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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툰자 Nov 29. 2020

 변기를 닦으면서

<조용한 희망>을 품다

남자 셋, 여자 하나인 가족 구성에서 여자인 내가 불평불만을 가장 많이 터뜨리는 공간은 화장실이다. 엉덩이를 신속하게 얹어야 할 부분이 위로 올라가 있고 십중팔구 노란 자국들의 역겨운 냄새가 나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급한 볼 일을 참고 변기를 닦아야 할 때마다 이를 앙다물었다.


우리 집 변기를 닦으면서도 자존감이 무너질 때가 있다. 두 개 화장실에 왔다 갔다  매일매일 반복해도  한 남자만 들어갔다 나오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절대 좋아할 수는 없는 일이라서.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닌데 나만 억울하게 책임지는 것 같아서. 그런데 다른 집 변기를 닦을 수 있을까? 어린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 있을까?


28세, 싱글맘 스테퍼니 랜드는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가 공부하고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먼저 엄마가 되었다. 한참 멋 내고 놀기 좋은 나이에 아기와 노숙인 쉼터에서 지냈다. 거기서 아기는 걸음마를 배웠다. 쉼터를 나와서는 사회복귀 과도기 시설로 이용되는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지냈다.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돈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서류뭉치를 끌어 모으고 오래 기다려야 했다. 지원을 받아도 턱없이 부족한 생계비를 벌기 위해 남의 집 침실을 정리하고 주방의 기름때를 지우고 오물로 뒤덮인 변기를 닦았다.



스테퍼니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양배추 인형을 떠올린다. 그 인형은 인기가 많아  엄마가 몇 시간이나 줄 서서 기다렸다 사 온 거였다. 인기 비결은 인형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특이한 절차 때문이었다. 마치 아이를 입양한 것처럼 양배추 인형의 좋은 부모가 되겠다고 선서하고 입양동의서에 서명하는 거였다. 그녀는 양배추 인형, 앤젤리카를 생각하며 자신의 딸, 마야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부모의 학대로 웃음과 건강을 잃고 결국 하늘나라로 떠난 아기가 생각났다. 인형이나 반려 동물도 함께 지내려면 애정과 책임이 필요한데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을 지켜주지 못한 어른으로서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다.


스테퍼니의 양배추 인형처럼 가족의 가치와 책임감을 장려하는 인형이 우리나라에도 있으면 좋겠다. 꼭 필요한 교육은 일상에서 어릴 때부터 스며들어야 하니까. 반려동물이나 아이를 입양할 때는 더  신중하게 결정하고 정부는 더  세심입양 절차를 마련해야겠다. 


싱글맘의 현실은 냉혹하다. 스테파니는 독한 세정제와 함께  배고픔과 통증을 참으며 일하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다. 곰팡이가 자라는 열악한 아파트에서는 딸의 건강조차 지켜주기가 어렵다. 이웃의 싱글맘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스테파니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모든 정부 지원 혜택을 찾아 신청하며 버텨낸다. 마침내 학비 지원까지 받아 일과 공부, 육아를 병행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딸과의 추억을 글로 다.


다른 집의 구역질 나는 변기를 닦으면서도 스테파니는 꿈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꿈의 도시, 미줄라에서 마야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청소원으로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면서도 놓지 않았던 꿈의 대학교에 들어간다.


스테퍼니는 한 때 자신이 청소하는 대저택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근사한 저택 안에도 저마다 다른 이유로 아픔과 슬픔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는다. 집이란 우리를 감싸 안을 수 있는 곳, 소속감과 익숙함을 느낄 수 있는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변기를 닦으면서 그만 투덜거려야겠다. 조용한 희망을 자. 화장실 청소를 나눠하든지  앉아서만 볼 일을 처리하든지 선택하라고 해야겠다.  청소하는 동안은 우리 가족을 돌본다고 생각하자. 집은 우리를 감싸 안는 곳이니까.


스테퍼니는 아무것도 없이 딸을 책임질 만큼 용감하고 씩씩했지만 사회복지제도가 없었다면 꿈을 이루는 일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지만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꿈을 실현하려면 국가가 도와야 가능하다.


우리나라도 부모가 아이를 책임지고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태어나자마자  베이비 박스에 버려지거나 온라인 마켓에 아기를 내놓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은 낳아준 부모와 함께  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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