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영화 같은 일이 이루어지기를~~~

친구를 배우다 5 - 네버 앤딩 스토리

by 툰자

칙칙한 백수 신세로 스물네 번째 화사한 봄을 맞이했다. 평일에는 열심히 입사 원서도 내러 다니고 면접도 보러 다녔다. 정작 주말은 그런 볼일도 없고, 용돈도 궁해서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햇살 좋은 주말 오전, 언니의 학창 시절 단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언니 안산에 살잖아요.”

“알아. 근데 너 남자 친구 있어? 우리 시동생 한 번 만나 볼래?


그 언니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바로 소개팅이 잡혔다. 대전 서부 터미널 앞에서 소개팅남과 만나기로 했다. 핸드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나는 노란색 재킷을 입고 나가기로 했고, 그는 자동차를 타고 온다고 차 넘버를 알려줬다. 인상착의만 보고 접선을 하는 이른바 007팅이었다.

눈에 확 띄는 개나리색 재킷을 입고 터미널 앞에 주차된 자동차 근처로 갔다. 은빛 자동차의 창문이 쓰윽 내려가더니 남자가 말했다.

“OOO입니다. 타시죠?”


햇빛을 반사하는 은빛 자동차 때문인지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인지 눈이 부셨다. 그의 옆자리에 앉자마자 가슴이 뛰었다. 대전 외곽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마주 보고 앉았을 때 그는 별로 말이 없었다. ‘과묵한 사람이구나’ 그것도 장점으로 보였다.

만난 지 서너 시간 만에 군인이던 그가 부대로 복귀해야 한다고 해서 헤어졌다. 에프터는 없었다. 그때 알았다. 그가 과묵한 게 아니라 내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고작 한 살 위인데 자동차를 끌고 나온 그에 비해 백수인 나는 대시해 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주선한 언니에게 조금 창피했다.


그 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동료들 소개로 미팅에 나갔다. 그런데 소개팅에 나갈 때마다 그가 떠올랐다. 그를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곤 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스테이크를 썰거나, 어둑한 극장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는 것도 매번 불편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해 갈수록 소개팅은 더 어려워졌다.


스물여덟의 어느 봄날, 전화벨이 울렸다. 4년 전 소개팅을 주선한 언니였다.

“남자 친구 있어?”

“네? 지금은 없는데......”

“어머 잘 됐다. 우리 도련님도 아직 없는데 호호호.”

“그럼 연락처만 주세요. 한 번 만난 적 있으니까 제가 연락할게요.”


반갑기는 했지만 4년 전이 생각나 부담스러웠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 그가 먼저 전화를 했다. 그도 나처럼 부담스러웠는지 신중하게 말했다. 전방 근처 부대에 있고, 대위로 진급한 지 얼마 안 돼서 당장은 휴가를 내기 어렵다고. 우선 전화 통화로 연락하고 지내자 했다. 그날부터 우리는 매일 밤 목소리로 만났다. 그는 과묵한 사람이 아니었다.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가 잘 통했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내가 한 살 위니까 오빠라고 부르면 안 되나?”

심장이 요동쳤다. 그가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 같았다. 그는 오 형제 중 막내여서 ‘오빠’라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친오빠도 사촌 오빠도 없어서 오빠라고 불러보고 싶었는데.

전화 데이트만 한 달쯤 했을 때 그가 훈련 소식을 알렸다. 훈련 기간에는 산에 들어가 통화가 어려우니 대신 편지를 쓰라고 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밤마다 편지를 썼다. 내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드디어 우리는 4년이 훌쩍 지나 다시 만났다. 목소리와 글자로 만나다가 직접 얼굴을 마주하니 조금 쑥스러웠다. 전화로는 ‘오빠, 어쩌구 저쩌구’ 몇 년 사귄 사람처럼 그래 놓고 막상 만나니 오빠라는 말이 쉽게 안 나왔다.

돈가스를 먹고, 외출나온 군인들로 만원인 동두천 극장 뒤쪽에 서서 영화 ‘고질라’를 봤다. 영화는 유치했지만 지루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4년 만에 다시 만난 그 날 헤어질 무렵, 그가 슬그머니 내 손을 잡았다.

“또 보자. 내가 갈게.”


그 해 여름 내 생일 아침에 소포가 도착했다. 카세트테이프 하나와 여섯 장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테이프에는 노래방에서 녹음한 생일 축하송과 오빠의 애창곡이 들어 있었다. 음치였지만 귀여웠다. 편지에는 쪽팔림을 무릅쓰고 노래방 다섯 군데를 돌아다닌 후에 겨우 녹음할 수 있었다고 쓰여 있었다. 지독한 악필이었지만 여섯 장에 묻어 있는 그의 진심만 보았다.


자신의 단짝 친구와 친동생이 동서 사이가 된다는 게 불편했던 언니가 결혼을 반대했지만 나는 들은 척도 안 했다. 다음 해 1월,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에 우리는 결혼했다.

결혼하고 나서 알았다. 취향도, 성격도, 식성도 우리는 너무 달랐다. 연애할 때는 안 보이는 게 참 많다. 그래도 신혼 시절엔 서로 맞춰보려고 애를 썼다. 아이를 낳고 산후 우울증이 오자 사정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사사건건 날이 서고 예민해져 막말도 많이 했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결혼한 거 아냐? 나랑 헤어지고 싶은 거지?”

“소설을 써라. 소설을.”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그는 꼭 그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그 말을 들으면 내 감정을 무시하는 것 같아 불같이 화를 냈다. 살면서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그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자꾸 듣다 보니 이제는 이런 생각을 한다.

‘야, 나도 진짜 소설 쓰고 싶다. 소설 쓰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냐?


5년을 그리워하다 만나서 20년을 함께 살았다. 기적에 가깝다. 고집 세고 자기애가 강한 나를 조금씩 물렁하게 만든 건 그의 참을성과 유머 덕분이다. 나는 여전히 그에게 편지를 쓴다. 수시로 폭발하는 나의 ‘갱년기 버럭’에 대한 반성문을 쓴다.


25년 동안 꾸준히 일기와 편지를 쓰도록 동기를 유발한 사람은 남편이다. 그래서 내 일기와 편지의 주인공도 절반은 남편이다. 이 노련한 글쓰기 코치가 계속 주문을 외쳐 준다면 좋겠다.


“소설을 써라. 소설을.”


‘그의 주문이 통한다면, 내가 간절하게 원한다면, 그가 다시 내게 온 것처럼 또 한 번 영화 같은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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