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욕구

by 민달이


인정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결핍이 강한 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일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에게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잘 감추느냐 그렇지 못하고 사막을 헤매는 사람처럼 갈증에 허덕이느냐는 그 사람의 성향에 달린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인정 욕구에 시달렸다. 아이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의 목소리에 반응한다. 저 우주와도 같은 곳에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한 곳에서도 태아는 부모의 목소리에 꿈틀댄다. 아이는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 한다. 부모들이 아이의 웃음에 박수를 치고 아이의 걸음마에 환호성을 터트리며 키스를 퍼부어댄다.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그 따뜻한 행위가 변함없이 계속되길 바랄 것이다.


우리의 인정 욕구는 끊임없이 자신을 다독여 지금의 자리에 존재하도록 만들어 왔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온전하며 타당한 인정을 받아온 사람들은 다 자란 어른이 되어서는 인정에 구걸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 타인의 그것은 전보다 시시한 것이 된다. 하지만 마땅히 받아야 할 순간 받지 못했던 아이들은 커서도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고 갈망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슬프게도 그들은 자신이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지나가는 찰나의 칭찬에 그들은 화들짝 놀라며 가슴이 설렌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정말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마땅히 누려야 할 칭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의심하기도 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는 오히려 건강한 인정 욕구를 지니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타인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마땅히 받아온 자와 받지 못했던 자의 모습이 아닐까.


나를 처음 인정해 준 타인이 누구였는지 떠올려보니 기억나는 일들이 있다. 내게 글을 잘 쓴다고 말해준 사람은 국어 선생님이었다. 늘 땅콩을 한 줌씩 들고 다니던 선생님은 손에 있던 땅콩을 아이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어느 날 장래 희망에 대한 글을 써 오라는 숙제가 있었고 그때가 내가 기억하는 첫 인정의 순간이었다. 라디오 피디였던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들으며 밤을 지새우는 일을 하고 싶다고 썼던 것 같다. 글을 참 잘 쓰는구나. 무심한 한마디만 남기고 선생님은 손바닥의 땅콩을 오독오독 씹어 먹으며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선생님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순간까지 이상하게 가슴은 계속 두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그가 씹던 땅콩의 소리까지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나는 어지간히도 타인의 인정에 갈증을 보이던 아이였던 것 같다.


또 다른 사람은 중학교 시절 젊은 담임선생님이었다. 어느 날 교무실로 부른 선생님은 우리 반에 정서가 불안한 친구가 있는데 네가 곁에서 신경 좀 써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왜? 나를 뭘 믿고? 내 정서도 불안한데? 하지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교무실을 나왔다. 누군가의 믿음은 이상한 힘이 있다. 나를 믿고 있다는 그 하나의 의미만으로도 나는 나와 친구를 함께 지키려 노력했다. 친구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거나 나쁜 쪽으로 빠지려 하면 나는 여지없이 정의의 사도가 되곤 했다. 하지만 나 역시 어린아이였을 뿐이다. 정의의 사도가 되는 일은 쉽지 않았고 얼마 가지 않아 그만두게 되었다.


내가 자신의 행동을 말리기만 하는 게 싫었을까? 아니면 내가 말려봤자 넌 아무것도 못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어느 날 친구는 재미있는 걸 보여줄 테니 몇 날 몇 시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 꼭대기 층으로 오라고 했다. 그곳에서 나는 친구가 아파트 난간 밖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친구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손에 든 그것이 노란 병아리라는 걸 내가 인지한 순간 친구는 손을 놓았다. 이상하게도 그 뒤의 기억은 없다. 화를 냈을까? 울었을까? 도망쳤을까?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떠오르는 건 없었다. 대신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데미안>을 선물로 주셨던 기억뿐이다. 고생 많았다며 네가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책 속지에 적혀 있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하필 알을 깨고 나오는 이야기라니.


인정받지 못했던 시절의 공포도 기억이 난다. 체육선생이었던 또 다른 담임은 체육대회에 출전할 핸드볼 선수를 뽑겠다고 말했다.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나는 친구들의 추천을 받고 멤버에 확정이 되는 듯했지만, 다음날 담임은 수학 점수가 70점을 넘지 못한 아이들은 멤버에 들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나와 또 다른 친구 둘만이 핸드볼 팀에 들지 못했다. 누군가는 키득거렸고 누군가는 그러길래 공부 좀 하지!라고 말했다. 제외된 친구는 이게 타당한 거냐며 분노했지만 나는 무심하게 돌아섰다. 그래 그렇지.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나의 이러한 자조와 빠른 포기는 어린 시절부터 비롯됐던 것 같다. 늦둥이로 태어나 오빠와 언니보다 열 살 가까이 어렸던 나는 그들 눈에 그냥 아기였다. 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도와주는 거야. 넌 할 수 없어. 하긴, 자주 형제들이 만들어 놓은 숙제들을 못쓰게 만들곤 했으니 그런 말을 들어도 싼 것 같긴 하다. 물론 그들은 모두를 위한 좋은 의도였겠지만 내가 뭐라도 해보려고 하면 온 가족이 나서서 하지 말라며 말렸다. 넌 못해. 그냥 해 달라고 해! 네가 뭘 할 수 있겠니. 넌 하지 마. 어른이 돼서도 가끔 새로운 일들에 나는 못할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건(물론 내 부정적인 기질도 있겠지만) 아마 그런 연유에서인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가 뭘 해. 나는 아무것도 못해.


대충 휘갈겨 써낸 글짓기나 표어들로 상을 받던 일들이 나의 장점이었던 걸 나는 오래도록 눈치채지 못하고 살았다. 나는 못하니까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아이인데 내가 뭘 하겠어. 운이 좋았던 거겠지 하고 넘겼다. 교양수업 시간에 들었던 어느 유명 소설가의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그의 한마디로 나는 어쩌면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운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명이 넘게 신청한 인기 수업이었고 가족에 대한 에세이를 한편씩 써내라고 해서 먼저 시집간 언니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을 써냈다. 다음 수업시간에 교수는 마이크를 들고 내 이름을 불렀다.'000이 누구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다지 잘하는 게 없는 나는 주목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이름이 호명되는 끔찍한 일에 경악한 것은 당연했다. 왜?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벌겋게 변한 얼굴로 손을 아주 조금씩 들어 올렸다. 그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제일 잘 썼구나. 아주 좋은 글이야.' 그 순간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는 게 느껴져서 어떻게 수업이 끝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는 내게 잠시 들렀다 가라는 말을 남겼다. 사실 그 수업은 교양수업이라 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들을 수 있는 수업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인원이 많았다 한들 거기서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됐겠는가. 그저 학점을 잘 주는 교수님이라 인원이 많았을 뿐이었다. 그런 걸 생각해보면 그리 가슴 뛸 일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부끄럽게도 당시에는 몹시 흥분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당시에 교수실에 들렸다 나오던 나는 구토를 할 것처럼 속이 뒤집히고 온 몸이 떨렸다. 벽을 짚고 잠깐 숨을 돌리던 그 순간, 나는 내 인생을 결정지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에서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어떤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소설가는 나에게 글을 쓰라고 했다. 너는 좋은 글을 쓸 것이다. 너는 소설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건 타인의 인정 욕구에 끊임없이 시달리던 내게 내려진 어떤 계시처럼 느껴졌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었는지 지옥으로 가는 길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좀처럼 인정해주지 않는 냉정한 자들에게서 기어코 받아내야 하는 고독하고 외로운 싸움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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