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부활

엄마를 배우다 3 - 샤샤샥 엄마의 가위질 소리

by 툰자

열일곱 살에 처음 미용실에 갔다. 미용사가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묻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지금이랑 비슷하게요”라며 얼버무렸다. 그전까지 나는 우리 집에서 머리를 했다. 우리 가족 전속 미용사인 엄마는 내가 보자기를 두르고 마루 끝에 걸터앉으면 원하는 스타일 같은 건 묻지도 않고 싹둑싹둑 가위질을 시작했다. 한 달 전 모양 그대로 길이만 잘랐다. 가위질이 멈추면 보자기를 벗고, 툭 툭 툭 옷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털었다. 그다음 수돗가로 달려가 혼자 머리를 감으면 끝이었다.


생애 처음 간 진짜 미용실 원장님은 내 머릿결과 어울리는 스타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많이 했다.

“학생은 말총머리라 뻣뻣해서 뜨니까 짧게 깎을게.”

“네? 네.”

“게다가 곱슬기도 있네.”

“곱슬머리예요? 몰랐어요.”


커트가 끝나고 거울을 봤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뒤로 시골집에 내려가는 주말을 기다렸다가 전속 미용사에게 다시 머리를 맡겼다.

엄마는 제대로 미용을 배운 적은 없지만, 할머니 염색부터 아버지와 오 남매의 머리 손질까지 직접 했다. 우리 가족 중 진짜 미용실에 다니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진짜 미용실에 다녀온 엄마는 십 년이 지나도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파마를 하고 왔다. 빠글빠글 파마를 하고 온 날마다 그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워 나는 어른이 돼도 절대 파마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마흔 중반을 넘도록 굵은 웨이브 파마를 손에 꼽을 정도만 했다. 대학 졸업 기념으로 한 번, 결혼식 전에 한 번 뭐 그런 식으로 십 년에 두세 번 꼴이다. 파마뿐만 아니라 미용실에 가는 일 자체가 달갑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자를 때보다 미용사가 머리를 감겨 줄 때 더 불편했다. 내 큰 머리통이 무거울까 싶어 목에 힘을 주고 쳐들면 미용사가 그랬다.

“힘 빼세요.”

그 말을 들으면 더 긴장이 되고 힘은 더 들어가기 마련이라 난감한 적이 많았다.


나를 닮았는지 우리 애들은 미용실에 가는 걸 죽어라고 싫어했다. 순하고 내성적인 첫째는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하나 들려주고 미용실에 데려가면, 머리를 깎는 동안 소리도 못 내고 눈물만 떨구곤 했다. 돌 지나면서부터 자기주장이 확실한 둘째는 미용실 거부가 완강했다. 의자에 앉히기도 힘들고, 과자라도 물려 앉혀 놓아도 1분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둘째는 바락바락 소리치고 울어서 퉁퉁 붓고, 유별난 아이 때문에 화가 나서 나도 퉁퉁 부었다. 미용실을 다녀온 것인지 사우나를 갔다 온 것인지 모를 정도로 둘 다 땀범벅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둘째랑 미용실에서 실랑이를 하고 온 어느 날, 어린 시절 엄마 생각이 났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다. 둘째가 더벅머리가 되었을 때, 욕조에 물을 받고 녀석을 넣었다. 살살 물도 뿌려 주고, 놀아주는 척하면서 조금씩 가위질을 했다.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머리카락이 신기한지 손으로 잡으려고 애썼다. 가위질을 하는데도 울기는커녕 녀석은 깔깔대며 웃었다.


하지만 엄마의 손재주는 내게 없었다. 그래도 처음 솜씨 치고 빵점은 아니었다. 들쭉날쭉한 뒤통수가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눈썹 위로 시원하게 올라간 앞머리 때문에 내 눈에는 더 귀여워 보였다. 남편도 나를 추켜세웠다.


“와! 이 정도면 괜찮네. 당신 미용실 가서 고생하지 말고 그냥 집에서 해 줘.”


그 후로 ‘우리 집 미용실 2호점’이 시작되었다. 단골은 둘째뿐이었다. 초등학생이 된 첫째는 동생 머리를 보고 내 실력을 믿지 않았다. 남편도 일 년에 두 번쯤 새치 염색만 맡겼다. 수평을 맞춘다고 이쪽저쪽 자르다가 앞머리가 거의 다 사라져도 나이 어린 단골손님은 불만이 없었다. 그러니 몇 년이 지나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 손님도 더 이상 늘지 않았다.




‘우리 집 미용실 1호점’은 단골인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폐업했다. ‘우리 집 미용실 2호점’은 오랫동안 휴업이었다. 초등학생이 된 둘째도 동네 미용실에 다닌다. 낮에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어제는 놀러 온 큰 조카 머리를 다듬어 줬다고 했다.

“엄마, 그러지 마. 올케가 싫어해.”

“야, 비싸게 미용실서 깎았다는디 아주 애를 이상하게 만들어 놨어.”

"그게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야."

“내가 아주 쪼끔 다듬었는디 인물이 훤하더라.”

‘우리 집 미용실 1호점’이 20년 만에 부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휴업 중이던 ‘우리 집 미용실 2호점’에도 오래간만에 손님이 왔다. 바로 나다. 앞머리가 자꾸 눈을 찔러 거슬렸다. 고작 그것 때문에 동네 미용실까지 가기는 귀찮았다. 영업을 재개한 1호점과의 경쟁심이 발동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욕실에서 거울을 보며 앞머리를 다듬었다. 샤샤샥 시원한 엄마의 가위질 소리가 들렸다. 거울 속에는 그 옛날 젊은 엄마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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