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지 않는 전화기

by 민달이


등단을 하고나서 나는 청탁전화를 기다렸다. 하루, 이틀...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리는 날들이 계속됐다. 같은 해에 신춘문예로 등단한 다른 작가들이 여러 문예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슬펐다. 나는 무엇이 되었지만 무엇도 아닌 존재였다. 힘들게 등단을 해도 일 년이 흐르면 그 해의 당선자들은 조금씩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다른 해엔 또다른 당선자들이 탄생하니까. 나는 고민에 빠졌다. 신춘문예를 다시한번 준비해야 할까?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공모전 요강에는 이미 등단한 작가는 포함되지 않는 곳들도 많았다. 등단을 했는데 작가는 되지 못했지만 작가이기 때문에 응모하지 못한다는 안내를 받는 아이러니.


이도 저도 아닌채로 몇 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경장편도 썼고 단편들도 썼지만 발표할 곳이 없었다. 이름 있는 문예지는 이미 유명 작가들로 가득했고 생소한 이름의 문예지에서는 원고료 대신 다른 걸 요구하기도 했다. 나는 어디에도 작품을 발표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소설집을 내보자 싶어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름없는 소설가의 작품을 원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당연했지만 씁쓸했다. 소설가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품을 발표할 수도, 작품집을 출간할 수도 없었다. 그럼 나는 무엇인 걸까? 참담한 날들이었다.


방법은 한가지였다. 유명 문예지의 신인문학상에 도전하는 것. 하지만 나는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초조해하고 동동거리는 동안 내 글은 저 멀리 뒤쳐졌다. 나는 늙었고 고루했다. 세상에는 신선한 글을 손에 쥔 재기 발랄한 작가들이 끝도 없이 많았다. 실용서나 자기계발서 등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봐도 내가 있을 곳은 아니었다. 많은 종류의 에세이들과 섹스칼럼니스트나 연애칼럼니스트의 이름을 달고 나온 책들도 눈에 띄었다. 서점에서 그들의 책을 만지작거리다 돌아오는 날들이 많았다. 딱히 눈에 띄는 등단 이력도 없는 그들은 자주 책을 내고 칼럼도 연재했다. 부러웠고 질투도 났다. 어떤 칼럼니스트는 자신의 인맥으로 신문 칼럼을 시작했다고도 말한다. 그런 그의 능력마저 탐이 났다. 어떻게 나는 남들 다 있는 그 흔한 인맥 하나 없는 것일까 못난 나를 탓했다.


이 모두는 내 탓이라고 결론 내렸다. 내가 잘났으면, 내 글이 좋았으면 조용히 있어도 눈에 띄었을 것이다. 누구라도 앞다투어 나를 찾았을 것이다. 결국은 내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 아닌가. 밀려드는 자기혐오와 모멸감을 온몸으로 받아 내면서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야 했다. 소설가였지만 소설가라고 말하지 못하는 날들이 흐르며 가슴엔 이미 피멍이 든 상태였다.


하지만 이렇게 끝낼 순 없었다. 심장이 타들어가는 불안감 속에서도 글을 쓰는 건 달콤했다. 그것은 구원처럼 나를 사로잡았다. 마음먹은 대로 써지는 날이면 오래전처럼 미친 사람이 되곤 했다. 온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며 소름이 돋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집안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돌아다니며 작품과 인물들에 몰입했다. 그런 순간의 폭발적인 감정은 당선 전화를 받았던 때보다 더욱 강렬했기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해보자 결심했다. 경장편은 썼지만 긴 호흡의 장편은 아직 써보지 않았으니 1000매짜리 장편 하나만 써보고 끝내자 마음먹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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