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일부터 다른 내가 되면 된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 방법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유독 나를 싫어했다. 다른 누구보다 자신을 경멸하고 업신여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나였다.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비루했으며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단정했다. 항상 우울감에 젖어 있고 즐겁다가도 돌연 불안해졌다. 어디선가 불가해한 존재가 나타나 나를 데려갔으면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나일 지라도 아이 앞에서 만큼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없을 때는 늘 우울의 늪에 빠져 괴로워했고 아이가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반갑게 맞았다. 어쩌면 아이에게 애써 나를 즐거운 사람으로 포장하려던 노력이 스스로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누군가 내게 왜 그렇게 우울했던 거냐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그 시절의 나는 늘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면식도 없는 생명이 어느 날 불쑥 핏물을 뒤집어쓰고 태어나 평생 나를 책임지라며 품에서 울어 댔고 결혼생활에 따른 복잡다단한 일들을 버텨 내느라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초고를 완성했다거나 금방 탈고할 거라는 지인의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답답했다. 항상 글 쓸 시간이 부족했던 나는 하루하루를 예민한 상태로 살아야 했다. 겨우겨우 힘든 순간이 지나 아이가 학교를 가고 이제야 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나겠구나 했는데 덜컥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 나를 놀리는 것 같아 억울하고 분했다. 더구나 일자리는 찾아지지 않았고 그런 상태에서 글은 더더욱 쓸 수 없었다. 글보다 당장 찾아야 할 일이 급했다. 이런저런 압박들이 나를 궁지로 몰아붙이던 날들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둘 집을 늘려가거나 일 년에 몇 번씩 해외를 나가는 여유로운 사람들뿐이었다. 우리 나이엔 명품이라도 하나 들어야 덜 초라해 보인다고 말하던 친구도 있었다. 그런 일들이 많아지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쪼그라들었다.
어쩌면 가장 큰 이유는 내 존재의 이유였던 소설을 써봤자 뭐하겠는가 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더 이상 되지 않는 유명 문학상과 다른 이들처럼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나의 무능력 때문이었을까.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걸 알아버렸던 게 진짜 이유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주제를 파악했음에도 포기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인정하지도 못한 채, 헛된 기대로 조금씩 굳어버리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기분.
언젠가 제주도 어딘가에서 처음 보는 돌무더기들을 본 적이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용암이 굳어서 만들어진 돌이라고 내 옆을 지나던 누군가 말해주었다. 그날 난 시뻘겋게 들끓던 용암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보다 뜨겁게 하늘로 솟아올랐다가 아래로 떨어지며 서서히 식어버린 차가운 돌덩어리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하고 다시 생각했다. 만장굴 속으로 꾸역꾸역 밀려가던 거대하고 붉은 용암이 마지막에 시커먼 모습으로 천천히 식어버리는 모습과, 하늘로 솟아올랐던 뜨거운 용암의 덩어리들이 차가운 바닥을 구르는 애처로운 모습을. 간절한 기도였을 그 수많은 비애를. 어쩌면 그것은 내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런 자괴감과 모멸감, 어떤 박탈감과 자책감으로 나는 온통 뒤죽박죽인 채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그 단순한 명제가 나를 일으켰다. '지금까지의 자신이 싫다면 내일부터는 다른 자신이 되어라.' 누구의 책에서 본 글인지, 저 문장이 완벽한 문장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그런 의미였던 것 같다. 그 구절이 화설처럼 나를 관통했다. 그 말은 평생을 방 안에서 웅크리고 살던 사람을 밖으로 나오게 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 말은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새롭게 뒤집어 바라보도록 도와주는 구원의 문장이기도 했다. 그것은 당연하고도 완벽한 하나의 서사였다. 때로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한 것을 잊고 살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도, 미안한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도 우리는 자주 잊은 채로 살곤 하니까.
나는 왜 한 번도 다른 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 왜 곧이 곧대로만 생각했을까. 지금까지의 나는 싫어도 어쩔 수 없는 나니까, 내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한 스스로를 싫어하고 미워하면서도 살아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글귀를 보는 순간 모든 게 달라졌다. 지금까지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내가 되면 된다는 그 간단한 해답을 모르고 살아왔던 내가 너무도 바보 같아 스스로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버리기로 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과연 잘해 나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건 노력해보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끔찍하게도 싫었던 나를 버리고 이제 나는 다른 내가 되어야겠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