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밤을 함께 주신 신의 아이러니

by 민달이



그 날 이후로 나의 글쓰기는 밤마다 계속되었다. 마른 장작에 불이 붙은 것처럼 미친 듯이 손가락이 움직였다. 내 머리와 가슴속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던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키보드에 손만 대고 있어도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머리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손가락은 스스로 생각하는 듯 이야기를 뽑아내었다. 그 무렵 누군가 사물의 이름을 하나씩 대면 순식간에 끝도 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있었다.

나는 아직 발견되지 못한 천재였고 바보 같은 나는 그런 나를 못 알아봤던 것이다. 문학계는 이제 진정한 천재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었다. 되도록 그 순간을 짧게 만들어 주고 싶어서 온 몸이 근질거렸다. 잠깐만 기다리길. 내 글이 끝나는 순간 모두가 함께 기쁨을 맛보게 될지니! 나는 미친 사람이었다. 한밤중에 끼햐햐햐 웃고 크아앙 짐승처럼 울며 글을 썼다. 밤은 짧았고 어두웠으며 금세 지나갔다. 해가 뜨기 직전의 하늘빛을 보며 글을 쓰고 있으면 나는 영화에서 보던 유명 작가가 된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래 나는 남들보다 어린 나이로 등단을 하게 될 거야. 분명 그렇게 될 거야. 쓰는 글마다 눈앞에 명작이 탄생하는 기쁨에 팔짝팔짝 뛰며 환호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처음에 누구나 자신의 천재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곧 헛된 망상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는 날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 밤에 쓴 글을 아침에 다시 읽어 보자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망작들 뿐이었다. 어디에도 천재는 없었다. 역시나 나는 안 되는 인간이었다. 자조와 빠른 포기는 차라리 평안을 가져다줄 것이었다. 하지만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글을 쓴다는 건 어느새 나에게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어나 물을 마시고 세수를 하는 것과 같은 일상일 뿐이었다.


앞에 글쓰기 수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며 작가수업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을 드러냈지만 실은 나도 그런 걸 두어 번 받아 보긴 했었다. 글쎄. 그걸 받았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를 만큼 애매한 날들이었다. 그 소설가는 나와 몇몇 학생들을 작가로 기르고 싶어 뽑아 두었던 모양이었다. 우리를 호출한 그는 너희들끼리 모임을 만들라며 글을 써서 가져오면 자신이 봐주겠다고 말했다. 성질이 급한 나는 그날로 미친 듯이 연달아 글을 뽑아내었고 교수님께 드렸지만 피드백을 받는 일을 거의 없었다. 교수님은 늘 바빴고, 할 일이 많으셨다. 다음에 보자. 아하, 어제 봤는데 어디 갔더라. 이런, 아직 한 장 밖에 못 읽었구나. 그 여유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간절했지만 그는 무책임했다. 합평이 뭔지, 작가 수업이 뭔지도 몰랐던 우리 몇몇은 그렇게 몇 번 교수실을 어물쩡거리다 어디론가 흩어져 버렸다.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졸업을 하고 나서도 나의 글쓰기는 계속되었다. 어떻게 써야 한다는 것도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도 모른 채 수많은 밤의 장막을 깔고 앉아 글을 써 나갔다. 툭하면 포기하거나 조금 해서 성과가 없으면 흥미를 잃던 나였지만 이상하게 글을 쓰는 일 만은 지루하지 않았다. 오직 그것만이 성과가 아닌 과정의 행위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Govi와 스티브 레이먼의 연주를 들으며 밤을 지새웠다. 해도 해도 성과가 나지 않는 그 일이 너무도 즐거웠다. 매번 좌절했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는 유일한 일이 있다면 그것이었다. 글을 쓰고 연말이 되면 각 신문사별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일들로 일 년을 마무리했다. 신문사들은 되도록 크리스마스 전에 선물처럼 당선 전화를 준다고 했다.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당선 전화를 기다렸지만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십 년이 넘도록 나는 한 번도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아 보지 못했다. 나의 크리스마스에 감사는 없었다. 그곳엔 우울과 분노, 자책과 실망뿐이었다.


점점 나이가 들었고 젊은 나이에 문학상을 타고자 했던 기대는 거품이 되었다. 최연소가 아니라 이제 최고령자로라도 등단을 할 수 있긴 할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영리하지 못했다. 꽉 막히고 곧이곧대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한 길은 오직 신춘문예로 등단해서 문단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낸 수많은 책의 표지를 뒤적여 신춘문예로 등단을 한 진짜 작가인지 아니면 그냥 책을 낸 일반인 인지를 확인하는 한심하고 고루한 인간이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제대로 된 등단이 아닌 사람들의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자고로 순수문학을 하고 싶은 작가라면 신춘문예나 유명 문학상으로 등단해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등단의 길은 요원하기만 했다. 혹은 심사위원들이 자신이 가르친 아이들만을 뽑는 건 아닐까 의심하고 분노했다. 내가 쓴 글보다 못한 것들이 등단작이라고 신문에 실리는 걸 보는 게 괴로웠다. 하지만 그런 분노도 잠시뿐, 슬픔을 가라 앉히고 다시 읽어보면 내 글보다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천재였고 모두가 인정받을 만한 글이라 생각하며 쓰린 속을 달랬다. 그렇게 나는 많은 밤을 나를 이 길로 인도한 그 소설가를 원망했고, 또 다른 많은 밤엔 그에게 깊이 감사했다.


똑같은 날들이 이어지고 더 이상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취직을 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입사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여러 해 신춘문예 최종심에 이름을 올리는 경험을 하여 가슴을 졸이다가 마침내 크리스마스 선물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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