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29.
편한 호텔 덕분에 아침이 개운하다. 하루 1,200루피의 차야 호텔(Hotel Chhaya)의 만족도는 최고다. 더블침대가 놓인 넓은 방, 깨끗한 화장실, 따뜻한 물이 콸콸 나오는 샤워기가 있다. 꽤 비쌌던 뭄바이 호텔에서도 양동이에 받아서 샤워해야 했는데 대중목욕탕 수준으로 따뜻한 물이 나온다. 어제는 한국에서 가져온 샤워타월을 개봉하고 샤워다운 샤워를 할 수 있었던 즐거운 날이었다.
아잔타(월)와 엘로라(화)의 휴무일을 고려하여 계획한 일정이 만족스럽다. 오늘은 먼 거리의 아잔타를 다녀오고 내일은 엘로라를 다녀온 후 비행기로 다시 뭄바이로 가면 된다. 버스 터미널(Central Bus Stand)에서 과자와 물을 챙겨 7:15 아잔타행 42인승 로컬 버스를 탔다. 한눈에 봐도 어떻게 움직이나 싶을 정도인 낡은 버스를 3시간을 타야 하지만 의외로 버스 냄새도 나지 않고 진동도 별로 없으며 좌석도 불편하지 않다. 티켓 발급 단말기를 목에 걸은 차장이 요금을 받으러 다닌다. 3시간 동안 94km를 가는데 149루피다. 가격이 맘에 든다.
출발한 지 20여 분이 지나니 본격적인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열린 창문 사이로 흙먼지가 들어와서 닫았지만 이내 다시 열린다. 인도는 좌측 주행이라 왼편의 좌석에 앉으니 아까보다 흙먼지가 적게 들어온다. 도로의 포장 상태가 나쁘고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비포장길이 많아 잠을 잘 수가 없다. 터덜거리는 비포장길보다 늙었지만 아직 기운은 씽씽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최대한 힘껏 달리는 포장길이 오히려 무섭다. 실로드(Sillod)에서 5분간 정차한 버스는 다시 출발한다. 물을 마시려니 마개가 쉽게 열린다. 과자와 함께 사서 몰랐지만 수돗물이 꽉 채워진 재사용 물병이었다. 마실 수는 없다.
아잔타 석굴(Ajanta Caves)은 BC 2세기부터 AD 6세기에 걸쳐 제작된 30개의 석굴로 이루어진 불교 예배당(Chaitya)과 수도원(Vihara)으로, 「1983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말굽 모양으로 굽어있는 와고라 강(Waghora River)의 가파른 바위 면 위에 하나를 만드는 데 30년이 걸린다는 석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아그라의 타지마할처럼 학창 시절에 교과서에서 보았던 장면이라 감동이 밀려온다. 석굴들은 연대순으로 번호가 매겨지지 않고 입구에 있는 1번 석굴부터 시작하여 서쪽으로 번호를 매긴다. 우연히 매표소에서 하루 종일 동행한 인도인 Shailesh 씨에 따르면 1번, 2번, 16번, 17번 석굴이 가장 의미가 있고 예술성이 높다고 한다. 예배당은 고래의 뱃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둥근 천정에 서까래가 갈비뼈처럼 디자인되었으며, 수도원은 내부에 수행자를 위한 작은 방이 만들어져 있다.
가장 늦게 조성되었다는 1번 석굴로 들어서는 순간 “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12개의 굵고 튼튼한 기둥이 받치고 있는 폭이 12미터 높이가 6미터의 사각형의 홀 끝에서 부처가 앉아서 설법하고 있다. 곳곳에는 말, 황소, 코끼리, 사자, 승려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부처의 과거의 삶과 득도를 묘사한 장면, 부처를 숭배하는 모습을 모티브로 한 그림들이 벽과 천정에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연꽃을 들고 있는 연화수보살(Bodhisattva Padmapani)과 그를 보호하고 있는 금강불(Vajrapani)을 묘사한 두 개의 그림이 아잔타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연화수보살은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으로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명상하는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
2번 석굴은 1번 석굴보다 조금 넓으나 비슷한 구조로 생겼으며, 벽과 천정, 기둥의 그림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오른편에는 석굴 수호신인 약사(Yakṣa)의 신상들이 있으며, 벽과 천정에는 원숭이의 왕 자타카스(Jatakas)와 부처가 기적을 보였다는 코살라국의 수도 스라바스티(Sravasti), 힌두교의 여신들, 마야 부인의 꿈이 그려져 있다. 1번 석굴에서는 부처의 존엄을 강조하는 반면에 2번 석굴에서는 부처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의 위대함을 표현하고 있다. 소풍을 온 왁자지껄한 한 무리의 중학생들과 함께 다음 석굴로 자리를 옮긴다.
가장 큰 수도원인 4번 석굴, 미완성 5번 석굴, 2층으로 된 6번 석굴, 승려들을 위한 8개의 작은방이 있는 7번 석굴, 미완성 8번 석굴, 유럽의 성당 같은 느낌의 9번 석굴, 1819년 영국 장교인 존 스미스가 유럽에 소개했다는 10번 석굴, 바위 벤치가 있는 11번 석굴, 12개의 수행자의 방이 있는 12번 석굴, 승려들의 돌침대가 있는 13번 석굴, 미완성 14번, 15번 석굴을 지나 협곡의 정 중앙에 위치하여 강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16번 석굴에 도착했다.
입구의 양쪽에는 코끼리가 조각되어 있으며, 강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석굴 안의 왼쪽 벽에는 걸작으로 유명한 「죽어가는 공주님(The Dying Princess)」이 그려져 있다. 부처의 사촌인 남편 난디(Nandi)가 승려가 되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쓰러진 아내의 슬픔과 이별의 고뇌가 얼굴과 몸짓에 잘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 벽면에는 부처에게 음식을 주는 수자타(Sujata), 나무 밑에 홀로 앉아 있는 부처, 도티 차림의 남자와 사리를 입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궁궐 속의 부처, 승려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부처의 부모 등 부처의 다양한 생애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17번 석굴의 입구는 16번과 비슷하다. 양편으로 각각 10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직사각형 형태의 예배당의 깊숙이 자리한 안쪽에는 부처가 가부좌를 틀고 설법을 하고 있다. 벽면에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 압사라(Apsara)와 불법의 수호신인 인드라(Indra)가 인간의 사랑과 행복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여러 가지 아름다운 벽화 중에서 왕과 왕비의 행렬, 흰 코끼리를 탄 왕자, 거지의 모습으로 돌아온 부처가 가족을 만나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18번 석굴은 벽화가 가득하지만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서 있는 부처를 만날 수 있는 19번 석굴의 입구는 꽃무늬로 매우 화려하며, 20번 석굴은 19번과 거의 비슷하다. 21번 석굴의 곳곳에는 푸른 꽃, 사자, 코끼리 등을 표현되어 있으며, 왼편 끄트머리에 있는 음악관의 기둥을 두드리자 청명한 소리가 들린다.
미완성인 22번, 23번, 24번 석굴을 지나 25번 석굴에 오니 지그시 눈을 감고 오른손을 머리에 괜 채 옆으로 누워 자고 있는 부처의 석상이 있다. 26번 석굴은 19번 석굴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크고 아름답게 수도원의 디자인 요소를 갖춘 예배당이다. 입구의 정면에서 정교하고 복잡한 조각품,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위쪽으로는 만들어진 커다란 창문을 볼 수 있다. 기도하는 공간인 직사각형 모양의 차이트라 홀(Chaitya Hall)의 중앙에서 부처가 설법을 하고 있으며, 천정을 받치고 있는 양쪽의 기둥과 부처의 생애를 묘사한 벽면 사이에는 긴 통로가 있다. 27번 ~ 30번 석굴은 미완성 또는 파괴되어 접근할 수 없다.
아잔타 석굴은 종교의 명과 암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곳이었다. 떨어지면 그대로 죽을 수 있는 75m 높이의 절벽에서 정 하나 망치 하나로 수 십 년 동안 바위산을 깨뜨려 굴을 파야만 했던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어렵다. 절대 권력에 대항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힘든 노동에 시달렸다고만 보이기는 어려울 정도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독특한 조각과 부처에게 진심을 담은 예술적인 벽화가 동굴마다 가득하다. 아잔타 석굴은 부처의 삶을 통해 고대 인도의 생생한 예술적 전통과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대단히 값어치 있는 곳이었다.
다시 3시간 동안 덜덜거리는 버스를 타고 아우랑가바드 버스터미널에 오니 5시다. 판차바티(Panchavati) 호텔의 한국 음식점 장미 식당에서 기력을 회복하고 숙소인 차야 호텔로 왔다. 호텔의 주변은 아우랑가바드의 대표적인 패션의 거리인 듯 9시가 넘었음에도 불빛이 환하다. 2차선 정도인 SB 대학 길(SB College Road)을 사이에 두고 대형 쇼핑몰과 함께 옷 상점들이 즐비하고, 약국, 서점, 문구점, 스포츠용품점, 식료품점, 신발 판매점, 보석점, 음식점, 슈퍼마켓에 손님들이 끊임없이 오고 간다. 와인숍에는 내일(1.30)은 술을 팔지 않은 간디 추모일인 「National Father's Day」라 술을 사기 위해 너도 나도 손을 내밀고 있다. 도로변에는 땅콩, 포도, 사과, 오렌지 리어카와 길거리 음식 노점 앞으로 오토바이, 릭샤, 트럭들이 혼탁한 먼지를 일으키고 있다.
아무리 남의 나라 구경이 재미있다고 해도 미세먼지로 꽉 찬 거리를 더 이상 걷기 싫다. 낮이건 밤이건 숨이 콱 막히는 먼지가 자욱하고 인도도 없는 인도의 거리가 싫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