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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IMI Aug 16. 2019

인도 여행 28.  인간이 만든 가장 큰 조각품

2019. 1. 30.

보이는 식당들은 먼지 가득한 길가에 그대로 실내가 노출되어 있는 형태라 애써 들어가서 아침을 먹고 싶지 않다. 엘로라 석굴은 멀지 않다고 하여 오렌지 몇 개를 가방에 넣고 릭샤를 타고 미니 타지마할이라고 불리는 비비 카 마크바라(Bibi Ka Maqbara)로 향했다.      


데카의 타지, 비비 카 마크바라  Bibi Ka Maqbara

아우랑제브의 아내 라비아 울(Rabia-ul)의 아름다운 무덤은 그들의 아들인 아잠 샤(Azam Shah)에 의해 1651년~1661년에 건축되었다. 아잠 샤는 아우랑제브의 유언에 따라 황제를 넘겨받을 뻔했지만, 후에 무굴 7대 황제가 된 이복동생 무쟘(Muzzam)과의 권력 분쟁에서 살해당한 왕자다.

이 무덤은 건축학적으로 아그라의 타지 마할과 비슷하여, 「데카의 타지」라고 불렸지만, 아그라의 타지마할에 비하면 매우 수수하다. 무덤의 하단부는 꽃 장식의 흰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벽면의 대부분은 현무암 위에 고운 석고로 덮여 있다. 남쪽의 정문으로 들어가면 지하에 놓여 있는 관을 볼 수 있고, 관 위와 주변에는 엄청난 양의 지폐와 동전이 무수히 쌓여 있다. 재미 삼아하는 구멍에 동전 넣기 수준이 아니다. 인간의 두려움과 행운을 원하는 욕구를 이용하여 관위에 지폐를 정확히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소문냈을 듯싶다.     


판차키 이슬람 사원  Panchakki Masjid

다시 시내 쪽으로 와서 판차키 이슬람 사원(Panchakki Masjid)를 찾았다. 풍부한 역사와 아름다운 건축물, 무엇보다도 중세에 만들어진 위치에너지를 이용한 수력발전소로 유명하여 충분히 방문할 값어치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슬람 사원에도 불구하고 들어오라고 호객행위를 하는 이들을 보니 정나미가 떨어져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사원 옆을 흐르는 나브칸다 궁전(Navkhanda Palace)의 해자로 쓰였을 캄 강(Cham River)의 시꺼먼 물 위엔 온통 생활쓰레기가 가득 차 악취를 풍기고 있으니 더욱 들어가기가 싫다. 한때 아우랑제브가 통치했던 아우랑가바드는 지금은 매우 초라한 행색이다. 성벽은 거의 무너져 있고 덩그렇게 남은 성문 사이로 분주하게 오토바이들이 오고 가고 있다.     


엘로라 석굴 사원  Ellora Caves

10시 20분, 버스터미널(CBS)에서 엘로라 석굴로 가는 흰색 버스는 아잔타 행보다 더 고급지지만 거리가 짧다 보니 40루피다. 흔히 택시투어는 엘로라 1,500루피, 아잔타 2,500루피를 요구하지만, 아잔타 투어에는 298루피, 오늘 엘로라는 80루피에 불과하고 버스가 그리 불편하지 않으니 택시를 이용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슬림 노인이 옆에 앉았지만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딱히 할 이야기가 없다. 꾸뜹 미나르와 타지마할 사진을 보여 주면서 이슬람에 호의를 표현하니 좋아하는 눈치다. 그는 힌두교 신자는 돈을 벌면 미국이나 유럽에서 사용하여 인도에 도움을 주지 않지만, 무슬림은 모든 돈을 국내에서만 사용하는 정직한 사람들이라 말하면서 정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쿨다바드(Khuldabad)의 모스크에서 예배를 보기 왔다는 그는 아우랑제브의 묘를 방문할 것을 추천하였다.

거의 1시간 걸려 도착한 엘로라 석굴 사원(은 5세기에서 10세기에 걸쳐 완성된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가 함께 있는 석굴 사원으로 「1983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경사진 바위산을 깎고 뚫어 만든 정교한 사원들은 위대한 신앙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기념물이다. 100여 개의 석굴 중에 현재 34개가 공개되고 있으며, 가장 오래된 12개의 불교 석굴(1번~12번)과 17개의 힌두교 석굴(13번~29번), 5개의 자이나교 석굴(30번~34번)로 구성되어 각 종교의 개별적인 건축 스타일과 사상을 나란히 보여주고 있다. 입구에 들어가면 눈앞에 바위산을 깎아 만든 시바의 사원인 16번 석굴이 보인다. 워낙 대작으로 소문난 곳이라 이곳부터 먼저 보면 다른 석굴들이 시시해질 것 같아 오른쪽 끝의 1번 석굴부터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불교 석굴  Buddhist monuments: Caves 1~12

8칸의 작은방이 있는 수도원 형태의 1번 석굴, 소박해 보이는 2번 석굴을 거쳐 5번 석굴에 오니 다른 동굴들에 비해 크고 독특하다. 20칸의 작은 방과 24개의 기둥이 있으며, 손님을 위한 공간 또는 설법하는 교실로 사용된 36 m×17m의 중앙 홀의 가운데로 길게 두 줄의 벤치가 만들어져 있다.

건축과 장인의 힌두교 비슈바카르마(Vishvakarma)에 봉헌된 10번 석굴은 엘로아에서 유일한 둥근 천정 형태의 예배당(chairya)으로 불교뿐만 아니라 힌두교의 조각들을 볼 수 있었다. 다양하고 많은 보살로 둘러싸여 있는 예배당 중앙의 부처는 정면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태양빛으로 더욱 빛나 보인다. 아파트처럼 생긴 3층의 석굴인 11번과 12번 석굴의 벽에는 만다라(Mandala), 수많은 여신, 다양한 부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힌두 석굴  Hindu monuments: Caves 13~29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16번 석굴인 카일라사 사원(Kailasa Temple)은 시바에게 봉헌하기 하나의 바위산을 깨뜨려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 조각물이다. 100년에 걸려 20만 톤의 현무암 조각을 깨뜨려 완성하였다는 이 사원의 웅장함과 정교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인류사의 기념비적인 예술품이다. 대를 이어가며 망치와 정만으로 돌산을 위에서부터 깨뜨려가면서 거대한 신전을 만들겠다는 상상을 현실로 만든 인도인들의 집념이 경외스럽다. 하지만, 왕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던 지배자들의 탐욕과 신에게 경의를 표현하여 해탈하고자 했던 노동자의 갈망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생각에 당시 고통받는 민중의 아픔이 느껴진다. 갖은 고생 끝에 만들어진 이 신전을 무굴제국의 아우랑제브 황제가 1,000명의 노동자를 투입하여 사원을 파괴하려 했으나 흠집만을 남긴 채 3년 만에 포기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약 4,000㎡의 넓이와 33m 높이의 돌산을 깎아 만들어진 신전은 그 규모뿐만 아니라 수많은 정교한 조각품들에게 크게 눈길이 간다. 입구로 들어가면 락슈미와 그녀의 코끼리, 왼쪽과 오른쪽 끝에 있는 실제 크기의 거대한 두 마리 코끼리를 볼 수 있다. 오른쪽 계단의 바깥쪽 벽면에 새겨져 있는 라마가 하누만과 함께 아내 시타를 구하는 라마야나 이야기가 섬세하게 부조로 묘사되고 있으며, 벽면의 뒤쪽으로는 번영의 상징인 코끼리와 힘의 상징인 사자가 나란히 서서 카일라사 산을 형상화한 거대한 주탑을 등으로 떠받치고 있다. 신전의 삼면은 모두 긴 복도로 이어져 있고, 다양한 조각들이 벽면에 새겨져 있으며, 석굴에 있는 조각상들은 머리가 깨지고 팔이 잘린 채 훼손되어 있다.

입구로 나와 왼편의 언덕으로 올라가면 내부에서 볼 수 없었던 수백 점의 환상적인 조각품과 함께 거대한 사원의 위용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시바의 바하나인 난디와 코끼리 위에 앉아 있는 사자 등 독특한 조각품들을 눈길을 끈다.     


자이나교 석굴  Jain monuments: Caves 30~34

매표소 근처에서 30분 간격으로 움직이는 셔틀버스를 타고 자이나교 석굴로 향했다. 우선, 미완성 31번 석굴을 지나 32번 석굴로 들어갔다. 인드라 사하(Indra Sabha)라고 불리는 이 석굴은 엘로라의 모든 자이나교 사원 중에서 가장 크고 2층으로 만들어진 최고의 사원이다. 1층은 오른쪽의 거대한 코끼리 석상, 탑, 벽면 등 16번 석굴 카일라사와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2층이 보다 화려하고 장식이 풍성하다. 사자와 코끼리로 장식된 2층의 입구를 지나면 천정의 연꽃과 같이 수많은 복잡한 조각품들이 사원을 장식하고 있다.

32번 석굴의 바로 옆에는 33번 석굴 자간나사 사바(Jagannatha Sabha)가 있다. 2층으로 만들어진 이 석굴은 32번 석굴보다 조금 작은 규모이며 다섯 개의 성소가 있다. 34번 석굴은 왼쪽에 있는 입구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석굴이다.

30분쯤 관람하다 보니 셔틀버스가 떠날 시간이다. 출구로 가는 도중에 대다수의 인도인 관광객들은 힌두교 사원을 보기 위해 중간에서 내렸지만 더 이상 구경하고 싶다. 모든 것이 국보급 문화재 수준이지만 여러 개를 보다 보니 이제는 그 매력이 쉽사리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장 소박한 황제 무덤, 아우랑제브 무덤

큰길로 나와 릭샤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쿨다바드(Khuldabad)의 아우랑제브 황제의 무덤으로 왔다. 50년 동안이나 무굴 제국을 통치했던 아우랑제브는 아버지가 세운 타지마할이나 다른 무굴 황제의 무덤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시골 마을의 이슬람 사원에 있는 조그마한 무덤이다. 그는 자신의 책을 팔아 무덤을 건축하라고 했을 정도로 검소하고 독실한 이슬람 신자였다고 한다. 이슬람의 성스럽고 영적인 도시에 묻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그는 진정으로 나라의 경제를 걱정했던 황제이었던 듯싶다.     

아우랑가바드로 향해 가는 버스는 도중에 다울라타바드 요새(Daulatabad Fort) 앞에서 잠시 정차한다. 델리 전체 인구를 강제로 2년 동안 이동시켰으나 물 부족으로 버려졌다는 이 요새는 독특하게 평지 위에 원뿔 형태의 언덕처럼 세워져 있다. 내릴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오늘 먹은 음식이 오렌지 몇 개뿐이라 지친다. 얼른 장미 식당으로 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저녁을 먹는 중에 아잔타에서 동행하면서 힌두교에 대해 알려주었던 Shailesh 씨의 전화가 왔다.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그는 아우랑가바드 공항에 근무하는 에어인디아의 직원이었다. 퇴근 시간이 넘었는데 나를 만나고 싶어 기다렸다는 말이 고맙다. 그의 손에 들린 티켓은 발을 뻗어도 앞이 닿지 않는 제일 편안한 맨 앞좌석 3F였다. 뜻밖의 선물을 받고 다시 뭄바이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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