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진미 Aug 15. 2022

새우깡_ 공포와 광기의 역사 1

새우깡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2시간씩 러닝을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서서 작업하는 걸 좋아했다. 제인 오스틴은 온갖 일을 처리하며 자투리 시간에 글을 썼다. 발자크는 글을 쓰며 아침부터 오후까지 커피만 마셨다. 사르트르는 약물중독에, 잭 런던은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무렵,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유명한 작가들의 특이한 습관이나 이력이었다. 헌데 가만 보니 나에겐 작가가 될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작가가 되려면 무언가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얘기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습관이든 질병이든 기행이든. 하지만 달리기를 매일 30분만 해도 죽을 것 같다. 못하겠다. 서서 작업하는 건 딱히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인다. 온 열정을 다해도 안 될 판에 자투리 시간에 글을 써서 성공한다? 천재만 가능하다. 그렇다고 약물과 알코올 중독이 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 남았다. 미국의 모든 젊은이들을 길 위로 이끌었던 잭 케루악의 방법을 써 보는 수밖에. <길 위에서>는 작가가 술 마시고 사고 치며 그저 여행 다닌 걸 썼을 뿐인데 젊은이들의 바이블이 됐잖아? 하긴, 로드무비는 늘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법이지. 가만, 그러고 보니 체 게바라도 여행길에서 진정한 체로 거듭나지 않았는가. 그래 여행이다. 거기에 뭐가 있어도 있을 거야. 그쯤이야 나도 할 수 있겠지. 그래서 결심했다. 혼자. 여행을. 가보자.


집에는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고 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청주에  일이 있다는 친구를 따라 내려 간 거니까. 하지만 저녁이 되자 혼자 여관에 들어가는 건 또 무서워 둘이 자러 온 것처럼 떠들썩한 연기를 하며 여관에 들어갔다. 그리고 친구는 차 시간이 되자 일어섰다. … 벌써? 괜히 졸아붙은 심장으로 물었다. 친구를 잡고 싶었지만 입밖에 내지 않았다. 친구는 진짜 괜찮겠냐고 내게 물었다. 무슨 용기가 나서 그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당시의 나는 꽤나 진지했던 듯하다. 나는 없는 용기를 그러모아 말했다. 그럼. 괜찮아! 걱정스러운 얼굴로 문을 잘 잠그라던 친구가 말했다. ‘너 진짜 멋있다.’ 그 한마디에 친구를 따라나서고 싶은 마음을 꿀꺽 삼켰다.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작가가 되려는 것도 어쩌면 타인에게 멋있어 보이고 싶은 하찮은 욕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친구의 말 덕분인지 보이지 않던 용기가 손톱만큼 생긴 것 같았다.


멋있는 건 멋있는 거고,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친구가 가고 나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공포가 밀려왔다. 미쳤다. 나는 미쳤어. 이게 모라고. 올라갈까? 아니야. 작가가 되려면 혼자 여행이라도 한번 해야 하지 않겠나. 평범하게 살아선 아무것도 쓸게 없잖아. 근데 아직 막차는 있을 텐데... 그냥 여행은 다음에 할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낯선 곳의 낡고 어두운 여관에 홀로 있자니 무서웠고 무서웠고 너무 무서웠다. 잠긴 문이 덜컹거리는 환청에 시달리다가 이 방에서 누가 죽은 건 아닐까 싶은 생각에 구석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아 몸이 벌벌 떨렸다. 이상한 바람소리도 들리고 복도를 걷는 발소리에 취객들의 목소리, 간간히 누군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 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불을 켜 놓은 채 손에는 콜라병을 거꾸로 쥐고 꼴딱 밤을 새웠다. 그리고 해가 뜨는 걸 보자마자 귀신을 본 사람처럼 여관에서 튀어나왔다. 다시는 여관이라는 곳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


밖을 나오니 겨우 숨이 쉬어지고 떨리던 몸도 조금씩 편안해졌다. 몇 발자국 걷던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 그토록 공포스러웠던 여관 건물이 신기하게도 부루마블의 건물쯤으로 보였다. 혼자 밤을 새우며 공포를 견디고 나니 손톱 만하던 용기가 주먹만 하게 커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가방을 고쳐 매고 버스 터미널로 걸음을 옮겼다.


부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태종대도 보고 광안리도 보고 자갈치 시장도 구경하다가 회도 한 접시 먹으며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려 애썼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생각보다 금세 어두워지고 있었다. 길치인 나는 어디가 어딘지 헷갈리기 시작했고 그때 남자 두 명이 내 앞으로 오고 있는 게 보였다. 길을 물어보자 싶어 다가갔는데 거리가 가까워지자 딱 봐도 나를 타깃으로 한 불량한 기운이 느껴졌다. 몸을 피할 새도 없이 맞닥뜨렸고 남자는 작정한 듯 몸을 숙여 어깨로 내 가슴을 세게 치고 말했다. ‘아무것도 없네!’ 너무 놀라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앞으로 달렸다. 무서워서 화도 나지 않았다. 뒤에서 낄낄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나오자 그제야 세게 맞은 가슴 부위가 아프고 화가 치밀었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가 맥주를 두 캔 샀다. 참을 수 없어 그 자리에서 한 캔을 벌컥벌컥 마시고 하나는 가방에 집어넣었다.


다리도 아프고 지쳤다. 쉬고 싶었다. 잠을 잘 곳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어제의 공포가 다시 밀려오는 것 같아 도저히 혼자서는 잘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PC방이 보였다. 가장 구석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간간이 들리는 아이들의 공허한 욕설뿐 나를 극한으로 몰던 공포는 다행히도 이곳에 없는 듯했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래, 이 정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견딜 수 있다. 나는 캔맥주를 꺼내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빨대를 꽂아 한 모금 마셨다. 과자라도 한 봉지 사 올걸 그랬나? 안도감이 들자 조금씩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아까의 치한이 생각나더니 분노가 치솟았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개새끼! 나는 남은 맥주를 마저 마신 뒤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 눈을 감았다. 으슬으슬 춥고 몸과 마음이 불편했지만 타닥타닥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고요한 자장가처럼 들려 금세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부산을 좀 더 보다가 늦은 오후에 거제도로 향했다. 몸이 좋지 않았지만 주변을 구경하고 싶어 처음 보는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숙박할 곳을 찾으러 다녔다. 여관은 무섭다. PC방은 불편하다. 편하고 따듯한 곳에서 안전하게 자고 싶다. 둘러보자 일반 집 대문에 민박이라는 글씨가 여기저기 보였다. 저기다. 근데 이상하다. 분명히 민박이라고 적혀있는데 들어가는 곳마다 방이 없다고 한다. 뭔가 잘못됐다. 말도 안 돼. 주말도 아니고 게다가 지금은 겨울이다. 이곳이 유명 관광지도 아닌데 어떻게 하나같이 방이 없다는 말들뿐이지?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불안하고 초조해지며 어제 같은 놈들이 또 어디서 불쑥 튀어나올까 두렵기도 했다. 가방은 너무 무겁고 몸은 자꾸만 가라앉는 것 같았다. 진짜로 더는 안될 것 같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민박이라고 쓰여 있는 나머지 집의 문을 간절히 두드렸다.


아주머니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늦었는데.. 나는 아예 구걸하는 심정이 되어 아줌마를 잡고 매달렸다. 아줌마는 ‘방이 없는데…’라고 다시 말끝을 흐렸다. 갑자기 여기가 안 된다면 진짜 길바닥에서 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아줌마의 팔을 잡고 울먹였다. ‘아줌마… 이상해요. 가는 곳마다 방이 없다고 하고..’ 갑자기 울컥 목이 메었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닌데. 으아아앙.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아이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내가 미쳤지, 집에서 맛있는 거나 실컷 먹고 잠이 나 잘걸 뭐 한다고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는 생판 모르는 남 앞에서 이 꼴을 당하고 있나, 내 자신이 한심했다. 어른이 된 이후로 그렇게 목놓아 울어본 게 처음이었다.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출 수가 없었다. 나도 당황했고 아줌마도 당황한 눈치였다.   

. . . .

이전 09화 쌕쌕_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등짝을 내어주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