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치료] 첫날, 시선이 머무는 곳

사별 경험자를 위한 미술 치료

by 평생사춘기

첫날,

요즘은 자꾸 몸이 뻐근하다.

잠을 많이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 기분이다.

넉넉히 오후 늦게 2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부랴부랴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5분, 10분 먼저 와 있어야 했는데

죄송한 마음이다.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고

물을 한 잔 마시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의 마음은 어떤지

미술 치료를 통해 바라는 것 등등

그리고는

지금의 마음을 그려보기로 했다.


원하는 종이, 원하는 재료로 그려보라고 했다.

책상 가득 펼쳐져 있는 미술도구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많이 고민될 줄 알았는데

파스텔을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하얀 종이 위에

초록색 창문을 그리고

나머지는 회색으로 채웠다.


내 방 창문, 그 옆에 엄마 사진

그걸 매일 바라본다.

내 몸을 감싸는 뿌연 회색의 막연함

내 인생의 Universe

내 인생의 유일한 내편

내 인생의 환한 빛

그게 엄마였다.


그런 엄마의 부재

가슴과 머릿속에 가득한 엄마

힘들어서 꺼내보지 못한 기억

그래서 마주할 수 없는

뿌옇게 흐려놓은 기억과

길을 잃은 나의 삶

큰 종이 위에 시선 둘 곳이 초록색 창문뿐이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고,

앞으로 바라는 마음을 더 그려보라고 했다.

창문에 웃고 있는 엄마를 그렸고

핑크색 침대와 드림캐처, 나뭇잎 포스터를 더했다.


계절마다 이불을 바꿔주던 엄마

그렇게 화사한 핑크색 벚꽃 이불이 마지막이 되었다.

친한 선배에게 선물 받은 하얀 드림캐쳐

내가 좋아하는 초록잎 패브릭 포스터


조금은 시선이 분산되고

차분하고 안정된 기분이 들기를 바랐다.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찾기를 바랐다.

엄마를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랐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눈물을 흘리며 생각나는 것들을

다 이야기했다.

눈물을 흘려도 괜찮은 자리

엄마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자리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마지막으로

더 그려 넣고 싶은 것이 있는지

나를 향해 쭉 뻗은 엄마의 손을 그렸다.

엄마의 따뜻한 손을 잡고 싶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날

병원에서 잡고 있던 손

모든 가족이 병원 관계자와 이야기를 하며

장례를 준비해야 했던 그때

나는 끝까지 엄마 옆을 지켰다.

잠시라도

혼자 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차갑게 식어가는 손을 끝까지 잡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엄마의 손길이었다.

한 번만이라도 따뜻한 엄마의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며

동네를 산책하고 싶다.

그렇게

지금의 나를 마주하며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서점 책상에 앉아

하나씩 오늘을 회상하며 글을 쓰는 지금

가슴이 쬐여오며 숨이 막힌다.

눈물이 흐른다.

오늘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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