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중반, 어른아이 성장기

by 민달이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성장에 관심을 보인다. 나의 아이는 훌륭한 어른으로 커야 한다. 나의 아이는 나보다 더 나은 어른으로 커야 한다. 나의 아이는 행복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물론 나의 아이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바른 아이로 커야 한다고 모두가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당신은?

어른이 된 우리는 정말 어른이 된 걸까? 더 이상 자라지 않아도 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중학교 시절 그대로의 나로 느껴진다. 어른이 되고도 남았을 날들을 살아왔는데도 왜 아직 어린 시절 그대로라고 느껴질까. 정말 청소년기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일까? 사람은 성장한다는데 나는 정말 모자란 인간인 걸까?


40이 넘고 아이도 키우고 있는 나는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를 보면 기특하다. 어쩌면 저렇게 잘도 자랄까. 방바닥을 기어 다니고 엄마만 찾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이는 벌써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듯하다. 엄마보다 친구가 좋은 나이. 엄마가 골라주는 옷을 거부하고 스스로 스타일을 맞춰 입는 나이가 되었다. 저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자랄까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는 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나를 나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을 하다가 신춘문예로 등단을 했다. 등단만 하면 광활한 문학의 길이 펼쳐질 거라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등단의 문도 어려웠지만 겨우겨우 문을 열었을 때 나는 탄식했다. 황금의 문을 열어도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았다. 문단과 대형 출판사는 스타작가가 될 사람을 골라 일을 몰아주었다. 인기 있는 작가는 병원을 다니면서도 일 년에 몇 권씩 책을 내고 있었지만 주목받지 못한 작가는 일 년에 작은 청탁 하나 받기도 힘들다. 이름 없는 작가들은 문단이 원하는 작가가 되기 위해 등단 후에도 다시 문학상에 도전하려 노력하지만 그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작가 수업 한번 제대로 받아 보지 못했던 나는 또다시 어려운 싸움을 해야 했다. 문창과를 다닌 이들이거나 유명 작가에게 문학수업을 받은 이들은 세상에 너무도 많았다. 이건 불공평한 싸움이 아닌가 화도 났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건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니까. 결국 나는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름 없는 작가로 남기로 했다. 나는 아이도 키워야 했고 간간히 들어오는 카피일도 해야 하니까.라고 위안을 삼으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자주 불만을 표출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상황을 모면하는 걸 보면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생각을 하게 된 건 다름 아닌 나보다 훨씬 어린 무명작가 때문이었다.(지금은 유명 작가 반열에 오름) 내가 이슬아라는 작가를 알게 된 건 sns에서였다. 우연히 보게 된 그녀는 매일 글을 쓴다고 했다. 자신을 찾는 이가 없자 스스로 구독자를 찾아 '일간 이슬아'라는 새로운 포맷으로 구독자들을 모집해서 매일매일 글을 써서 이메일로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 무모하리만치 황당한 행보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글을 쓸 수도 있는 거구나. 나는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누군가 멍청이라고 내 뒤통수를 후려 갈기는 것 같았다. 이슬아 작가는 최근에 그 수필들을 모아 수필집을 냈으며 종종 그려오던 만화로 대형 출판사의 러브콜까지 받았다. 그는 이제 대형 신인이 되었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그의 일이 내 일처럼 기뻤다. 그 모든 영광을 스스로 이뤄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녀는 누구도 찾지 않는 무명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분투기에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똑같은 위치 였던 나는 불합리한 제도에 불평하고 화를 낼 뿐이었지만 그는 씩씩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내었다. 이름 없는 많은 작가들이 냉바닥에 납작 엎드려 문단과 대형 출판사의 호명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작가 이슬아는 홀연히 무릎을 털고 일어서서 그곳을 나서는 게 아닌가. 나는 남들처럼 코를 땅에 박고 엎드린 채로 그 모습을 훔쳐보았다. 꽝꽝 얼어 있는 무릎을 맨주먹으로 두들겨 깨부수며 일어서는 당찬 모습을.


그리고 마침내 얼어붙은 무릎을 펴고 고개를 조아린 수많은 작가들을 뒤로한 채 저벅저벅 걸어 나가는 당당한 발걸음을 보면서 뭔가 속에서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무릎을 펴 볼 생각은커녕, 두들겨 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불러주지 않는 누군가를 원망만 하며 허송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헌데 아무 눈치도 보지 않는 저 위풍당당한 모습이라니. 나보다 한참 어린 작가의 발걸음을 생각하자 주책맞게도 찔끔찔끔 눈물이 흘렀다. 너무도 굳건한 제도들을 비웃으며 가벼운 걸음으로 일어서서 자신의 문을 스스로 만들어 활짝 열어젖힌 작가 이슬아야말로 진짜 어른이었다.


그래, 생각해보니 나는 역시 어른이 아니었다. 아직 성장하지 않았다.

나는 어른 아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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