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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진미 Aug 16. 2022

새우깡_ 공포와 광기의 역사 2

새우깡

. . . . .

아주머니는 놀러 온 거냐고 물었다. 상대의 목소리에 안쓰러운 감정이 섞여 있음을 간파한 나는 간신히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고 아주머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들어오라고 했다. 보리차를 한잔 내준 그녀는 이해하라며 혼자 여행 와서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혼자 오는 여행객, 특히 여자에게는 방을 쉬 내주지 않는다고 했다. 억울함과 안도감과 분노 같은 게 자꾸만 치받쳐 또 눈물이 나려는 걸 억지로 참으며 따끈한 보리차를 꿀떡꿀떡 마셨다. 아줌마는 작은 미닫이 문이 달린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방바닥이 뜨끈해서 들어가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뻗어 버렸다. 피곤하다. 빨리 잠들고 싶다. 빙빙 도는 천장을 보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작가가 되고 싶다며 이게 맞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아줌마였다. 밥은 먹었냐며 찐 고구마와 보리차가 올려진 쟁반을 내려놓은 그녀는 깜빡했다는 듯 옆방에서 새우깡 한 봉지를 가져와 내게 건넸다.


“젊은 사람이 좋아할지 모르겠네. 여기는 이런 과자밖에 없어서.”


아주머니 손에 들린 새우깡 봉지를 보는 순간 또다시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연신 끄덕이고 말았다. 아주머니가 문을 닫자마자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과자가 질리지도 않냐며 우유도 같이 마시라고 말하던 엄마도 생각나고, 혼자 괜찮겠냐던 친구도 생각나 어찌나 서럽던지. 혹시라도 내가 우는 소리에 진짜 죽으러 온 줄 알까 봐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새우깡을 부둥켜안고 있다가 봉지를 뜯어 와작와작 과자를 씹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새우깡을 씹는데 늘 맛있게 먹던 새우깡이 그날은 유독 왜 그리 짜던지.


훌쩍이며 반쯤 먹었을 때 꼬들하고 딱딱한 작은 새우깡이 손에 잡혔다. 나는 반사적으로 우옷! 기뻐했다. 그것은 행운의 상징이 아니던가. 우리 삼 남매는 만화영화를 보며 새우깡을 번갈아 집어 먹다가 딱딱한 새우깡 꼬투리를 집은 행운아를 부러워했다. 그건 내가 되기도 언니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커서도 달라지지 않았지. 혹시나 딱딱한 부분이 들어 있을까 과자를 먹으며 기대하는 마음. 다행히 눈물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나는 남은 새우깡을 모두 먹고 딱딱한 행운의 꼬투리도 마저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밤의 따듯했던 방바닥과 유독 짭짤했던 새우깡 한 봉지의 맛은 나이가 들어서도 내내 잊히지 않고 남아있다.


다음날은 병이 나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며칠 동안 이 허약한 정신과 육체가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해 버린 모양이다. 게다가 추운 날 잠도 제대로 못 잤으니 병이 안 나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아침에 아줌마가 감기약을 건넸다. 뭘 하고 돌아다니길래 병까지 얻냐며 약 먹고 푹 쉬라고 했다. 나는 아줌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하루를 누워서 보냈다. 다음날 기운을 차린 내가 기웃거리자 아줌마는 심심하면 해금강이나 구경해보라 말했다.


“근데 배가 뜰랑가 모르것네?”


하늘은 구름이 가득했고 비가 간간이 내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미쳤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제정신이 아니었다고나 할까? 광기. 그래 광기가 맞겠다. 아무런 능력 없이 작가가 되려면 광기라도 장착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던 때였다.


해금강을 관광하고 외도에 들렀다 오는 코스의 티켓을 샀다. 유람선이라고는 하는데 배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괜찮을까? 배에 타기 전에 이름과 주민번호를 쓰라고 했다. 사고 시에 꼭 필요하다나 어쩐다나. 잠깐 주민번호를 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했다. 뭐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니! 아직 죽으면 안 된다. 글 쓴 게 하나도 없어. 아무도 나를 모르잖아! 나는 얼른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적었다. 날씨가 엉망이다. 슬슬 비가 내리더니 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람을 맞으며 관광하기는커녕 실내에 앉아 있어도 빗발과 출렁이는 바다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고 이내 배까지 심하게 요동쳤다. 빌어먹을, 내가 여기 있는 거 아무도 모르는데. 친구랑 놀러 간다고 거짓말이나 하고, 작가가 되겠다고 머저리 같은 짓이나 하다 죽는구나. 또다시 공포가 엄습했지만 선장인지 배의 주인인지 모를 사람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유람선 안에서 중심을 잡으며 신난 듯 음정까지 넣어 소리쳤다.


“안~ 죽어요 안~ 죽어요! 이 정도로는 걱정을 하덜덜덜~ 마소~”


지금 노래가 나온다고? 진짜 미친 사람들 아닌 가. 배가 이 정도로 흔들릴 날씨면 취소했어야지. 아주머니는 배 타면 금방 이랬는데 도대체 배는 왜 이리 오래가는 건지. 작가의 멋이고 뭐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아저씨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 수밖에 달리 할 방도가 있나. 그래 흥얼거릴 정도면 죽지는 않겠지. 하지만 안쪽에서 아무리 창문을 닦아봐도 밖은 빗 줄기밖에 보이지 않았다. 잠수함도 아니고 바닷물이 이렇게 창문 가까이로 다가온다고? 진짜 죽을 맛이다. 게다가 노래를 섞어 말을 하던 아저씨는 갑자기 승선신고서는 다들 잘 적으셨냐고 묻는다. 혹시 모르니 주민등록번호를 또박또박 적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모야? 갑자기 그런 말은 왜 하는 거야? 나는 이거 진짜 뒤집히는 거 아닌가 싶어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다행히 비는 잦아들었고 해금강을 돌며 아저씨가 설명하는 동안 배는 참을 수 있을 정도로만 흔들렸다. 이렇게 금세 잠잠해질 배 안에서 나는 죽기 싫다. 죽으면 어때. 살고 싶다. 살았다. 오만가지 생각으로 발광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힘들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작가가 되어야 하나. 멋있게 살기가 너무 어렵구나.


외도에 도착해 인공적인 섬을 조금 둘러보다가 다시 유람선을 탔다. 섬은 별로였다. 예쁘게 화장한 연예인을 본 기분. 공포로 울렁이는 바다를 지나와서 그런가 잘 만들어진 예쁜 섬보다 거친 얼굴의 바다 위가 훨씬 기억에 오래 남았다.


사진-이마트몰


서울로 가는 날, 마지막으로 새벽 바다가 보고 싶었다. 무릇 작가의 멋이란 새벽에 홀로 바닷가를 걷고 사색에 잠기는 것이 아닌 가. 광기다. 광기가 맞다. 이 지경에 아직도 작가의 멋 타령이라니. 나는 5시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바닷가로 향했다. 바닷가엔 새벽안개가 자욱했다. 음, 문학적인 안개야. 역시, 뭔가 나올 법 해. 홀로 감탄하며 환상적인 안개에 빠져있을 때 어딘가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흐릿한 안갯속을 더듬어 들어가니 부둣가에 걸터앉은 아저씨가 엄청난 부피의 그물을 만지고 있는 게 보였다. 저거다. 완벽한 그림이다. 완전 노인과 바다의 현실판이잖아!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대로라면 뭔가 대단한 작품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진짜다. 극도로 내성적인 인간이 생판 모르는 도시에서 꼭두새벽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지만 에라 모르겠다 다.


아저씨 그거 뭐 하는 거예요.

안개가 많아서

아니 그거요.

못 나가.

아니 지금 뭐 하시는 건지 궁금해서..

그물

그물인 건 아는데…

깁는 거지 뭐긴 뭐야!

아, 네…


호기롭게 시작한 대화는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났다. 뭔가 심오한 대화를 나누고 그 장면을 글로 쓰는 상상을 했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 더 질문하면 아저씨가 가라고 할 것 같아서 나는 쪼그려 앉아 그물 깁는 모습을 구경했다. 나도 참, 어쩌자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 생각을 했을까? 혹시 주먹만큼 커졌던 용기가 수박만 하게 조금 더 커진 걸까? 그러한 생각만 속으로 하면서.


아침을 먹고 가는 길에 골목까지 마중을 나온 아주머니는 다음엔 혼자 오지 말라고 했다. 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혼자 오는 여행은 이것으로 끝이다. 징그러. 더는 혼자 다니고 싶지 않다.


거제도를 나와 부산으로 향했다. 마지막까지 작가이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기 싫었던 나는(그렇다. 광기다.)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 눈앞에 보이는 서점에 들어가 책을 한 권 골랐다. 버스를 기다리며 책을 읽어야지, 버스에 타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단상들을 적으며 집으로 가야지.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가방에서 책을 꺼내지 않았다. 작가들만이 지닌 무엇인가가 탐이나 무엇인가를 찾고 싶어 떠났던 여행이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앉아서 졸고 있다.


4박 5일 동안 혼자 떠돌며 남은 것이라곤 가방 어딘가에 구겨져 있을 유독 짭짤했던 새우깡의 빨간 봉지뿐이다. 버스는 7번 국도를 끝도 없이 달렸고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꺾어대며 졸다 깨기를 반복했다. 너무 지쳤다. 자도 자도 졸음이 몰려왔다. 작가고 나발이고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이 여행은 진정한 작가가 되기 위한 무엇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겉멋만 잔뜩 든 유약한 인간의 ‘공포와 광기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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