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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진미 Sep 27. 2019

떡볶이_ 말을 하지 그랬어...

떡볶이

백 원에 열 개. 아줌마는 기분이 좋으면 11개를 주시곤 했지. 학교가 끝나면 각자 주머니를 뒤져 얼마를 가져왔는지 확인을 하는 게 일이었다.


"나 백 원!"

"아씨 난 오십 원밖에 없어. "

"오예~ 나도 백 원"

"난 20원이야. 오늘은 나 하나씩 주라!"


우리는 우르르 시장으로 향한다. 입구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우리들의 단골집! 아줌마가 뜨거운 떡볶이를 휘휘 젖고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뭉클거리며 올라오는 뜨거운 김에 코를 들이대며 자리에 앉았다. 나무로 대충 만든 긴 의자에 장판을 아무렇게나 잘라 덮개를 만들어 놓았던, 앉을 때마다 삐걱이던 그 의자.


"옆으로! 옆으로!"


주판알이 밀리듯 우리는 주르르 한 줄로 앉았지.

각자의 돈을 내면 아주머니는 떡볶이의 개수를 하나 둘 세어 내어 주곤 하셨다.


아줌마가 옆집 채소가게 주인이랑 수다를 떨 때면 잽싸게 먹던 떡을 끓이는 통에 넣어 국물을 듬뿍 찍어 먹었다. 그때는 그게 더럽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큰 통에 들어 있는 국물이 어찌나 맛있던지. 아줌마가 몸을 돌려 앉으면 걸려서 손등을 딱 맞고는 헤헤거리며 마저 먹곤 했다.


한 개 한 개 아껴서 천천히 잘라먹다가 마지막에 남은 하나는 되도록 천천히 빨아먹었지. 옆에 다른 아이들이 앉아 있는 것도 모르고 우리는 낄낄대며 웃고 떠들었다. 우당탕 물컵이나 포크를 떨어트리기도 하고 신이 나서 까불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잊고 있던 각자의 떡볶이를 다시 먹기 시작했고. 나는 언제나처럼 다 먹은 접시에 남아있던 떡볶이 국물을 핥아먹었다. 한 방울도 놓칠 수 없는 소중한 국물. 싹싹- 싸악 싹- 아줌마한테 그릇을 뺏길까 봐 빠르고 정확하게 핥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존경의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더욱 빠르게 혓바닥을 놀렸다.


"자, 보아라. 떡볶이는 이렇게 국물까지 핥는 거다!"


어? 친구들이 환호할 때가 됐는데 환호하지 않는다. 왜 조용해? 내 이름을 외치란 말이다. 나의 세리머니를 따라 하란 말이다. 하지만 친구들은 조용하다. "아이씨 재미없게 너네들 뭐야!"라고 소리치며 친구들을 돌아보자 불안한 눈빛의 친구 하나가 목소리를 낮추며 입을 열었다.


"….그거 니 거 맞아?"


무슨 일인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내가 멀뚱거리고 있던 순간, 내 옆에서 울먹이던 남자아이의 슬픈 목소리.


"야..., 그거 내 거야! 니건 저거잖아..."


남자애는 갑자기 큰소리로 더럽다고 자기 그릇을 핥아먹었다며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국민학생이었으니까. 그때의 남자아이들은 나의 용맹함에 종종 울기도 했으니까. 괜찮아. 울지마. "괜찮아. 안 더러워…. 미안해. 진짜 몰랐어." 나는 사과하고 접시를 다시 돌려주었다. 자, 이거… 니꺼..." 그러자 남자애는 하나도 안 괜찮다며 뭐가 안 더럽냐며 이번엔 발까지 굴러가며 더욱 크게 울어댔다.


30대에 다시 만난 친구들과 그때의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내가 접시를 돌려줬을 때 그 모습을 보던 남자아이의 표정이 생생하다며 친구들은 웃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아이의 마지막 표정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미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정신이 없었거든.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친구들은 그때 내가 일부러 뺏어 먹은 줄 알았다고 한다. 얘들아, 나 정말 그렇게까지 이상한 사람은 아니야... 


오랜만에 동네 시장에서 떡볶이를 주문하고 보니 그날이 생각나네. 이름이라도 알아 둘 껄, 그럼 글로나마 정중한 사과의 기록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대방국민학교 근처의 영진시장에서 떡볶이를 먹다가 말할 수 없는 곤욕을 치른 이름 모를 남자아이에게 거듭 사과의 말을 표한다. 근데, 진짜로 그때 그 접시에 남아있던 떡볶이 국물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이건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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