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해 주는 남자들이 없어서 글은 못 쓰겠다
친구를 배우다 3 - 용감한 사람들
배지영 작가의 에세이 [소년의 레시피]를 만난 건 우연이었습니다. 서점에 찾는 책이 없어서 그냥 나오려는데 민트색 표지 위의 반짝이는 소년이 저를 붙잡았습니다. 제목과 '요리하지 않는 엄마에게 야자 하지 않는 아들이 차려주는 밥상'이라는 부제도 호기심을 일으켰지요. 제게도 야자 안 하고 미술 학원 다니고 싶다는 아들이 있었으니까요.
사진도 없는 작가 프로필 첫 문장이 '군산에 산다'였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군산에 작가가 산다니 우연히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슴이 뛰었습니다.
2017년 가을, 페이스북에서 기적처럼 배지영 작가를 보았습니다. 현실 작가와 독자가 이렇게 연결되는 세상이구나 신기했습니다. 구구절절 메시지를 보냈지요. 드디어 답장이 왔습니다.
그 해 12월 작은 카페에서 처음 배지영 작가를 만났을 때, 저는 작가의 팬은 아니었습니다. 작가보다는 주인공에게 반하는 사람입니다. ‘소년의 레시피’ 주인공은 그녀의 아들, 강제규입니다. 제규는 우리 큰아들보다 한 살 많습니다. 그런데 달라도 너무 다르더군요. 우리 아들은 저를 닮아 겁이 좀 많습니다.
그 날 제가 들고나간 선물은 볶은 참깨 한 주먹이었습니다. 저처럼 요리를 못하는 배지영 작가에게는 쓸모없는 것이지요. 제대로 볶은 건지도 모르면서 요리하는 제규에게 전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한 시간이 훌쩍 넘도록 책과 글쓰기, 아이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들 둘을 키운다는 거, 늦둥이를 낳을 때 고생을 많이 했다는 거, 지지하는 정당이 같다는 공통점도 있더군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찔끔 눈물이 났습니다.
그녀가 부러웠어요. 밥해 주는 훌륭한 남편과 의젓한 큰아들도 있고요. 아이들에게 논술 지도를 하면서 벌써 세 번째 책을 썼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나이가 저보다 어렸습니다. 말도 안 되는 시기와 질투로 저는 한심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밥해 주는 남자들이 없어서 글은 못 쓰겠다. 맛없다고 투덜거리기만 하는 남자 셋이랑 사니까 그냥 책이나 열심히 읽자’ 그랬습니다.
해가 바뀌고 연초부터 희한한 일들이 생겼습니다. 어깨에 뽕 들어갈 만한 작가님이 한낱 평범한 독자에게 카톡을 보내는 겁니다. ‘시립 도서관에서 박준영 변호사 강연이 있습니다.’ ‘한길문고에서 글쓰기 강연이 있습니다.’
강제규 팬인데 시치미 뚝 떼고 배지영 작가를 만나러 다녔습니다. 추천한 책들을 사서 읽었습니다. 배 작가는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글 바로 쓰기‘를 다섯 번인가 읽고 요약정리를 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간신히 한 번 읽었습니다. 스티븐 킹의 ’ 유혹하는 글쓰기‘도 저를 유혹하지는 못했습니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어도 책은 아무나 쓸 수 없지. 흥, 책도 못 읽는 주제에. 치, 우리말도 제대로 모르면서. 뿡, 시방 내가 누구를 시기 질투하냐’ 그랬습니다.
2018년은 제가 살면서 가장 열심히 책을 읽은 시간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책모임에 있는 동안 참 행복했습니다. 굳이 내가 쓰지 않아도 괜찮았지요. 읽으면 읽을수록 읽고 싶은 책이 더 늘어만 갔습니다.
11월의 어느 날, 또 카톡이 왔습니다. 배지영 작가는 에세이 쓰기 수업을 연속해서 열두 번이나 한다고 했습니다. 무료로 말입니다. 엄청난 행운인걸 알면서도 에세이 쓰는 숙제가 있다고 해서 조금 고민했습니다. 숙제를 못해서 중도에 포기하면 어쩌나, 엉터리 글로 창피를 당하면 어떡하나. 걱정 반, 두려움 반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30대까지 수도꼭지였어요. 서른여덟 늦은 나이에 건강하지 않은 둘째를 낳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 눈물바람이었죠. 밤새 아기가 울면 힘들어서 함께 울고, 애기가 자면 미안해서 울고, 설거지하다가도 훌쩍거렸어요. 365일쯤 그러고 나니 눈물이 다 말랐습니다.
지난 10년은 거의 울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생각해도 이상했습니다. 감정이 너무 메말랐나 살짝 걱정도 했습니다. ‘내 눈물샘은 수도꼭지가 아니라 우물이었구나. 너무 퍼내서 말라버린 거야.’ 그런데 2주에 한 편씩 에세이를 쓰면서 우물이 다시 차올랐나 봐요. 글을 쓰면서 맨날 눈물바람입니다.
술만 취하면 옛날 얘기하면서 울던 아버지가 정말 싫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타고난 울보들은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엄마가 되도, 늙은 아버지가 되도요. 울보는 아버지의 유산입니다.
친정 엄마 이야기를 쓰면서 딸들에게는 무심하다 생각했던 엄마와 화해했어요. 엄마가 아들을 더 챙겼던 것은 그 시대의 사회 문화이고 가정환경 문제였던 거예요. 건강을 지키며, 혼자서도 씩씩하게 사는 엄마는 지금 저의 롤모델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쓰기 전에는 막막하고 답답했지만, 오히려 쓰기 시작하면 치유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에세이를 쓰면서 지금까지 나를 키워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떠올랐고요, 심지어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소중한 시간을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해 주는 배지영 작가는 재력가입니다. 에세이 수업 시간마다 끊임없이 영업 비밀도 퍼주거든요. 만약 재력가가 아니라면 그녀는 용감한 사람입니다. (진짜 영업 기밀은 공개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
지난밤, 에세이 수업 단톡 방에 올라온 배지영 작가의 글을 읽었습니다. 제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글이었죠. 퍼주는 작가 배지영도, 걷는 배우 하정우도 참 멋진 중년입니다. 하지만 동이 틀 때까지 친구와 밤새워 걸었다는 스물한 살 청년이 훨씬 멋있습니다. 우연을 가장하고 그 청년을 만나러 은파 호수 공원에 나가보고 싶었습니다.
“혹시 강제규 씨 맞나요? 제가 참깨 보낸 팬입니다.” 그렇게 어필하고 함께 걷고 싶은데 저는 겁이 좀 많습니다. 깜깜한 밤에는 나가지 못하는 겁쟁이입니다.
배지영 작가가 여기저기 글을 올려 보라고 채근하지만 겁이 납니다. 지금까지 쓴 글은 제가 주인공이 아니거든요. 주인공이 되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아직 겁쟁이 울보니까요. 울면서 쓰는 글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