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신부 말고 동안 신부

엄마를 배우다 5 - 리마인드 웨딩을 한다면

by 툰자

“신랑 분 입술이 더 작고 예쁜데요.”


메이크업 담당자가 말했다. 신부 화장을 마치고, 신랑도 살짝만 이목구비를 살려준다 했다. 그런데 파운데이션도 하얗게 펴 바르고, 눈썹도 숯검댕이로 만들어 놓고, 마지막으로 립스틱까지 할 건 다 하더라. 거기까진 괜찮았다. 가뜩이나 화장과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 심기가 불편한 나에게 그녀는 강펀치를 날린 셈이다.

해석하면 ‘신부보다 신랑이 더 잘 생겼다.’인데 나도 안다. 딱 하나 내가 신랑에게 꿇리는 게 바로 외모였다. 전통 혼례에서 신부의 단장과 그 밖의 일을 곁에서 도와주는 여자를 ‘수모’라고 한다. 메이크업 담당자는 말하자면 요즘 결혼식의 수모인데, 결혼식 당일 신부에게 수모감을 주다니. ‘화장 다시 해 주세요. 정말 마음에 안들거든요.’ 어깃장을 놓고 싶었다. 그녀의 말에 싱글벙글하는 신랑도 너무 얄미웠지만, 미용실을 뛰쳐나갈 용기는 없었다.



지난 설 명절 친정에 갔을 때, 조카가 오래된 앨범들을 죄다 꺼내 놓았다. 우리 오 남매 어린 시절 앨범도 있고, 그보다 더 오래전 앨범도 있었다. 큰올케가 앨범을 정리하다가 펼쳐보더니 물었다.


“어머, 이게 누구예요?”

“엄마, 아빠 결혼사진이네.”

“우와! 아버님은 영화배우 같아요.”


그러더니 살짝 ‘풉’하고 웃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이미 열 번도 넘게 그 사진을 봤으므로. 보나마나 키도 크고 잘생긴 신랑 옆에 있는 신부 때문이다.

50여 년 전, 아버지 옆에 있던 신부는 아름답지 않았다. 얼굴도, 눈도, 몸도 퉁퉁 부어 있었다. 쌍꺼풀도 없는 작은 눈으로 시집간다고 밤새 울었는가? 시집가면 시집살이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고 외할머니가 보약이라도 해 주었나 싶을 정도다. 천만다행인 건 신랑이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 시절 어른들은 빼짝 마른 사람보다 통통한 사람이 복스럽게 생겼다고 좋아했다는 것이다.

반전은 30년쯤 뒤에 시작되었다. 수십 년 막걸리와 소주를 친구 하며 지냈던 아버지는 얼굴이 새까매지고, 이도 안 좋아 잘 못 드시니 살이 빠져서 쭈글쭈글 주름도 늘었다. 엄마는 우리가 어렸을 때는 전혀 외모를 가꾸지 않았다.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라 여유가 없었겠지만. 오 남매가 다 독립하고, 엄마가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면서 외모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내 결혼식 얘기가 오가던 어느 날 엄마는 대전에 가서 쌍꺼풀을 만들고 왔다. 나는 경악했다.

“아줌마는 누구세요?” 그럴 뻔했다. 퉁퉁 부은 눈두덩에 선명한 칼자국은 보기 흉했다. 작은 눈에 둥글둥글한 얼굴의 선한 인상은 사라져 무서운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 좀 있으면 상견례 할 건데 이게 뭐야?”

“야, 그래서 했어. 상견례도 있고, 니 결혼식 사진에 죄다 눈 감은 얼굴로 나오면 어쩌냐?”

나는 속이 상했다. 내 결혼식 때문에 엄마가 쌍꺼풀을 만들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튼 잘 아물지 않은 채로 상견례를 치렀고, 내 결혼식 사진에 나온 엄마는 눈을 부릅뜬 모양새였다. 엄마 목표는 달성한 셈이니 다행이었다.

엄마 회갑 때는 모두 한복까지 맞춰 입고 가족사진을 찍었는데, 엄마는 가발까지 맞추고 오셨더라. 엄마의 쌍꺼풀은 정말 안 부러웠는데, 엄마의 풍성한 정수리는 진심으로 부러웠다. 아버지를 닮아 일찍부터 새치가 나더니, 엄마를 닮아 정수리가 점점 시원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 아는 동생이 눈썹과 아이라인에 반영구 문신을 하러 가자고 꼬드겼다. 원래 겁도 많고 외모 꾸미기에 큰 관심도 없는 편이지만 살짝 마음이 동했다. ‘쌍꺼풀 대신 그거라도 해볼까 조금이라도 눈이 커 보이겠지.’ 그렇게 생각만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일흔다섯의 엄마는 벌써 다 하고 오셨더라. 1층 아줌마랑 앞 동 아줌마랑 셋이 가서 싸게 했다고 자랑도 했다.

“엄마, 안 아퍼?”

“마취약 바르니께 쪼끔 따끔허다 말어.”

엄마는 몸매도 날씬해졌다.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혼자 텔레비전 볼 때는 방석을 깔아 놓고 제자리 걷기를 한단다. 오래 하면 운동도 되고, 텔레비전만 멍하니 볼 때보다 덜 외롭다고 했다. 마흔아홉의 게으른 나는 점점 늙어 가는데, 일흔여섯의 부지런한 엄마는 점점 젊어진다.

매월 첫 째 주 일요일은 엄마가 대전으로 나들이 가는 날이다. 소꿉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새로 장만한 스카프도 두르고, 립스틱도 곱게 바른다. 대전 중앙 시장 안 백반 집에서 점심을 먹고, 2차는 지하상가로 쇼핑을 하러 간다. 때로는 아이쇼핑만 하고, 간혹 충동구매도 한다.

“성자야, 딱 니 꺼다. 아유 잘 어울려.”

친구가 부추기면 여럿이 색깔만 다른 바지를 한 장씩 산다. 한 바퀴 구경을 끝내고 총무가 3차 가자 그러면 노래방으로 간단다. 엄마의 애창곡 ‘동백 아가씨’도 부르고, 합창으로 ‘내 나이가 어때서’도 열창한다고. 흥도 나고 땀도 나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고 했다.

일흔여섯의 소녀 일곱이 함께 모여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른다니 일 년에 일곱 살쯤 젊어질 것 같다. 적어도 친구들과 실컷 웃고 이야기하다 보면 주름이 펴질 것 같다. 자꾸 젊어지는 엄마를 보며 목표가 생겼다. 이번 생애에 예뻐지기는 글렀지만 혹시 10년 후에 리마인드 웨딩을 한다면 이 말을 꼭 듣고 싶다.

“어머, 신부님이 참 동안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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