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라는 감정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 중 하나이다. 때로 작은 불안은 삶에 활력을 주고 어떤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기간에 문제가 있다. 적당한 불안은 생의 양념이 되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느끼는 고통은 배가 된다. 불안감을 해소할 그 어떤 방법도 보이지 않게 된다는 건 홀로 야생동물이 가득한 깊은 숲 속에 버려진 것과 다름 아니다. 어디서 어떤 동물이 튀어나오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어둠 속을 맨 몸으로 걷고 또 걸어야 한다. 매일 밤 두려움에 떠는 상태가 됐을 때는 이미 정신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졌을 것이며 그 아득한 숲 속에서 제대로 걸어나 올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어디선가 비추는 한 줄기 빛이나 누군가 내밀어 주는 손이 없다면 영영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을 잃기 전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 가족이라던가, 지인이라던가, 전문병원이라던가. 하지만 나는 아무에게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가족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았으며 지인들에겐 입도 벙긋하지 않았고 물론 병원도 가지 않았다. 가족에게 말해 봤자 이해하지 못할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가봤자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말들만 하는 게 아닐까 믿음이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감정이 끔찍해도 방긋 웃는 아이를 보면 조금쯤 치유가 되는 것 같아 나는 나를 방치했다.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의사 처방 없이 구할 수 있는 약을 찾았다.(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고 위험한 짓이었다.) 인터넷엔 없는 게 없었으니까. 영양제를 구입하던 해외사이트에는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만들었다는 우울증 치료제가 여럿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을 구입했고 얼마간 복용했던 기억이 난다.
자연치료제는 별 효과가 없었다. 있었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자연치료제라 자연스럽게 나아 극적인 효과를 느끼지 못했는지도. 어쨌건 얼마간 먹다가 자연적인 것도 부작용이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보고는 복용을 중단했다. 우울한 기분이 들면 한알 씩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찬장에 몰래 넣어 두었는데 어느 날 보니 유통기한이 지나 결국엔 반도 먹지 못했다. 병원도 가지 않으면서 약까지 구해 먹은 걸 보면 그 어두운 감정에 어지간히도 지기 싫었던 모양이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래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동료나 경쟁자 때문에 좌절할 수도 있고, 자신에게 선택한 목표를 이룰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고, 굽이치는 시장의 파도 속에서 재수 없는 흐름에 말려 들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의 실패는 동료의 성공 가능성 때문에 더 심각해 보일 수도 있다. 불안은 현대의 야망의 하녀다. p.124
내 불안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를 들여다볼 용기가 있다면 우리는 불안을 다스릴 수 도 있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불안의 이유 중 하나가 유독 가슴에 와 닿았던 이유는 아마도 그의 책을 통해 내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지독한 불안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 같이 교수실에 어물쩡거리다가 사라진 이들 중 한 명도 오래전에 등단을 했더랬다. 등단 후 그 또한 잠시나마 작가로서의 기쁨을 맛봤으리라. 하지만 곧이어 어둠 속을 헤맸을 것이다. 당시에 회사를 다니고 있던 그는 한참 동안 방황을 하다가 결국 방글라데시로 자원해서 이 나라를 떠나 버렸다. 방글라데시를 거쳐 몇 년간 아프리카와 유럽을 떠돌며 내게 이런저런 편지들을 보내곤 했다. 그곳엔 몹시도 외롭고 고독했던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었다.
또 다른 한 명은 당선이 되긴 했으나 안타깝게도 중복 투고를 하는 바람에 당선이 취소되고 말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그는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괴로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종종 그런 이유로 당선이 취소되는 일들이 아직도 일어나곤 한다. 무엇이 그들이 중복 투고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을까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가눌 수 없는 불안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가 가장 기본적인 조항도 인지하지 못했을 리 없다. 하지만 두려움과 불안에 떨던 그는 점점 자신을 덮쳐오는 공포에 사로잡혔을 것이고 당선이 되고도 남을 완벽한 작품을 들고서도 내내 불안해하다가 결국 잘못된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이렇듯 깊은 불안의 감정은 때때로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키기도 한다. 누군가를 기약 없는 곳으로 떠나게도 만들고, 누군가의 눈을 어지럽히기도 하며, 누군가의 삶을 깊은 슬픔 속으로 처박아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비단, 이들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이 각자의 이유로 크고 작은 불안이라는 괴물에 시달린다. 누군가는 쉽게 물리치고 누군가는 치명상을 입으면서도 불안의 한 복판에서 끊임없이 그것들과 싸우고 있다. 그 끔찍한 괴물에게 심장을 먹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두 다리를 잃기도 한다. 팔을 잘리고 눈알이 뽑히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괴물을 물리치려고 온 힘을 다한다. 때로 성공하기도 하고 때로 실패하기도 한다. 너무도 두려워 아무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깊고 어두운 방 속에 자신을 꽁꽁 잠가버리는 일은 무수히 많다.
얼마 전 오랜만에 그들을 만났다.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서로의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이 찢기고 피로 얼룩진 상태로 서로의 아픔을 응시한다. 손을 잡아주고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우리지만 우리는 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는 끔찍한 불안과 싸우고 도망가길 반복하겠지만 아직 굴복하지 않았다. 굴복하지 않는 한 지는 것을 보류한다.
둘은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몇 년간 사라졌다 돌아온 녀석은 방글라데시에서의 일들을 바탕으로 장편소설의 구성을 끝냈으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다른 이도 여전히 수업이 끝나면 새로운 자신으로 돌아가 시를 쓴다고 했다. 그들과 헤어지고 돌아온 저녁에 먼지가 뽀얗게 쌓인 [불안]을 다시 꺼내어 본다. 책을 봤을 당시의 나도 지금의 나처럼 여전히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놈과의 싸움에서 몸부림치고 승리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책 속에 역력하다. 그리고 책을 닫기 전에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우리의 하찮은 걱정을 천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미미함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된다. ..... 광대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사회적 위계 내에서 우리가 하찮다는 느낌은 모든 인간이 우주 안에서 하찮다는 느낌 안에 포섭되면서 마음에 위로를 얻게 된다. ....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의 거대한 공간을(실제로 또는 예술작품을 통하여) 여행하는 것이다. p.320-321
책을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은 나는 시간을 들여 여행지와 전시회들을 검색한다. 오래전에도 지금처럼 불안을 다스렸던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설핏 웃음이 난다. 당장 여행을 갈 수는 없으니 보고 싶은 전시를 고른다. 마침 [피카소와 큐비즘] 전시가 시작되었다. 티켓을 예매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광활한 시집도 한 권 고르고 나자 어쩐지 애틋해진다.
다시 시작한 두 친구처럼 나 또한 지지 않았다. 나는 그들보다 늦더라도 한 발 한발 갈 수 있는 곳을 향해 발을 내딛으려고 한다. 그곳에 새로운 얼굴의 불안이라는 괴물이 다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일단 가봐야겠다. 놈을 만나면 다시 싸우고 고통받겠으나 이전의 나와는 다를 것이다.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은 이제 B급 마인드의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미치광이적 기질을 무기로 나만의 길을 새롭게 만들어 갈 것이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