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철공소

by 민달이

* Fe(철): 주기율표 8족 4주기에 속하는 철족원소.

원자량 55.845g/mol, 녹는점 1538℃, 끓는점 2862℃, 밀도 7.874g/cm3


혁은 담배를 도로위로 튕겨냈다. 안으로 들어서려다 발을 멈춘 건 철공소 위에 걸려 있는 간판 때문이었다. 녹이 슬대로 슬어 귀퉁이가 떨어져 버린 간판엔 덩그러니 <철공소>라고 씌여 있다. 이름이라도 지을 걸. 변변한 이름도 없이‘철공소’라고 써 놓은 게 못내 아쉬웠다. 혁의 그런 생각은 처음 문을 열고 간판을 달았던 순간부터였다. 도저히 이름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종이에 혁철공소라고 쓰고는 벅벅 지웠다. 자신의 이름을 붙이기는 우세스럽고, 뉴 철공소라고 하기엔 어딘지 쑥스러웠다. 더구나 간판에‘뉴’라고 붙이는 게 유행처럼 번지던 때였다. 하루 종일 고민하던 혁은 간판집에 그냥‘철공소’라고 써달라고 했지만, 막상 트럭에서 완성된 간판을 내리는 것을 본 순간부터 후회했다.


혁은 철공소 안으로 들어가 선반의 마무리 작업을 계속했다. 스패터가 손목으로 튀었다. 손목위에서 틱틱 거리던 어린 불꽃을 후, 불어 날리자 데굴데굴 굴러간 자리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눈을 가늘게 뜨고 최대한 빛을 차단했다. 용접이 되는 부분만 볼 수 있을 만큼 작게 눈을 떴다. 오래전부터 고양이처럼 마음대로 빛을 조절하는 눈을 갖고 싶었다. 강한 불빛에 눈동자가 화상을 입는 일이 잦았다. 용접을 할 때면 타는 듯한 통증과 함께 끊임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현주가 떠난 뒤, 철에게 눈물을 들키고 싶지 않아 아다리*에 걸려서 그런 척 몰래 울던 일도 많았다.


용접봉으로 쇠와 쇠를 이어주는 순간은 의사가 수술하는 것과 흡사하다. 조금만 잘못해도 블로홀이 일고 언더컷과 오버랩이 생기면 수술은 실패다. 의사가 다시 배를 가르고 상처를 치료해야 하는 것처럼 용접 또한 마찬가지다. 가우징으로 잘못 용접된 곳을 날리고 새로 시작해야한다. 예리한 눈과 두려움 없는 심장, 그리고 예민한 여자의 손을 지녀야 하는 것은 이 일도 마찬가지다. 용접을 하는 순간마다 혁은 자신이 의사와 다를 바가 없음을 느꼈다. 용접을 시작했을 때의 공포를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의사들도 마찬가지겠지. 처음부터 손에 피를 흠뻑 적시는 강인함을 지니진 못했을 것이다 사자의 강한 심장도 결국 반복된 노력의 결과일 거라고 혁은 생각했다.


며칠째 먹어도 줄지 않는 진미채를 꺼내 술상에 올려놓았다. 뚜껑을 열자 눅진한 고추장과 산화된 기름이 뒤섞인 냄새가 퍼졌다. 소주를 반병쯤 마셨을 때 뉴스를 보던 혁이 중얼거렸다.

-쇳덩어리가 난다는 게 말이 되나...

일주일전에 말레이시아상공에서 실종된 비행기의 잔해가 태평양에서 발견됐다는 뉴스였다. 탑승한 250명 전원이 사망했다는 속보가 아침부터 계속 나오고 있었다. 혁은 일을 하면서도 하루 종일 흘러나오는 똑같은 내용을 주의 깊게 보았다. 철은 비행기를 향한 아빠의 불편한 감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용접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잖은가. 하지만 혁은 마치 비행기가 살아 있는 생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을 증오했다.

-아빠는 평생 비행기 안 타겠지?

-차도 있고 배도 있는데 비행기는 무슨.

혁이 한 데 엉켜 있는 진미채의 끝을 잡은 채 젓가락을 흔들었다.

-배는 어떻게 타? 쇳덩이가 물에 뜬다는 게 말이 돼?

-그건 좀 다르지.

-뭐가 달라?

진미채가 찢어지지 않아 딸려 올라오는 것들을 한꺼번에 입안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하늘은 가망이 없어. 저 봐라. 한 번에 완전히 끝인 거잖냐.

-믿음을 좀 가져봐. 아빤 믿는 게 뭐야. 용접? 그것만 믿지?

혁은 우물우물 질긴 진미채와 뱉어낸 말을 함께 씹으며 말했다.

-아니다.

-아, 철공소! 그래 아빠한텐 이 녹슨 가게가 최고니까.

-철.

-왜! 뭐 내말이 틀려?

-철이라고.

-뭐라고?

-내가 믿는 건 철뿐이야. 용접은 ...내가 믿는 세상에 대한 기도 같은 거다.


철은 싱크대위로 그릇들을 밀어 넣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작업복이 덮이지 않는 손목과 목 주위만 검게 그을리는 것도 끔찍했다. 믿음이고 기도고 뭐고, 시도 때도 없이 허옇게 살갗이 벗겨지는 얼굴이나 어떻게 해보라지. 한 겨울에도 일광욕을 즐긴 사람처럼 아빠의 얼굴에는 덕지덕지 허물이 일었다. 아빠의 세상에 존재하는 신은 온 종일 얼굴의 허물을 벗겨대기 바빠서 누구의 소원도 귀 기울여 듣지 못할게 뻔했다. 저런 얼굴을 하고 살라고? 요즘처럼 남자의 미덕이 피부에서 나오는 시대에 저렇게 살갗을 뚝뚝 떨어트리는 괴물 꼴로? 난 죽어도 못해. 철은 거울을 보며 에센스를 바른 뒤 손으로 톡톡 두드려 흡수시켰다. 암. 남자의 생명은 피부라고. CC크림까지 바르는 재민이 놈은 볼썽사납지만 에센스정도는 발라줘야 21세기 미남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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