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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진미 Oct 08. 2019

튀김_ 사랑과 슬픔의 다른 이름으로

튀김


초등학교 근처에 고모네가 살았다. 고모부는 내가 놀러 갈 때면 늘 오징어 튀김을 해주셨는데 그게 너무 맛있어서 나는 거의 매일 달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모부는 나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찬장 구석에서 마른오징어를 꺼냈다. 고모와 내가 공기를 하거나 종이접기 하는 걸 보면서 고모부는 오징어를 잘게 찢어 물이 찰랑찰랑한 파란 바가지에 넣고 불렸다.


그즈음 고모네 사업이 망해 고모부가 우울한 날들을 보내던 차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부쩍 말수가 줄어든 고모부는 내가 가면 일어나 움직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고작 열 살이었으므로 그런 걸 알리 없었다. 그저 바삭바삭 쫄깃쫄깃한 오징어튀김을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고모네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내가 고모랑 놀거나 [요술공주 밍키]나 [바람돌이]를 보고 있으면 문밖에서 지글지글 기름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튀김이 익으면서 고소하게 풍기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방 안으로 들어오면 고모는 둥근 상을 폈다. 만화가 다 끝나고 상 앞에 앉아 있으면 문 밖에서 고모부가 커다란 접시에 산처럼 쌓은 오징어 튀김을 들고 들어왔다. 그게 얼마나 맛있냐면, 지금 여느 유명 맛집들의 비싼 튀김은 비할 바가 아닐 정도였다. 바삭바삭한 맛집 튀김들을 먹어보면 고개가 끄덕일 정도로 맛있다. 하지만 대부분 튀김옷이 오징어에 잘 붙어 있질 않거나 혹은 튀김옷이 완벽하더라도 오징어가 너무 무르거나 질겼다.




하지만 고모부의 오징어튀김은 달랐다. 질기지 않고 쫄깃쫄깃했으며 튀김옷은 오징어와 하나가 된 듯 단단하게 입혀있었고 게다가 날리듯 가볍지 않은 묵직함으로 바삭바삭했다. 10살 아이가 산처럼 쌓여 있는 걸 앉은자리에서 거의 다 바닥내자 그 뒤로 고모부는 나만 보면 더욱 열심히 오징어 튀김을 만들었다. 고모는 고모부가 아무에게도 튀김을 해주지 않는다며 's를 너무 예뻐해서 s가 올 때만 만든다고' 말했다. 고모의 말에 신이 난 나는 양손에 기다란 오징어 다리를 하나씩 들고 춤을 추며 먹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만 보면 오징어 튀김을 해주시는 고모부에게 점점 싫증이 났다. 아니, 오징어튀김에 싫증이 났다. 맛있긴 했지만 하루 걸러 먹다 보니 질리기 시작했고 내 먹는 속도는 더뎌졌다. 어느 날은 산처럼 쌓여 있는 튀김의 꼭대기에서 한 두 개만 집어 먹고 돌아온 날도 있었다. 하지만 고모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날도 다음 주도 내가 나타나면 오징어 튀김을 만들었다.

 


지금은 고모부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훨씬 지났다. 나는 그때의 것보다 맛있는 오징어튀김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얼마 전 가족모임에서 고모에게 옛날의 그 오징어 튀김이 먹고 싶다고 얘길 하다가 놀라운 소릴 들었다.

"고모부가 나만 예뻐했는데. 나만 맨날 오징어 튀김 튀겨주셨잖아!"

"뭔 소리야 h는 탕수육을 해줬는데."

"뭐라고?"

"아이고 이것아, 조카들이 다 같은 조카들이지 너만 예뻐했을까 봐!"

"뭐야! 와 진짜 너무하네!"

내 말에 고모는 깔깔대고 웃었다. 충격을 받은 나는 더는 묻지 않았다. 괜히 더 물었다가 이번엔 양장피, 팔보채도 받아 본 누군가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h는 탕수육만큼의 사랑을 받은 거고, 나는 고작 오징어튀김만큼의 사랑을 받은 거라 이거 지! 와, 너무해.


다음날 고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통화 중에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고모부한테 배신감 든다. 난 나만 해준 줄 알았어 진짜로!"

"너만 예뻐한 거 맞아."

"뭔 소리야, 나는 오징어튀김만큼의 사랑만 받은 거지. 기껏!"

"아이고 멍충아, 어제는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너만 예뻐했다 말 못 하지! 탕수육은 딱 한번 만들었어. 그나마도 고모부가 만들다가 실패했지. "

"이제야 좀 위로가 되는군."

"어디 가면 니 선물만 사 가지고 온 거 기억 안 나? 오징어튀김도 니가 놀러 와야 먹었어. 고모가 해달래도 안 해주더라!"


전화를 끊고 갑자기 고모부가 생일날 주셨던 예쁜 원피스가 생각났다. 왜 잊어버리고 있었지? 생각해 보니 그랬다. 고모부는 유독 나를 예뻐했다. 자다가도 나만 보면 마른오징어를 사러 나갔고, 명절에 식구들과 화투를 치고 딴 돈도 오빠 언니 몰래 나에게만 주었다. 내가 타 주는 믹스커피가 최고라며 고모부는 커피를 달라고 했는데 그때마다 나에게 선물도 주셨지. 왜 이제야 생각이 났지?


언젠가는 커피 타는 게 너무 하기 싫어서 심술을 부렸다. 하루는 물을 컵의 끝까지 왕창 부어서 드렸고, 하루는 커피가 간신히 녹을 만큼 찔끔 만 부어서 드렸다. 하지만 고모부는 그래도 맛있다며 끝까지 다 드시곤 늘 고맙다고 말해주셨다. 집으로 가실 때는 's는 오징어튀김 좋아하지? 다음 주에 놀러 오면 더 맛있게 튀겨줄게.'라고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질려버린 튀김 생각에 얼굴을 찡그린 채 고개를 끄덕였더랬다.


 


문을 벌컥 열고 뛰어들어 가면 주무시다가도 일어나 마른오징어를 줄줄이 찢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방문 앞에서 한 접시 가득 산처럼 쌓은 뜨거운 오징어튀김을 들고 허허 웃던 고모부. 오늘따라 힘들었던 날들 한가운데서 튀김을 만들던 고모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징어튀김만큼 나를 예뻐해 줬던 고모부의 튀김은 이제 더는 먹을 수 없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사업의 실패는 그를 슬픔과 고달픔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을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할 때 눈치 보지 않는 어린 망아지 한 마리가 집안으로 뛰어들었겠지. 어쩌면 망아지가 정신없이 집안을 휘젓는 짧은 시간 동안은 고달픔을 잠시 잊을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견디지 못할 만큼 큰 고독을 달궈진 기름 속에 처박아두면, 작은 망아지가 바삭바삭 그것들을 먹어치워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모부는 오징어튀김에 더 집착했을까? 때론, 어른들이 겁에 질려 손을 댈 수 없는 것들을 작고 약한 아이가 용감하게 무찌르기도 하거든. 바삭바삭바삭바삭- 내가 다 먹어 줄게요. 눈에서 보이지 않도록 없애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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