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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과 태영 Oct 17. 2020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험들

마을의 확장, 사회만들기

세상을 바꿔나가는 작은 실험들 


  체화당이기에 가능한 실험들이 여러 시도되었다. 사실 자유로운 실험이 가능한 공간이었다는 점은 체화당을 거쳐 간 사람들이 이 장소를 긍정적으로 기억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실행 된 자유로운 실험들은 체화당의 장기적인 경제적 지속성 측면에서는 크게 기여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꽤 많은 이들이 이 점에 대해 “나는 체화당에서 성장하였으나, 체화당은 조직으로서 정체된 것 같아 고맙고 미안하다.”라며 언급했는데, 적어도 개인은 성장할 수 있는 품을 조직이 내어주었다는 점에 위안을 삼도록 하자. 덕분에 이렇게 회고하고 기록할 힘이 개인들에게는 남아있었으니 말이다. 


  열린 공간 

  2003년 신미연 간사가 아침 일찍 문을 열어 출근길이나 등굣길 골목을 베이글 굽는 맛있는 냄새로 이곳이 카페임을 알렸다면, 다음 해 2004년 오채함 간사는 체화당이 문을 연지 4년 만에 ‘카페 체화당’이라는 이름표(간판)을 달아 이곳이 카페임을 알렸다. 이어 김양희 간사는 공간의 과감한 재구성으로 여느 카페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노력했다. 문헌정보학과 출신 설혜윤 간사는 명실상부한 북카페로서 엄청난 양의 책들을 분류하고 정리해 외부에서도 검색이 가능케 해 책을 대여하기 위해 일부러 체화당으로 발걸음 하는 고객층을 마련했다. 2006년 체화당 구조 변경 공사를 거치고 중고 커피 머신을 들이면서 이제 어엿한 카페로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 때 매니저를 맡은 유지숙 매니저는 누구도 감히 따라오지 못하는 추진력을 발휘했다. 무작정 찾아간 홍대 클럽에반스에서 마을음악회 무대에 설 밴드를 섭외해냈다. 또한 리어카로 커피를 실어 나를 작정에 우리들을 움직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근 두 대학 축제에 체화당 부스를 마련했다. 커피와 함께 체화당의 작업을 홍보하고, ‘우리’가 되는 또하나의 경험이 추가되었다. 때로는 이렇게 공격적인 마케팅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체화당 바로 앞으로는 이화여대 공대 캠퍼스가 자리하고 있다. 2011년 어느 늦은 여름날 밤, 밤샘 작업을 하는 공대 학생들로부터 커피 배달이 가능하냐는 문의전화가 왔다. 단 한 명의 손님이라도 잡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잠깐의 주저함도 없이 가능하다고 답했고, 그렇게 해서 의도치 않게 종종 커피 배달도 하게 되었다. 오후 6시 이후에는 건물 안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는 관계로 건물 입구에서 ‘접선’해 전달했는데, 이 덕분에 공대생 단골이 많아졌다.  


  자율계산제 

  2006년 체화당은 자율계산제로 운영을 시도한 적이 있다. 2개월 정도였을까. 당시 공동 간사였던 이태영씨와 홍진명씨는 체화당을 사용한 사람들이 나갈 때 자율적으로 비용을 지급하게끔 시도한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그 이전에 비해 현격히 매출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적자는 아니었고, 오히려 첫 한 달은 호기심에 여러 사람들이 돈을 쾌척하는 바람에 제법 쏠쏠한 수입을 거둔 기억이 있다. 이 때 체화당은 공간 사용료와 음료 값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당시 서울에서 유행했던 민들레영토의 운영방식이 그러했다. 공간사용료를 내면 그 사용료에 차와 커피는 서비스 개념으로 제공되었다. 체화당도 비슷한 개념으로 운영을 시도하다가 음료 값으로 시스템을 변경하려는 고민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체화당은 사실 동아리방 내지는 아지트 같은 느낌으로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장소 사용에 비용을 낸다는 것은 지금이야 아주 익숙한 소비 행위지만, 어쩌면 21세기 들어와 채 10년이 되지 않던 저 시기는 적어도 돈을 내지 않고 사용하던 익숙한 공간이라는 것이 존재했던 시기여서 체화당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언제나 긴장이 존재했다. 하지만 체화당은 언제나 비지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 역시 존재했다. 이러니저러니 고민되던 때 잠깐 시도했던 자율계산제는 2개월의 실험으로 끝났지만, 크게 실패했다고 기록하지는 않도록 한다. 


  유기농 문화 키친

  2011년 김원영 매니저는 과감하게 생협으로부터 공급된 식자재를 사용하는 유기농 문화 키친을 표방했다.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모두의 반대를 무릎 쓰고 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전후 운영 수익과 큰 차이가 없어 모두가 우려할 만한 결과는 없었다. 체화당을 찾는 손님들 중에는 인근에서 하숙하거나 원룸에 사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청년 당사자이기도 한 그는 먹는 것이 부실할 수밖에 그들을 걱정했고, 한창 공부하는 학생들이 체화당에서만이라도 건강한 먹거리를 접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생협 매장들이 없기 때문에 온라인 주문을 통해 식자재를 매주 배달받았다. 때문에 재료가 소진되면 유기농 매장이 있는 신촌세브란스병원까지 뛰어갔다 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가끔 근처 슈퍼에서 살만한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을 만큼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유기농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는 가게들의 경우 가게 입구에 누구나 알 수 있는 표식을 해둔다. 이처럼 우리도 적극적으로 표시를 해두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커피머신 구입 

  2012년 초 갑작스레 수리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커피머신이 고장이 나면서 당장의 영업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커피머신 구입은 불가피해보였으나 당장의 목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바로 전 매니저였던 김원영씨가 중고 커피머신 구입을 위해 체화당 쿠폰을 발행해 볼 것을 제안했고, 반신반의하며 2020년 12월 31일까지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제작해 후원금 모집에 나섰다. 그리고 체화당 일이라면 항상 발 벗고 나서주는 가수 ‘짙은’ 덕분에 손쉽게 ‘체화당 커피머신 구입기금 마련 콘서트’를 기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4일 만에 목표액을 훨씬 초과하는 기적적인 일이 발생했고, 체화당을 응원하는 마음들을 확인할 수 있는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체화당은 쿠폰의 사용 기한이 오기 전에 문을 닫았다.


  리사이클 워크숍 

  2016년 체화당 앞마당의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각종 목공 장비들과 버려진 파레트들이 떠오를 것이다. 버려진 파레트들을 주워 와서 의자와 테이블 등으로 리사이클 하는 워크숍이 체화당 앞마당에서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파레트는 무악산에서 주워온 것이다. 봉원동, 대신동 일대는 원룸 신축 공사가 끊이질 않아 버려진 나무 파레트를 구하기란 매우 쉬운 일이었다. 이 즈음 워크숍을 통해 만든 ‘솔라 카페(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버스정류장)’은 지금도 봉원동 버스종점에 잘 위치해있다. 아쉽게도 태양광 충전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고 있지만 튼튼한 지붕이 여름에는 그늘이 되어주고, 눈과 비를 막아주는 충분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 작업은 당시 대학 기숙사 증축으로 여러 가지 위기에 봉착한 원룸-하숙 운영 주민들이 참여한 봉원마을 사업단 사업의 일환으로 연결되었는데, 지역재생과 리사이클을 연결한 시도에 체화당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기억이다. 


  체화당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프로그램들뿐만 아니라 체화당을 이용했던 개인이나 대관 그룹 모두가 곧 체화당이었고, 체화당이 스무 해까지 올 수 있게 만들어준 단단한 풍경이 되어 주었다. 사람과 장소가 서로 섞여들게 되면서 로렌스 듀럴(Lawrence Durrell)의 표현처럼 사람들이 ‘마치 어떤 풍경의 기능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체화당은 다양한 힘들이 모여 결국 좋은 공간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회만들기라는 체화당의 실험들


  이렇게 마을만들기로 쉽게 수렴되지 않는 작업들과 이 작업들에서 확인되고 서로 연결되는 목적성을 우리는 막연히 ‘사회만들기’ 작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대체 체화당은 왜 저런 것까지 하고 있을까 의아해하던 것들 중에는 분명 체화당에 참여했던 개인들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의식의 발화라는 최소한의 공통점 정도가 있었던 것 같고, 이렇게 개인이 자신의 문제의식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이웃과 동료를 이 문제의식에 초대하는 작업 자체를 체화당은 이 공간의 역할로 생각했던 것이다. 여전히 ‘마을’을 만드는 것과 ‘사회’를 만드는 것이 어떤 차이일지 막연해하면서도, ‘마을’이라는 공간에 포함되지 않는 스스로의 정체성들을 자문해가며 만들어낸 체화당의 실험들을 일단은 ‘사회만들기’라고 묶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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