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었을 때 일이었다.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셨고, 친구들 앞에서 주제를 가지고 발표를 해야 된다고 하셨었다. 주제는 바로 <내가 먹었던 음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음식은 여태까지 살면서 먹어봤던 음식 중에 가장 좋았던 음식을 이야기해도 되고, 반대로 먹었을 때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가장 최악의 음식을 이야기해도 된다고 하셨었다. 그때 딱 떠오르는 음식이 있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얼마 전에 먹었었던 똠 양 꿍.
일본 친구들과 수업이 끝나고,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던 길이었다. 우리는 무얼 먹을까 고민했고, 고민 끝에 일본 친구 중 한 명이 지인에게 추천받았다는 태국요리 전문점을 찾아갔다. 한국에서도 고수를 빼고 즐겨먹었던 쌀국수, 나시고랭 등등이었기에 별 거부감 없이 태국요리 전문점을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면서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딱히 와 닿았던 요리가 없었기에 레스토랑 직원의 추천을 받았다. 직원의 추천을 받기 위해 내 취향은 확고했었다.
"빨갛고, 매콤한 국물에 면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음식이 혹시 있을까요?"
직원은 자연스레 그런 음식이 있다면서 메뉴를 선뜻 추천해주었다. 나는 그 직원을 믿고 그 메뉴를 주문했는데 시간이 지난 뒤 내가 먹게 됐던 메뉴는 살면서 처음 봤던 음식이었다.
내 기준에서 냄새도 이상했다. 어렸을 적부터 웬만하면 거부감 없이 무엇이든지 잘 먹었던 나였기에 그 음식도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딱 국물을 떠먹었는데 살면서 처음 느껴본 맛이었기에 거부감이 들었었다. 분명 내가 말했던 취향의 음식은 맞았다. 빨갛고, 국물이었고, 면이 들어있었다. 친구들은 내 표정을 보더니 대체 무슨 음식이기에 그러냐고 궁금해했다. 아마 친구들도 처음 봤던 음식이었던 것 같았다. 한 친구가 맛을 보기 전에는 본인의 음식과 바꿔주겠다고 했었다. 나는 친구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흔쾌히 음식을 바꾸자고 했지만, 내 음식 맛을 봤던 친구는 못 바꿔주겠다고 다시 말을 바꾸었다.
내가 주문한 음식이니 내가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두 스푼 떠서 먹었을 때 도무지 먹기 힘들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아무거나 다 잘 먹는 줄 알았던 내가 냄새나 향신료가 심한 음식은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그 정체모를 음식에 대해 같이 살고 있던 이모에게 물어보았고, 내 말을 듣던 이모는 똠양꿍을 먹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며칠 뒤 학교에서 내가 먹었던 음식을 주제로 발표 숙제를 내주었을 때 곧바로 나는 똠양꿍을 내가 먹었던 가장 최악의 음식으로 꼽는다고 발표를 했었다. 그때 당시에 같은 반에 태국 친구가 있어서 발표할 때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무슨 음식이든지 좋아하고 잘 먹는 나로서는 인상 깊었던 음식은 그때 먹었던 똠양꿍이었다. 그래도 태국 친구는 넓은 마음으로 나의 발표를 이해해주었다.
처음 접했을 때의 그 기억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일까. 나는 그때 이후로 똠양꿍을 아직까지도 병적으로 싫어한다. 그리고 실제로 어학연수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여러 매체에서 똠양꿍이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으로 유명하다는 내용을 접했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에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똠양꿍을 만드는 곳들도 많이 있어 한번 도전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주위에서 많이 들었다. 처음에 고수가 들었던 쌀국수를 먹어보고 한동안 고수 향 때문에 못 먹었다가 고수를 뺀 쌀국수를 먹었을 때부터 쌀국수를 좋아하게 됐던 것처럼 한국식으로 재 해석한 똠양꿍을 먹는다면 똠양꿍도 좋아하는 음식이 될 수 있을까? 그동안 먹어보고 싶었던 생각이 없었는데 과연 이겨낼 수 있을지 도전정신이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