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서 살아남기 - 6화>
요즘 핀란드는 눈 천지다. 내가 사는 유바스큘라에서 많은 사람들, 특히 학생들의 교통수단은 자전거인데, 눈이 많이 왔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핀란드에서는 눈을 치우는 것과 눈 길 위에 자갈을 뿌리는 작업이 활발하게 잘 돼서 큰 도로들은 잘 관리되어있다. 도시에 인도와 자전거도로도 아래 사진의 제설차가 다니며 잘 관리가 되어서 사람들은 자전거 타기를 포기하기보다 눈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기술을 오히려 레벨 업하곤 한다.
나도 운동신경이 있는 편이고, 솔직히 자전거를 못 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학교 캠퍼스에 갈 때 보통 자전거를 타지만, 그래도 눈이 오면 불안해하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 내 옆을 쌩쌩 추월하며 눈 위를 달리는 자전거들이 많다. 그러면 앞서가는 그 자전거가 미끄러질까 봐 오히려 불안해하곤 한다. '어라, 빨리 가도 괜찮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내가 속도를 낸다면 큰 코 다친다. 나에겐 눈 위를 그렇게 빠르게 달리는 자전거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항상 겸손하고 조심해야 한다.
나도 이번 겨울에 한번 넘어졌다. 넘어지고 나서부턴 눈 위에서 타는 자전거의 그 느낌이 무서워져서 바로 버스카드를 충전하고 버스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핀란드 겨울에 처음 넘어진 것을 핀란드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친구는 '아, 그때부터 겨울이구나, 하지 않아?'라며 말해줬었다. 그만큼 겨울에 눈이 오고 녹고 다시 얼면서 얼음이 됐을 때 핀란드에서는 누구든 넘어진다고 한다. 실제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낙상사고로 심각하게 다치니 문제라고 한다.
친구들과 가족도 겨울엔 꼭 헬멧을 쓰고 느리게 조심히 타거나 그냥 버스로 다니라고 충고했었다. 나는 그 말을 들어도 자전거로도, 걸어가도 미끄러지는 것이 똑같을 텐데 자전거로 미끄러지면 훨씬 빠르겠다며 웃어넘기곤 했다 (그리고는 헬멧을 쓰고 걷는 속도만큼으로 매우 조심히 자전거를 탔었다).
거의 3년을 이곳에 살면서 이제까지 눈이 왔을 때 넘어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엔 눈 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미끄러졌다. 오르막 길에 넘어져서 많이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치심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다른 사람들이 비웃지도 않았고 눈치 보이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나 자신이 뭔가 부끄러웠다. 넘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실패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실패해버린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자전거를 타지 않는 건 무서워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핀란드 눈 길 위에서 느낀 수치심에서 겸손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