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소설을 쓰세요?

말하지 못하는 자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by 민달이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소설을 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이 내 인생을 구원해 줄 거라는 믿음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아니, 구원은 커녕 때로 내 삶을 지옥 속으로 몰아넣어 버리는 것 같다고 느끼는 건 왜 일까. 그 시커먼 구렁텅이 속에서도 기어코 쓰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그럼 무얼까?


"왜 소설가가 되셨어요? 글 쓰면 뭐가 좋아요?"라는 누군가의 물음 뒤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본다. 그러게, 글을 쓰는 이유가 뭘까. 무슨 미련이 남아서 내게 등을 돌린 자의 손을 놓지 못하고 여태 이러고 있는 것일까. 보통 그 상황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농담을 섞어 대충 대답을 하면 열에 아홉은 하하하 손뼉을 치며 재밌어한다.


그 순간에 내가 '소설이 나를 구원해 줄 것 같아서요.'라고 대답을 했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겠지. 누군가는 마시던 음료를 푸핫- 뱉어 낼 수도 있겠다. '어머나 그냥 호기심에 한번 물어본 건데, 이 분위기 어쩔 거야.' 이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아니 소설을 읽거나 쓰면서 구원받는다는 건 대체 무슨 소리인가? 그래 읽으면서 구원받을 수는 있지,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의 소설들은 그러하니까. 헌데 소설을 쓰면서 구원받는다는 건 뭐야, 나이 들어 회고록을 쓴다는 소린가? 사람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그럼 나는 또 대충 눙치며 대화를 끝내버린다. 위축된 겁쟁이의 대화란 이렇듯 종잡을 수 없다.


책을 읽으면 나는 좀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찬가지로 소설을 쓰며 나는 진짜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된다. 된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된다고 확신한다. 그 순간만은 40년 넘게 살아온 현재의 내가 사라지고 창조주이자 권능을 지닌 신이 된다. 그런 순간의 나를 나는 사랑한다. 입으로 뱉어내는 모든 말들은 맹꽁이 같지만 글로 풀어내는 나의 말들은 그런 나를 위로한다. 나를 위로할 수 있다면 타인도 조금쯤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작은 희망으로 쓰고 있다.


말을 하고 돌아서서 늘 후회하거나, 잠들지 못하고 이불을 걷어차며 못한 말을 혼자서 뱉어내는 류의 사람. 때문에 겁이 많은 나는 늘 공허하고 쉬이 휘발되는 말만을 내뱉는다.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상태에서만 나의 말들은 살아 움직인다. 어쩌면 내가 그것을 더 원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를 기억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 나를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기억하지 않기를 바란다. 겁쟁이이면서 욕심도 많은 존재.


그래서 나는 '유머'를 방어기제로 삼아왔다. 위트 있고 센스 넘치는 개그감으로 사람들은 즐겁게 해 주면 그들은 나와 함께 있는 걸 좋아했다. 개그맨이 되라는 소리를 자주 듣고 살았다. 그러면 나는 낄낄대며 말한다. "사실 송은이나 김숙 자리가 딱 내 거거든요." 사람들은 까르르 웃으며 말한다. "어머 진짜 스타일이 딱이네! 이영자랑 그들 사이에 당장 끼어도 아무도 모르겠어요!"


농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tv에 나오는 그들을 보며 내가 저 길로 들어섰어도 재밌게 잘 살았을 거라 생각한다. 넘치지 않게 치고 빠지는 개그감을 방어기제로 갖고 살다 보니 이상한 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재미없게 소설가는 뭐야, 자기 그냥 코믹 작가 해라.' 나는 그게 꿈이었다고 말한다. 반쯤은 진심이고 반쯤은 거짓이다. '소설가라더니 별것도 아니네!' 소리보다 '어머 그냥 웃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소설가래~'가 덜 상처가 될 테니까. 그만큼 나는 겁쟁이고 그만큼 나는 비루하다.


어색한 순간을 잘 참지 못한다. 겹겹의 의미들로 묵직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이 싫어서 먼저 지갑을 꺼내거나 먼저 말을 하는 타입. "어쩜 저렇게 눈치도 빠르고 개그감도 남다를까! 0 씨는 진짜 재밌는 사람이에요!" 그러면 나는 또다시 그들을 웃겨주고 돌아서서 허황된 자신의 빈 껍데기를 들여다본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개그감도 사라졌다. 가끔씩 나타나는 진짜 미소도, 방어기제로 삼고 살았던 내 유일한 무기인 '유머'도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더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타인들을 만나는 일들이 의미 없고 자신의 존재를 갉아먹는 시간들처럼 느껴졌다. 피곤하고 끔찍했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도,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너무 지쳤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인간 자체에 환멸을 느끼는 일들도 종종 일어났다. 그럴 때면 누군가 내 손을 잡아 주었으면 싶었다. 하늘에서 한줄기 빛이라도 내려와 나를 데려갔으면 싶어 자주 캄캄한 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했다.






혹한의 모스크바를 걷거나 키예프의 좁은 골목을 뒤뚱거리며 지나고 리스본의 어두운 상점들을 어슬렁거리거나 이집트의 뜨거운 거리를 걷는다. 혹은 막 오븐에서 꺼내어 버터향 가득한 크루아상을 결대로 찢어 먹기도 하고 시끄럽고 지저분한 거리에서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기도 한다. 모로코에서 마시는 새콤달콤한 민트 티와 인도에서 마시는 고소한 차이, 혀가 저릴 만큼 진한 에스프레소와 독한 셰리주를 마시는 일들. 형사의 뒤를 다급히 쫓아가거나, 살인자의 심정으로 도망 다니는 순간들. 이해할 수 없었던 타인의 상태가 되어 보는 모든 일들만이 나를 위로했다. 그들의 위로가 나를 구원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누구라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닐까.


그것들은 내가 쉬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직접 해 볼 수 있는 일들도 있겠으나 그 모든 일들을 해보자면 어떤 때는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고, 어떤 순간엔 보다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하며,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감정이 소모되기도 할 것이다.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없는 그 모든 일들. 나처럼 겁쟁이일수록 그런 일들을 자신의 삶에 결부시킬 일은 더욱 일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읽는 것으로 그리고 쓰는 것으로 해소할 수 있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책이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행위가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몰입. 소설 속으로 들어가 사모바르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차를 그들과 함께 마시거나 그들만의 역사가 스며든 구불구불한 거리를 걷는 행위, 내가 진짜 그들이 되는 몰입의 순간들이 나를 구원한다. 소설을 쓰며 내가 실제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그 속에서 표현하게 하는 일들은 어떤 카타르시스를 내게 안긴다. 쓰는 것은 말하지 못하는 자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말하기의 다른 방법' 쯤 되는 게 아닐까.



사진가가 자기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대상을 사진에 담지 않고 어떻게 거기서 자유로워질 수 있단 말인가?

존 버거 [말하기의 다른 방법] p.75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어제 들은 것도 오늘 잊어버리고, 오늘 배운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니 오래 전의 것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머릿속에서 제대로 정립되어 뱉어지는 말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자신의 머릿속에 수천수만 개의 서랍들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하루키의 말이 놀라웠던 건 당연하다. 머릿속의 수많은 서랍도 놀라운데 그 서랍에서 각 섹션마다 파일 제목을 붙이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기만 하면 간단하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이라니. 아아, 나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돌려 말하고 있지만 나는 머리가 나쁘다는 소리다. 그래서 입이 잘 열리지 않는 건가? 모르겠다.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고 아닌 척을 해본다.) 어쨌건 말보다 글이 편한 건 맞으니까.


산수에 재능이 없어 숫자만 보면 뇌가 정지된다. 그러니 내가 제일 놀라워하는 글은 이과계열의 글을 갖고 노는 사람. 그런 이들이 매끈하게 글을 뽑아 놓은 걸 읽고 있으면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수학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좀 더 멋진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떤 때는 그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테드 창을 좋아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메마른 토양에서 이과적 소양이 뿜 뿜 소생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머릿속이 화- 하게 환기되면서 새로운 상상력이 터져 나온다. 와, 무릇 소설이라 함은 이렇게 써야 하는 것 아닌가. 그의 재능이 부럽고도 부럽다. 이과적 소양과 문과적 재능이 눈물 나도록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문학작품이라니! 내가 평생 애써도 이루지 못할 일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아,,,,, 왜 또 이렇게 길어졌지...

작정하고 무슨 말만 시작하면 이렇게 길어지고 길을 잃는다. 쓰는데도 이러니 말을 할 수가 있나 말이다. 내가.

아무튼 그렇다. "왜 소설을 쓰세요?" 묻는 이들에게 뻘쭘하게 농담을 섞어 답을 해주고 나서 돌아와 허한 마음을 달래려고 허한 글을 한번 써봤다.



문학은 써먹을 데가 없어 무용하기 때문에 유용한 것이다.

모든 유용한 것은 그 유용성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만,

문학은 무용하므로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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