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샜다

엄마를 배우다 4 - 기억을 뜨다

by 툰자

“엄마, 뜨개질할 줄 알아?”

“어. 왜?”

“학교에서 여자애들이 하는데 재미있어 보여서. 나 좀 가르쳐 줘.”


둘째가 미술 시간에 쓰고 남은 빨간 털실을 찾아왔다. 그런데 대바늘이 없었다.

“실만 있고 바늘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

했더니 실망이 엄청 크다.

그때 짜장면 배달과 함께 온 녀석이 생각났다. 다른 중국집 나무젓가락과는 달리 집에서 요리할 때 쓰는 가늘고 끝이 약간 뾰족한 젓가락과 비슷하다. 풀이죽은 둘째가 가져온 나무젓가락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엄마, 진짜 그걸로 되겠어?”

왼손에 실을 감고 오른손에 나무젓가락을 들고 먼저 코를 만들었다. 일단 코 만들기는 성공. 둘째는 감탄하며 내 손놀림에 넋이 나갔다.


“우와! 엄마 대단하다!”

“야, 이게 뭐가 대단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뜨개질하는 거 보면 기절하겠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실실 웃음이 나고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녀석의 열정은 짜장면처럼 금방 식었다. 코 만들기를 몇 번 해 보더니 어려워서 못하겠다며 대신 엄마가 뭐라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내일 학교 가져가서 자랑하고 싶다고.


“네가 만들어야 자랑할 수 있는 거지, 내가 만든 걸 네가 왜 자랑하냐?”

“아이, 그래두. 엄마, 제발. 난 이제 졸리다고.”

둘째는 방에 들어갔는데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나무젓가락을 잡고 뜨개질을 시작했다. ‘작은 지갑이라도 하나 만들어 줘야겠다. 내일 아침 녀석이 보면 엄청 감동하겠지?’ 그렇게 시작한 나무젓가락 뜨개질은 생각보다 더뎠다.


어린 시절 엄마 옆에서 언니와 나란히 앉아 뜨개질을 할 때는 힘든 줄도 몰랐는데, 두 시간쯤 하니까 허리도 목도 뻐근하고 눈도 뻑뻑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우리 엄마는 오 남매를 키우며 할머니를 모시던 시절에도 틈틈이 부업을 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인삼을 깎으러 다녔고, 초겨울부터 이른 봄까지는 식구들과 동네 할머니들 스웨터와 조끼를 떴다. 손재주가 좋아 소문이 나면서 겨우내 쉬지 않고 반찬값을 벌었다. 뜨개질하는 엄마 옆에서 언니랑 나는 자투리 실로 손가방이나 목도리를 뜨면서 긴 긴 겨울 방학을 보냈다.

한 번은 엄마가 주문한 날짜에 맞추려고 애를 쓰다가 옆에서 놀던 내게 말했다.


“안쪽 주머니는 안 보이니께, 니가 한 번 해 볼려?”


겉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안주머니 두 개를 내가 완성했을 때 느꼈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 커다란 스웨터를 내가 만든 기분이 들었다.

사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가 떠 준 스웨터를 싫어했다. 피부에 닿는 까실까실한 털실이 송충이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아 불편했다. 친구들처럼 옷가게에서 파는 부드럽고 예쁜 코트를 입고 싶었다. 학교 갈 때마다 코트 타령을 하면서 엄마 속을 긁었다.

둘째 녀석의 주문을 끝마치고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다. 엄마도 우리 식구들 조끼며, 스웨터를 뜨면서 이렇게 밤을 새웠겠지. 내게 작아진 옷은 실을 풀어서 따뜻한 물에 담갔다가 곧게 펴지면 동생 조끼를 떠 주었다. 유행 지난 할머니 스웨터는 풀어서 새 실을 섞어 나와 언니 스웨터를 떠 주었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엄마의 정성을 입으면서 나는 왜 그렇게 툴툴댔는지 모르겠다.

손바닥만 한 빨간 손지갑을 만들고, 위에 그림이 있는 단추를 하나 달았다. 장장 여섯 시간을 쏟아부은 작품 치고는 너무 초라했다. 실을 좀 더 고급으로 해야 하는데, 새빨간 색깔도 촌스러워 보이고, 둘째가 실망하지만 않았으면 했다. 제발 그 옛날 나처럼 툴툴대지나 말았으면 그랬다.

“엄마, 이게 뭐야?”

“지갑”

“근데, 이건 너무 길잖아”

“그럼 필통으로 쓰면 되잖아”

“그럴까? 근데 엄마, 뾰족한 연필심이 자꾸 밖으로 나오는데”

“그거 만드느라 밤샜다. 아휴 피곤해.”


아들에게 칭찬 대신 불평을 들었지만 기억을 뜨는 동안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뜨개질을 하지 않았지만 내 손은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에 친정에 가면 엄마에게 제대로 뜨개질을 배워야겠다. 아들 조끼 하나 근사하게 떠서 녀석을 감동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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