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종업식이 다가온다. 새 학기가 될 때까지 나는 또다시 강제 방학에 들어가야 한다.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건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음을 의미하므로. 조금만 부지런을 떨고 열정을 불태운다면 새벽에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에서 점점 멀어지던 나는 언제부터인지 더 이상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일은 하지 않는다.
아이가 있다고 글을 쓰지 못하는 게 말이 되냐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쓸 수 있다. 나도 써봤으니까. 하지만 부드럽고 편안한 에세이가 아닌 소설을 쓰기에는... 뭐랄까 좀 거북했다. 게다가 평소보다 예민해져 있는 상태로 아이를 대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의 구성과 인물, 사건과 그 밖의 관계도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써나가는 와중에 아이가 앞에 있으면 신경이 너무 거슬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꼬꼬마 시 절이었을 때는 그나마 나았다. 그저 응응 아이고 이쁘다. 하하. 웃어주기만 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아이가 크고 자기만의 생각을 갖게 된 후에는 그럴 수 없었다.
아이가 어깨에 매달리면 나는 노트북을 닫았다. 중요한 장면이거나 감정의 꼭대기에 다다른 순간이어도 여지없이 창을 닫았다. 흐름이 끊기는 게 죽기보다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소설에는 아이가 봐서는 안 되는 사건들이 수두룩했다. 거친 대화와 부적절한 단어들이 난무하는 걸 아이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럴 때마다 눈물을 머금고 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아이는 엄마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끊임없이 궁금해했고 나는 아이가 곁에 오지 못하도록 하느라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옆에 오지 못하게 하면 아이는 불평을 토로하다가 이내 작전을 바꾼다. 조용히 책을 읽다가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봐달라거나. 자신이 지금 필요한 물건이 보이지 않으니 찾아달라며 맥을 끊었다. 어느 날은 같이 총싸움을 해야 했고 어느 날은 야구도 해야 했다. 아이의 방해 수법은 날로 진화하여 원하는 간식을 요구하거나 책을 사러 서점에 가야 한다고도 했다. 자식이란 무엇일까. 한껏 예민해졌던 나는 녀석의 진지한 얼굴에 웃고 말았다. 타인이었다면 당장에 절연하고 말았을 것을 나는 기꺼이 노트북을 접고 아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갈 준비를 하는 나에게 책을 읽던 아이가 물었다.
시선은 여전히 읽던 책에 두고 있었고 말투도 별것 아니라는 듯 무심했지만 나는 괜스레 뜨끔해서 아이를 돌아보았다. 그럴 만도 하지. 늘 노트북을 두들기며 무언갈 쓰고 있는데 보지는 못하게 하고, 글을 쓴다고는 하는데 진짜인지 모르겠고, 소설가라고는 하는데 서점에 가봐도 엄마 이름의 책은 보이지 않으니 엄마는 뭐하는 사람인가 궁금할 만도 했다. 얼굴이 달아올라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게 소설가인데 내 소설은 어디에 있지? 멍하게 아이를 보고 있는데 k가 얼른 일어나 [0000년 신춘문예당선소설집]을 책장 구석에서 찾아 아이에게 보여준다.
"엄마 여기 있잖아. 전에도 봤으면서."
그래도 아이는 의아해한다.
"에이~ 이건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있는 거잖아. 엄마만 나와 있는 책은 없어? 왜 없어? 소설가면 자기 책이 있으니까 소설가인 거 아니야?"
아이의 말에 이번엔 K도 말문이 막힌 듯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돌아본다.
"그러게, 우리 아들 말이 맞는데. 엄마 책은 아직 없어. 엄마가 더 열심히했어야 했는데 노력을 너무 안 했나 봐. 다음엔 더 열심히 해볼게."
나는 아이를 달래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만난 S와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근처 바로 자리를 옮겼다. 간만에 느긋한 기분으로 발랄라이카를 한잔씩 마시고 S가 막 두 번째 잔을 주문하려는데 바텐더가 BAR 위에 올려진 책에 호기심을 보였다. 자신의 동생도 책을 좋아하는데 집안 곳곳에 책을 너무 많이 쌓아 둬서 매일 잔소리를 해댄다고 말했다. 동생에 대한 이야기 때문일까? 기분이 전보다 좋아 보이는 바텐더가 S에게 직업을 물었다. S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소설을 씁니다."
바텐더는 소설 쓰는 사람은 처음 만난다며 호감을 표시했고 그들의 가벼운 대화는 좀 더 이어졌다. S는 등단을 한적도 없고 딱히 등단을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당연히 그가 쓴 글은 누구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는 자신이 작가임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처음엔 그런 S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삶의 모든 순간순간을 S로부터 배우고 있기까지 하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S야말로 진짜 소설가가 아닌가 생각했다. 바텐더와 S의 대화가 끝난 뒤에 나의 그런 생각을 말하자 S는 자신도 알고 있다며 웃었다. "그래, 너야말로 진짜 위대한 예술가다!" 11시쯤, 우리는 각각 진토닉과 핫 토디를 한잔씩 더 마시고 헤어졌다.
작가란 무엇인가. 소설가란 소설을 쓰기만 하면 되는 사람일까? 아니면 출간된 책으로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진정한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작가라는 명명은 대체 누구로부터 받는 것이며, 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작가인지 아닌지를 판별 받아야 할까.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시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S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쓴다. 매일 회사에서 야근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소설을 쓰고 시를 쓴다. 내가 그를 대단하게 생각하는 건 그는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서랍 안에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쌓여 있을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글을 하루도 빠짐없이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혼자 쓰는 건 그저 자기 위안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내가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마음. 끝없이 펼쳐지는 설원 같은 그 마음을 그는 어떤 심정으로 견뎌내고 있는 중일까. 그 망망대해 같은 마음을 알고 있는 나는 언젠가 그에게 지치지 않는가 물은 적이 있지만 S는 지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치지 않는다는 말은 아마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지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 어쩐지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에 비하면 애송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툭하면 불안해지고 우울해지고 멘탈이 박살 나서 온갖 신에게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내가 S앞에 서면 한 없이 작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한 번도 타인에게 내 직업이 소설가라고 말한 적이 없다. 뭐하시는 분이냐고 물으면 늘 그냥 집에서 일한다고 에둘러 말하는 게 다였다. 나 또한 S처럼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어쩐지 단 한 번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언젠간 나도 S처럼 "소설을 씁니다. 소설가 X라고 합니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날이 올까? 잘 모르겠다. 그런 날이 올지 안 올지. 그저 나는 S처럼 하루하루를 써나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망망대해 같은 곳에서 마지막인 순간에도 지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달래며 끝 간 데 없는 바다로 천천히 나아가는 중이다.
이곳에 글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글을 쓰면서 놀랍게도 구겨져 옴짝달싹 하지 않았던 마음의 결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는 것 같다. 이유 없이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천천히 치유되고 있는 기분. 몇 년 전부터 K는 브런치를 알려주고 글을 써보라고 했지만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다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무 편 남짓한 글을 올린 지금은 돌처럼 굳었던 그전의 마음과는 조금 다르다.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누군가가 내 앞에 앉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내게 힘을 돋우어 주는 댓글들에 치유받는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조용히 읽어주는 이름 없는 분들에게도 늘 마음 깊이 감사한다. 그저 누군가 내 글을 읽어 주고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이름 없는 소설가는 힘을 얻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