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을 마무리 짓기 위한 방황
좋아하는 일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하게 마련이고,
싫어하는 일은 갖은 이유를 들어 안 하려 드는게 사람이다.
<내성적인 건물주>중
그 말이 맞는것 같아.
좋아하면, 하지 말래도 하겠지. 반대로 싫어하는 일은 어떤 핑계든 대서 안 하려 들겠지.
나는 꽤 많은 좋아하는 일을 가지고 있지만, 꽤 많은 싫어하는 일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이제 꼬박 마흔이 되니까 슬슬 좋고 싫음도 예전보다는 명확해 져.
굳이 MBTI까지 가지 않아도 사실 나는 꽤나 내향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고.. 예전에는 나서는 걸 참 좋아했는데 이제는 되도록 말을 아끼게 되고, 행동도 조금 작은 동작으로 바뀌는 것 같고...
Festive한 장소, 사람들, 에너지를 참 좋아했었는데 많은 사람, 많은 음식, 많은 꾸밀거리 가 이제는 조금 거추장 스럽고 버겁게 느껴지는 것 같아. 그리고 이건 단순히 '나이 먹어서 그래'로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는 아니지. 나이가 먹어도 여전히 물질에 대한 탐욕, 사람에 대한 욕망이 그득그득한 이 들 또한 있는거니까.
음식만 해도 그래, 예전에는 정말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했거든?
엄청난 양념을 끼엊은 바깥백 스테이크 하우스의 바베큐 립 이랄지
초코브라우니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초코 시럽을 또 얹은 마그마 선데 랄지...
과한 염분, 과한 당분, 과한 기름기... 모두 믿고 먹는 음식들이었는데 요새는 그런 음식들을 한 입 이상 못 먹겠더라고.
단순하지만, 슴슴하고 멍텅구리 같으면서도 그 속에 어떠한 은은한 간이 배어있는 장인의 음식을 좋아하게 되더란 말이지. 하지만 말이 쉽지 이게 보통 일이 아니긴 해.
사람도 그래. 예전엔 마냥 시끄럽고 즐겁고 재미난 사람을 좋아했던 것도 같은데 ...물론 지금도 그런 친구들을 좋아하지만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은 조금 더 정적인 사람들?
나직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거나, 간혹 엄청나게 웃어 제끼면서 로우 데시벨로도 충분히 방정맞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주로 만나. 나는 어떤 쪽일까? 다소 요란한 쪽이었던 것도 같은데. 이제는 배터리가 별로 없어서 그런 에너지도 없는 걸까? 하하하.
그런데, 난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은걸까? 아니. 타인에게 어떠어떠하게 비춰지는 것이 과연 얼마나 중요할까?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이건 갑자기 샌,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나는 파릇파릇한 봄잔디 보다는 늦가을의 바래어 가는, 조금은 시무룩한 잔디가 더 좋더라.
봄잔디는 싱그럽긴한데 너무 빳빳해서, 그 위에 앉으면 가끔 엉덩이가 따갑단 말이지. 늦가을 잔디는 어쩐지 모든걸 다 놓아버린 느낌으로 건조하니까 그 위에 앉아도 덜 미안하달까. 그리고 뭐, 이듬해에 다시 푸르게 일어날 것을 아니까 말이야.
꽃? 꽃은 과한 향기를 품고, 기대와 매력을 발산하는 장미나 백합 보다는 그저 누군가를 물들일 마음같은 걸 저 깊숙히 몰래 품고 있는 봉선화가 좋아. 물론 아무도 몰라보고 시들어 죽을수도 있겠지만, 누군가 봉선화를 발견하고 콩콩콩 으깨어 손 끝에 붙여 둔다면 그 사람은 한동안 찐한 주황색 마음을 간직 할 수 있을테니까. 쓰고 보니 너무 자기희생적인 느낌이네. 봉선화 패스.
무어가 있을까? 가을의 들잔디 같은 꽃은...
그러고 보니 어쩌면 나는 가을의 들잔디같이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마음은 봄잔디겠지만 말야.
까짓 아무려면 어때, 나는 이제 떠날건데!
이제야 나 라는 사람이 보이는 것 같아.
20대에는 볼 새가 없었고, 30대에는 볼 줄을 몰랐는데 이제는 거울 앞에 선 내가 보여.
이제야 보여.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고 싶었는지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물론 들지만
지금 이어서 알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시력은 분명 나빠졌지만 보이는 건 훨씬 많으니 신기하지?
아직 이걸 '지혜'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통찰'에는 가까워 지고 있는 지도..
누가 뭐래도 여전히 나는 걷고 있으니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