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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과 태영 Oct 19. 2020

자기 인생의 실험자들

20년, 100명의 운영자들 

  체화당은 2001년 세 명의 아르바이트생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초창기 체화당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노력한 두 그룹이 있다. 우선 1999년과 2000년 이신행 교수의 수업 ‘문학에 나타난 정치’ 수강자들이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그 해 겨울 ‘체화당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운영을 본격화한다. 이 때는 카페로서 구색을 맞추기 위해 재활용센터에서 테이블과 의자 등을 들여오는 인테리어 작업이 주가 되었고, 체화당이 어느 정도 제 모습을 갖춰나가면서 다음 해 2002년에는 ‘토요강좌’ 등 프로그램 위주의 작업으로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다. 체화당의 시작에는 직접 가구를 나르고, 공간을 만들어나갔던 이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그리고 신촌민회의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당시 신촌민회 사무국장이었던 김현씨가 조직한 ‘시민사회운동학회’였다. 일부 멤버들이 체화당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면서 어린이학교, 마을음악회 등 기획하거나 운영진 활동을 해나갔다. 두 그룹에서 활동한 일부는 이후에도 체화당 뿐만 아니라 신촌민회, 풀뿌리사회지기학교에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어 지기, 간사-지기, 메인 지기를 거쳐 4년째 되는 2004년부터 간사-지기 체제로 자리 잡게 되다가 2015년 하반기부터 지기는 없는 매니저만 존재하는 구조가 되었다. 20년 간 체화당의운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사람, 즉 체화당을 만들어 간 사람들의 규모는 간사와 매니저, 지기 등 100명 정도로 파악된다. 그 중 운영을 총괄하는 간사와 매니저 역할을 한 이들만 24명에 달한다. 자기 인생의 실험자들이었지만 자신이 쌓은 경험과 통찰을 바탕으로 체화당을 좋은 장소로 만들어내고 지켜나간 사람들이다. 


간사-매니저 


  간사는 일에서 중심이 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기독교바탕의 단체를 포함하여 시민사회단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말이다. 처음에는 체화당 운영을 총괄하는 역할자를 ‘간사’로, 자원 활동 개념으로 공동으로 운영을 지원하는 역할자를 ‘지기’로 구분하였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간사라는 호칭에 대한 어색함이 커져 매니저와 혼용되며 사용되다가 2011년 매니저로 완전히 그 호칭을 바꿔 불렀다. 간사와 매니저라는 명칭 차이는 단순한 변화일 수도 있지만, 공간의 성격 중 무엇에 더 무게 중심을 두는지가 변화한 흔적 같다는 생각도 든다. 초기 체화당은 말 그대로 ‘공유 공간’에 더 가까웠다. 아마 우리 안에 공유했던 이미지라면 마을 사랑방과 동아리방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하면 주민을 조직할 수 있을지가 이 공간을 구상하고 실행한 이들의 미션이었고, 그런 점에서 그 총괄 역할자는 ‘간사’가 어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결제 시스템이 ‘공간 사용료’에서 ‘음료 값’으로 변해가던 것과 비슷한 결로 체화당에게는 또 다른 미션으로서 공간의 경제적 자립이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때마침 카페들이 밥집보다 많아지는 시대가 도래하기도 했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조직하는 역할자로서 ‘간사’보다는 공간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매니저’가 더 필요한 시대가 됐으리라. 그럼에도 어쨌든 이 글에서도 지금부터 편의상 특별한 맥락이 없는 한 체화당 운영을 총괄하는 역할자를 ‘매니저’로 부르려 한다. 다만, 개인이 특정되거나 시기가 특정될 때는 ‘간사’라는 호칭도 쓴다.


  24명의 매니저 

  간사, 매니저였던 이가 20년 동안 총 24명이었다. 이들 중 19명이 내부(연세대학교와 풀뿌리사회지기학교)에서 충원되었다. 여기서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기준은 교실의 경험이다. 연세대학교 이신행 교수의 수업을 들었거나, 풀뿌리사회지기학교의 학생이라는 것은 교실로부터 시작되고 이어진 체화당의 맥락을 생각할 때, 내부적인 인력충원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공개채용도 세 차례 있었다. 그 외에도 이전 운영자들이 추천하거나, 지기활동을 하다가 매니저가 되거나, 체화당에서 열린 프로그램을 통해 지기가 되는 식으로 넓은 범위의 운영진(간사, 매니저, 지기 등)은 지속적으로 꾸려졌다. 


[간사, 매니저의 충원 방식]


  공채 모집이 적었던 것은 체화당에도 나름 일의 구조가 순환되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기’라는 자원 활동가를 두어 체화당을 경험한 뒤에 지기 안에서 다음 매니저가 등장하는 시스템이었다. 그게 녹록치 않았을 때 공개 채용이 세 번 이뤄진 것이다. 이 시스템에 의해 매니저 중 45.8%(11명)가 매니저를 하기 전 지기 활동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에게 되돌아봤을 때 지기의 경험은 어땠는지, 어떻게 매니저까지 해 볼 생각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 궁금했다. 이에 대해 몇 명은 그 과정이 꽤나 자연스럽게 이뤄진 면도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공간을 운영해볼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매니저들의 근무기간은 보통 5~8개월이었다. 24명 중 1년을 넘긴 간사는 단 4명이다. 정동욱 매니저가 2년 7개월(2012.1-2014.7)로 가장 오래 근무를 했고, 그 다음으로 1년 10개월(2008.4-2010.2)의 김혜리 간사가 있다. 그리고 체화당의 마지막 시기를 담당했던 배울이 출신 권다은 매니저가 1년 6개월(2017.6~2018.12)로 세 번째를, 김민주 매니저가 1년 1개월(2016.4~2017.2)로 네 번째에 해당된다. 장기 근무가 가능했던 상황적인 조건들도 일부 작용하기도 했다. 반면 최단 근무기간은 3개월이었다. 그만 둔 이유로는 다음 행보, 경제적 불안, 번 아웃, 안팎의 한계 등을 들었다. 이밖에 두 번이나 매니저를 맡았던 이들도 있었다. 매니저는 보통 1인이었지만, 2인, 4인의 공동운영 체제도 있었다. 


  그 중 외국인 매니저도 있었는데, UC버클리를 졸업 후 샌프란시스코 구글 본사 근무 경력을 가진 미국인 제임스(James)가 2007년 4월 공동 매니저로 체화당 운영에 합류했다.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할 정도로 그는 이미 아시아 국가 중 일본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풍부했다. 이는 한국을, 체화당을 다음의 삶의 한 자리로 선택하는데 견인차가 되었다. 일본어가 능숙했던 유지숙 간사와는 일본어로 소통하면서 체화당을 이끌며 여러 일감들에 참여, 글이나 자리에서 자신의 삶과 지역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는 작업에도 열심이였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언어 능력자였던 두 간사 덕분에 당시 체화당은 3개 국어가 통용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그래서 이 때 영어, 일본어 대화를 하고자 체화당을 단골가게로 삼은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매니저의 역할

  2008년 매니저를 찾는 흥미로운 홍보물이 있었다. 비교적 매니저의 역할이 잘 정리되어 있다. 

  어떤가, 여러분들도 한 번 도전해볼 수 있겠는가.

지기 


  지기는 직(職)이며, 지기(志氣), 지키는 이(keeper). 사회지기를 의미한다. 사회지기란 ‘사회를 지켜가고 지어가는 사람’을 이야기한 것이다. 풀뿌리사회지기학교는 학교명에 그 지향을 직접 드러내는 반면, 체화당은 지기라는 역할명을 통해 사회만들기에 목적을 주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름이 의미하듯 지기는 지역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네트워크를 구상하거나 조직하는 등 지역사회의 새로운 경제, 정치, 문화를 실험, 실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체화당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신촌이라는 지역사회(현장)을 만나보는 경험, 그리고 그것을 조직해보는(지어가기) 일감을 하게 된다.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매니저와 달리 지기의 경우 2012년까지는 무급 자원 활동이었다. 메뉴를 무료로 제공받았고, 2006년 하반기부터 활동증명서 발급이 추가 되었다. 월요지기, 화요지기 등이라는 명칭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초창기 지기는 요일을 맡아 카페 공간에 상주했다. 지기 역시 ‘교실’을 통해 사람이 모였다. 때로는 대학YMCA와 같은 학생모임이 체화당을 모임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그 공간의 운영과 조직을 자기 과제로 삼아 좀 더 적극적으로 결합하기도 했다. 대학YMCA가 주축이 되어 체화당 지기 공개모집에 나선 2006년엔 결과 25명의 지기가 등록되기도 했다. 지기는 매니저를 도와 카페 운영과 조직(프로그램 기획)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급여가 없는 지기에게 프로그램 기획까지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지기를 두 가지 역할이 분리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후자를 ‘프로그램 디렉터’라고 부르게 된다. 2007년 공개 모집으로 결합한 중국인 유학생 왕환환이 대표적인 예이다.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중국어 모임이 가장 먼저 개설되었다.  


  별도의 임금이 없는 자원 활동(봉사직)에 기반하고 있는 공간 운영은 여러 가지 고민을 낳는다. 심지어 매니저 외에도 프로그램 디렉터 역할의 유급 지기와 무급 지기가 혼재되면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다소 불편한 심경은 있었으리라. 여전히 모든 활동에 급여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임금이 없는 노동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임금노동제 자체에 대한 저항을 소홀히 하게 될 수 있다는 생태사회주의자 앙드레 고르스의 우려에 동의하는 부분도 크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조건에서 사람들은 자발적인 노동의 동기를 갖게 되는지에 대한 질문과, 체화당의 지기는 그런 동기를 주는 역할이었는지에 대한 성찰, 그리고 실제로 지기의 모집 자체가 어려워진 2010년 이후의 현실 상황이다. 2010년 김원영 매니저는 매니저인 자신과 두 명의 지기에게 노동 시간에 따른 임금을 적용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지기에게 자립적인 경영, 공동체적인 운영에 대한 고민이 섞여 있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 

  2013년부터 풀뿌리사회지기학교 배울이들이 지기로 대거 등장하면서부터 이들에게 근로 장학금이나 아르바이트 시급이 제공되면서 지기의 자원 활동은 종식되었다. 그리고 2018년은 풀-민-C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행정으로부터 인건비를 지원 받았던 해이기도 하다. 풀-민-C는 풀뿌리사회지기학교해내외엔담이라는 사단법인으로 엮여 있는데, 법인은 서울시 청년뉴딜일자리 사업장 공모에 도전했고, 다행히 사업장으로 결정되어 1년 조금 못되는 8개월 동안 체화당 매니저의 인건비를 지원 받았다. 


체화당 운영위원회, 그리고 사단법인


  초장기 체화당에서는 매니저가 그만 두는 상황들이 종종 발생했다. 때문에 운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체화당 운영위원회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 때문에 운영위원회 조직은 간사에게 당연하게 요구되는 미션이나 다름없었다. 간사가 운영을 총괄한다고 하지만 체화당은 운영위원회라는 구조를 통해 공동 논의의 틀을 구축하고, 간사나 매니저가 바뀌더라도 공간과 조직이 지속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다. 하지만 그 때 그 때 구성되었던 체화당 운영위원회는 사실상 실행위원회에 가까운 역할을 기대했던 간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운영위원회의 실효성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다. 따라서 운영위원회 결성에 부정적인 간사들도 많았다. 하지만 2007년 하반기 발족한 체화당 운영위원회는 간사의 위원장 겸직, 실행기구로 개편 등 제기된 문제들을 보완해나가면서 2010년 1월 자진해산할 때까지 그 어느 때보다 체화당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활발하게 움직여나갔다. 그리고 이후 별도의 운영위원회 없이 간사와 지기들이 주관하는 운영회의 형식으로 이뤄졌다. 상근하는 유급 활동가와 이를 보완하는 논의 틀로서 운영위원회 구조는 사회운동조직에서는 제법 익숙한 논의-실행 구조이다. 하지만 이 구조에는 책임과 권한이 명확히 부여되어야 하고, 특히 참여자들의 동기가 지속적으로 확인되어야 한다는 필수조건이 존재한다. 아마 체화당의 이 구조가 이 필수 조건을 얼마나 충족했는가를 자문해보게 된다. 아마 부족했을 것이다. 


  2008년 출범한 사단법인이 어떤 의미에서는 법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좀 더 명확한 논의 틀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년 동안 24명의 운영자가 거쳐 갔다는 것은 매우 불안한 운영구조를 가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20년을 유지하며 여러 사람이 이 공간에서 성장했다고 감사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초기 체화당 운영위원회라든지 2008년 이후의 사단법인이라는 체화당 안팎의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옥상옥이라는 내부 비판은 늘 존재했지만, 체화당의 경험을 성공적인 카페 운영이라는 잣대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면 이 복잡하고 이상한 구조는 제법 많은 이들의 성장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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