던 내용들이 줄줄 나왔을 때 그 아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일로 어린 형제는 또 얼마나 오랫동안 지옥을 견뎌야 했을까?’

그 아이가 벌인 일도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그 일이 아니었다면 호랑이의 폭력은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들의 6학년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다. 만약 그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말하고 싶다.우리 모두는 폭력이 두려웠다고.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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