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솔닛은 '반항기의 아이들이 죽음을 상상하는 것은 성인이 감당해야 하는 온갖 결정과 부담 때문에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변할지 상상하는 것보다는 죽음을 상상하는 편이 더 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가 그리도 어둠 속으로 침잠했던 건 그런 이유였던 걸까? 죽음으로 가는 길을 내내 상상했던 건, 그의 말처럼 나의 미래가 상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마흔 중반, 어른아이 성장기'를 쓰기로 했던 순간을 생각하면 맞는 말인 것도 같다. 어쩐지 마시고있던 보드카를 씽크대에 쏟아붓고 우유를 한잔 따라야 할것만 같다. 맞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 잡히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는 어둠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또 다른 미래를 위한 확장의 영역이었다는 것도 솔릿의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유년기에는 내내 생명을 향해 자라다가, 생명의 정점에 도달한 사춘기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죽음을 향해 자라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죽음의 숙명성은 반가이 맞아들일 만한 확장으로 느껴진다. 왜냐하면 우리 문화에서 젊은이가 성인이 된다는 것은 감옥에 들어가는 일인 셈이고, 죽음은 그 감옥에 탈출구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길 잃기 안내서] p.131
탈출구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지옥 속에 있으면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고통과 분노 그곳에 올 수밖에 없었던 자신에 대한 괴로움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죄책감(자신을 지옥 속으로 몰아넣어 버릴 수밖에 없었던) 속에서 뒹굴게 되고 이 세계 이후에 더 이상의 세계는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뿌리내린다. 하지만 지옥 속에서도 탈출구가 있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그곳은 더 이상의 지옥이 아니다. 그곳은 자신이 넘어서야 할 어떤 것. 도전의 의미. 반드시 찾아야 할 세상의 질문인 것이다.
지옥에 탈출구가 없다면 자신이 들어온 바로 그곳으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실타래를 들고 미궁 속을 탈출했던 테세우스처럼 본인이 떨어졌던 그곳을 잊지 말고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미궁 속에서 나오기 위해 나는 너무도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미궁 안에 있는 느낌이다. 혼란스럽고 두렵다. 나는 아직 완전히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탈출구가 어딘지를 인지하고 있다. 그것 만으로도 나는 내 삶을 지켜냈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내 손으로 잠겄던 방문을 열기까지 나는 수만 번의 갈등에 시달렸다. 너무 오래 갇혀 있었기 때문에 그곳이 안락하다고 느껴졌다. 저 문밖은 내가 나설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옥 속에서 탈출했다면 이제 자신이 전과는 조금쯤 다른 사람임을 인지해야 한다. 로고스의 개념을 완성했던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발을 담그는 강물은 매번 새로운 강물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흘러가므로 이전의 강물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하고, 나는 지옥 속에서 탈출하게 되었으니까. 지금도 그 철학자의 말을 잊지 않으려고 매일 잠들기 전에 되뇐다.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라고. 누구라도 같은 강물에는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고.
지금 지옥 속을 헤매고 있을 많은 이들도 기억하길 바란다. 지옥 속에도 탈출구는 있다.
12살 때 친구 L은 늘 웃는 아이였다. 그 애의 호탕한 웃음은 듣고 있는 사람까지 함께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웃다가 끊임없이 웃음이 웃음을 불러들여 배가 아파 눈물이 쏟아질 때까지 웃기 일수였다. 입술 양쪽에 작은 보조개가 매력적이던 L은 선하고 착한 아이였지만 남들 말에 잘 휘둘리는 성격이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아픈 말을 뱉어내면 그대로 몸에 새길 정도로 L의 마음은 연약했다. 놀아 주지 않는 다른 친구에게 빌듯이 매달리는 모습이 너무 측은하고 답답해 보여서 그런 짓 좀 그만하라고 버럭 화를 냈던 어느 날의 내가 기억난다. 그만큼 L은 사랑에 목말라했다.
L의 엄마는 나를 좋아했다. 나에게 늘 L을 부탁했고 그걸 잘 알고 있는 L은 자신이 원하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는 늘 나를 데리고 엄마에게 갔다. "우리 X 오랜만에 왔구나. L이랑 자주 좀 놀아. 네가 함께 있으면 아줌마는 안심이니까." 나의 어떤 점이 L의 엄마 마음에 들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L의 엄마는 당신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내가 L의 보호자가 되길 바랐다.
졸업을 하고 각자의 삶을 살다가 연락이 끊겼다. 서른이 넘어 초등학교 친구들 몇몇과 우연히 연락이 닿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L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했다고 했다. 누군가는 L이 신내림을 받았다고도 했고, 누군가는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L의 통통한 볼살에 자리했던 깊은 보조개와 L을 부탁한다던 L의 엄마가 함께 떠올랐다. L의 엄마는 어떠시냐는 물음조차 묻지 못했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친구들도 그 뒤의 일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지옥의 입구로 들어섰다. 더 좁고 더 어두운 곳만이 내가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미로 같은 그곳으로 들어갔고 얽히고설켜 완전히 길을 잃었다. 겁이 많은 나는 길을 잃었다는 혼란스러움과 어둠의 공포 속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걷고 걸어도 길은 없었다. 모든 곳이 어두웠고 모든 곳에 가눌 수 없는 공포가 서려있었다. 이곳에 탈출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죽음과 어둠. 발끝에 채이는건 물컹하고 더러운 감정들 뿐이었다.
그런 곳에 탈출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 두려웠던 나는 방하나를 열었고 그곳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모두가 나를 잊기를 바랐다. 어둠이 내 안으로 더깊이 흘러 들어올까 봐 두려워 몸을 떨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고 숨을 죽였다. 그대로 오랜 시간 잠이 들었다. 하지만 문틈으로 스멀스멀 흘러 들어온 어둠은 방안에 가득 찼고 그것은 이미 내 핏속까지 흘러들어와 나를 장악했다. 나는 그를 받아들였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엔 더 이상 어둠이 무섭지 않았다. 나와 어둠이 하나가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모든 걸 포기했다. 이제 그만 할까. 한순간 다 지겨워졌다.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이 조금만 더 지속됐더라면 완전한 죽음 속으로 들어섰을지도 몰랐다. L도 그랬던 것일까.
이 세상의 모든 삶은 죽음과 맞물려 있다. 삶이란 결국 자신의 꼬리를 입에 물고 있는 신화 속의 뱀 '우로보로스'를 닮은 격. 바람을 안고 거리를 뒹구는 더러운 쓰레기 안에도 죽음은 서려있고, 건강을 위한 운동이나 아름다움밖에 없을 듯 한 계절의 흐름 속에도 죽음은 숨어 있다. 독일의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에서처럼 죽음은 항상 당신과 나의 곁에 머물고 있는 중이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은 더욱 자주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도처에 널려있는 잡초들처럼 그것은 뽑아도 뽑아도 자꾸만 솟아난다. 세상 모든 것은 반복될수록 내성이 생기는 법이다. 하물며 사랑까지도. 헌데, 어쩐지 죽음이라는 것에는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늘 처음처럼 놀랍고 두려우며, 무릎이 꺾이는 비통함에 가슴이 아프다.
소리를 질러도 아무 대답 없는 그 어둠 속에서 L의 마음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악을 쓰며 삶에 저주를 퍼붓다가 죽음을 맞지 않는다. 진짜 죽음의 순간은 수용.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용하는 순간에 온다. L은 그 순간이 길게 지속되었을 것이고 곁에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지옥의 탈출구를 찾고 싶은 의지 또한 희미해졌으리라.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 다른 문들을 열어 보았다면. 몇 발자국만 더 용기를 내어 어둠 속을 걸어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더라면. 아니, 내가 조금만 더 그의 안부를 일찍 접했더라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쓴 작가 이윤기는 ‘신화는 미궁이다. 미궁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 역시 그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화를 어둠으로 대체해도 의미는 같다. 우울증을 이해하지 못하고 왜 자기 기분 하나 마음대로 못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의미를 알 길이 없다. 알려고 애쓰지 않으니 알 방법이 없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누군가를 한심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들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들이 지옥 속에서 문을 찾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어둠이 너무 짙어 바로 곁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어둠 속을 영영 헤매 일 수 있다. 당신이 거는 한 통의 전화가. 당신의 방문이. 당신의 눈빛이. 당신의 안부가. 당신의 살가운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탈출구일 수 있다는 걸 기억해주길 바란다.
갑작스레 떠오른 L의 기억 때문일까. L이 어둠 속으로 침잠하는 장면이 며칠째 꿈에 나타나 나를 힘들게했다. 12살의 L은 오래 전의 모습처럼 뽀글뽀글한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동네를 뛰어다녔다. 깔깔깔 소리내어 웃던 L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 울린다. 그리고 L은 더 이상 이곳에 없다.
*제목은 필립 클로델의 [회색영혼]중 한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