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엄마를 배우다 1 - 무뚝뚝한 엄마의 늦바람
외할머니의 둘째 딸 우리 엄마는 스물일곱에 둘째 딸인 나를 낳았다. 나는 서른여덟에 둘째 아들을 낳고 진짜 엄마 노릇을 시작했다. 그제야 조금씩 엄마를 생각했다. 나의 절반을 만든 우리 엄마.
아무리 더듬어 봐도 어렸을 때 엄마랑 한 방에서 자 본 기억이 없다. 물론 내가 젖먹이였을 때는 엄마가 옆에 끼고 잤을 테지만 그건 엄마 기억 속에만 있는 일이고, 나의 가장 어린 기억은 여섯 살이다. 기억나는 여섯 살부터 고등학교 때문에 집을 떠난 열여섯까지 나는 늘 할머니 옆에서 잤다. 명절을 앞두고 새 옷을 사주는 사람도 할머니였고, 나를 도시에 처음 데려간 사람도 할머니였다.
엄마는 딸을 내리 셋이나 낳고, 할머니 미움을 샀다. 우리 아버지는 할머니가 어린 두 아들을 잃은 후에 남은 유일한 아들이다. 할머니는 아버지 아래로 고모를 낳고 얼마 안 되어 전쟁으로 할아버지를 잃었다. 할머니에게 우리 아버지는 세상의 전부였다.
할머니의 귀한 아들은 전구 하나 갈 줄도 모르고, 필요한 못 하나도 박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했다. 그러니 집안일은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에는 결혼 안 한 고모와 우리 집에서 하숙하는 아버지 사촌들까지 밥해 주었단다.
우리 고모는 시집가서 언니와 내가 보고 싶어 맨날 눈물바람이었다고 했다. 내 입시 뒷바라지도 고모가 했고,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고모만 왔다. 대학시절 처음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고모는 사장님께 조카를 잘 봐 달라고 부탁을 하고 갔다. 졸업하고 학원에서 일하던 어느 겨울에는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고 점퍼를 사 가지고 왔다. 고모는 다정다감하고 상냥한 사람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살가운 엄마는 아니었다.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고모와 달리 엄마는 무뚝뚝하고 우는 모습도 거의 본 적이 없다. 딸 셋이 시집가던 날에도, 아기를 낳던 날에도 엄마는 덤덤해 보였다.
엄마를 닮아 애교는 눈곱만큼도 없는 딸 셋은 가끔 모이면 뒷담화를 했다. 아기 낳고 몸조리할 때 엄마에게 서운했던 마음을 꺼내곤 했다. 밤새 못 자고 아기를 돌보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주는 것 같아 야속했다. 태어난 외손주를 별로 예뻐하지 않는 것 같아서 서운했다. 엄마도 가게 나가느라 바쁜데 산모까지 챙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엄마 나이 70에 막내까지 오 남매 모두 가정을 꾸렸다. 늦은 나이에 장가간 남동생 둘은 결혼과 동시에 서로 경쟁하듯 순풍순풍 조카들을 낳았다. 3년 만에 우리 엄마는 친손자가 다섯이나 생겼다. 꿈속에서라도 엄마는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큰소리를 쳤을까?
“어머니, 아들 아들 하시더니. 어머니는 아들 하나에 친손자 둘, 나는 아들 둘에 친손자만 다섯입니다.”
아무튼 우리 엄마가 달라졌다. 70이 넘은 엄마는 사랑에 빠졌다. 다섯 명의 어린 남자들과 연애를 한다. 사랑을 고백하는 달달한 전화통화도 하루에 서너 통은 기본이고, 엄마의 핸드폰은 애인들 사진과 동영상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애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늦바람이 무섭다.
우리 엄마 애인 중 1순위는 당연 처음 친손주가 된 혁이다. 엄마는 혁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자주 만나지 못하자 애가 달았다. 그러더니 작전을 짰다. 고만고만한 남자 아기만 셋이라 큰 며느리가 너무 힘들고, 너무 어린 나이에 큰 형아가 된 혁이도 불쌍하다며 주말 돌봄을 자청했다. 1년 전부터 혁이의 금요일 하원 차량은 엄마 집으로 간다. 엄마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애인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다.
목요일부터 엄마는 애인을 위해 집 청소를 하고, 뭘 먹일까, 뭘 하고 놀까 궁리한단다. 나는 우리 둘째가 쓰던 그림책과, 블록, 수학 교구를 챙겨다 드렸다. 엄마가 그렇게 감동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전화로도 여러 번이나 고마움을 전했다. 보낸 물건들이 꽤나 요긴했나 보다. 혁이도 할머니 집에 오는 금요일을 기다린다고 했다.
얼마 전에, 엄마 생신이라 친정에 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큰 올케는 아기들이 졸린 것 같다며 일어섰다. 그런데 혁이가 옷 입는 동생들을 보며 쿨하게 말했다.
“형아는 할머니랑 잘게. 안녕.”
남동생네가 떠나자, 엄마랑 혁이가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그림책을 몇 권 읽어 주더니 나중엔 글자도 손으로 짚어가며 알려줬다. 블록을 다 쏟아 놓고 자동차와 집도 만들고, 수학교구 세트에 들어 있는 동물 모형으로는 수를 셌다. 큰 소리 한 번, 짜증 한 번 없는 수업. 학습자 눈높이에 딱 맞춤으로 알찼다. ‘엄마는 국민학교 다닌 게 전부인데 저런 걸 어떻게 알았지?’ 아이들을 가르친다며 좀 아는 척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때 음악 시간이 시작되었다. 둘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혁이는 일어나서 엉덩이를 씰룩대고 엄마는 애인을 보며 물개 박수를 쳤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