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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ho Dec 01. 2024

그러니까 유학이야기를 좀

생각보다 장황해진 16년의 유학고민서사(2)

 유럽에 다녀와서 잠시 앓았다. 마흔까지의 기록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 갑자기 저 혼자 뻘건 색으로 내지 색이 바뀔, 내 인생에서는 변곡점이 된 사건이지만 이제는 기억도 가물한 이야기라 쓰지는 않으련다.(실은 나중에 따로 엮을 계획이다)  


 아팠던 나에 대한 선물로 딱 2년 동안만, 그간 제일 하고 싶던 걸 하기로 했다. 한 극단에 들어가 연극을 시작했다. 스타니슬랍스키와 그로토프스키의 이론을 결합한 메소드에 따른, 신체 언어를 주로 하는 극단이었다. 한 면이 거울로, 한 면은 르네상스 풍의 벽지로 채워진 좁은 연습실에서 구르고 뛰고, 땀을 흘리며 나는 몸의 언어, 그리고 배우의 몸에 대해 배웠다. 이후엔 극단원과 함께 창작집단을 만들어 운영했고, 지금은 새로운 예술단체를 만들어 기후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극단을 나온 지가 1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연극과 닿은 일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역시 연극은 인생 그 자체 인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부터 일은 많아졌다. 5~6년 전만 해도 문화예술지원사업 심사위원이 "환경 이야기는 문화판이 아닌 환경부에 가서 하시라"라고 할 정도로 척박했는데 지금은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으니. 환경을 논하지 않는 예술은 무심하고, 시대를 벗어난 것처럼 치부될 때조차 있으니... 어느 쪽이나 극단 적인 것은 조금 위험하겠지.

 나는 열심히 사람들을 만났고, 행복에 벅찼다가 허탈하기도 하다가 하며 바쁜 두 해를 보냈다.


사실 2024년은 그냥 맹탕 쉴 생각이었다.

번아웃? 이라기엔 민망하다. 작년에 오키나와에서 수영하며 제대로 등을 벌겋게 태워 먹은 걸 제외하면 아직 인생에서 제대로 Burn 해본 적도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이제 마흔이 되었으므로.


 10년에 한 번쯤은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보기도 하고 해야 하는 것 같은데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었다. 남들처럼 벅차게 뛰어오지도 않았기에 멈추어 숨을 고를 생각도 못하고 그냥 계속, 앞으로만 걸었다.


그래서인지 서른이 넘으면서부터는 시행착오 일색이었다. 방에는 정리할 새가 없이 이것저것 계속 던져 놓은 짐들이 어느새 천정까지 닿아있었다. 옷이 잔뜩 쌓이면, 박스가 계속 쌓이면 언젠가는 중심을 잃고 와르르 다 무너지는 것처럼, 나의 서른 중반에서 후반이 딱 그랬다. 와르르.




이제 뭘 좀 아는 거 같고

이제 뭐 좀 해본 거 같고

이제 좀 아는 사람 생긴 거 같고

그런 기분에 혼자 취해서 뭐나 된 것처럼 굴었지

 

그래서? 돈을 벌었지. 음 아마도 벌었을 거야 그리고

사람을 잃었지. 그런데 잃었다고 하려면 꽤나 중요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음 아니다 중요했지. 중요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우린 그때에 갈라서게 될 운명이었을까

라기보단


원래 이렇게 덜 손질된 의자엔 거스러미가 많기 마련인 거겠지

그래서 앉는 사람들마다 손이 다치고

스타킹에 올이 나가고

그렇게나 인상을 쓰면서 일어났던 것이려나





작년의 어느 겨울날,

와르르 무너진 짐들 위로 눈처럼 소복하니 새로운 물건이 쌓이는 방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지금 가고 있는 속도가 맞나. 나에게 주어지고 있는 일들이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양과 내용인가.

어쩌면 나는 잠시 Runner's high 같은 것에 취해 있던 것은 아닌가.

내가 쌓아온 것들에 자신이 있는가, 혹시 누군가를 성나게, 혹은 아프게 하면서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까?

나는, 나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아니 될 말. 이 밑도 끝도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처음이 아니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이 생각들이 나를 잠식하면 분명, 모든 것을 접고 싶어질 것이다. 가출한 내 마음을 챙기는 시간이 시급해졌다. 나는 모든 약속을 취소한 뒤 어딘가 처박혀 있던 원뿔모양 인센스를 찾아와 다급하게 불을 붙였다.


요가 매트를 깔고 차분한 명상 음악을 틀었다.

코로 숨을 들이쉬고, 입으로 내 쉬고... 후우...

억지로나마 일궈낸 인스턴트 평화였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는 이제 매일의 명상을 통해 차분...


"쿵쿵 쿵! 쿵쿵쿵 쿵쿵!! 드르르르르륵 드륵드륵 "


어렵사리 만든 명상의 시간을 정확히 반으로 쪼개면서, 마치 계시와도 같은 그 소리가 들렸다.

새로 이사 온 윗집


"쿵쿵 쿵! 쿵쿵쿵 쿵쿵!! "


의 층간소음, 전문용어로 '발망치'라고 불리는 그것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층


"콰오캉콰오캉쾅쾅, 드르르르륵"


간 소음이구나. 과연 분쟁이 날 만 하다. 마음을 챙기기 전에 정신줄부터 챙겨야 하겠다.


나는 고민고민하다 마음의 불편을 에둘러 담은 편지와 폭신이 구름슬리퍼를 쇼핑백에 넣어 윗 층에 걸어두었다.


며칠을 조마조마했다. 이거 멱살잡이 하러 뛰쳐 내려오는 거 아닌가, 칼부림도 난다던데.  조금 참고 살면 괜찮을 걸 내가 괜히...

우려와 달리 그들은 이틀 뒤엔가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롤케이크 하나를 문고리에 걸어두었다.


이것이 이웃이구나,

실로 훈훈했지만 그뿐

층간 소음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후로는 다소 직접 적인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자아 성찰은커녕 새벽에 잠도 잘 수 없을 정도의 소음이 계속되었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은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이라며 나에게 책임을 돌렸다. 억울했으나 집에 있는 시간이 내가 상대적으로 많으니 그럴 만도 했다.

새벽에도 쿵쿵, 낮에도 드륵드륵, 밤에는 둥둥둥.

더 이상 견딜 수 없던 나는 결심했다.


 

[떠나야겠다]



자, 우습지만 이것이 실질적인 유학의 발단이다.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울려대는 그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여전히 따뜻하고 편안한 본가에 머물렀을 터이니 유학을 와 있는 지금엔 오히려 위층 집에 감사하기도 하다.


 물론 나의 결심이 단순하게 층간소음 때문만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ETS로부터 '무료 토플 시험'의 기회가 주어졌다. 내용인즉슨 '우리 지금 아이엘츠-토플 점수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중인데. 자격요건에 부합한다면 토플 무료로 치게 해 줄게? '였다. 흠... 밑져야 본전 아닌가? 그 비싼 시험을 무료로 치게 해 준다니. 그때부터 목적도 불분명한 토플 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이 공부라는 게 참 묘하다. 해야 하는 걸 분명히 아는데, 필요한 만큼의 딱 정비례로 하기가 싫어진다. [공부할 계기, 내지는 명분]이 필요했던 나는 유익한 딴짓을 시작했다. 양심상 영어는 손에서 놓으면 안 되는 것 같으니 내 성적으로 어느 정도의 학교를 갈 수 있는지 외국 대학 순위 사이트를 검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음... 나는 환경에 관심이 많고, 그중에서도 해양오염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있으니 해양학인가? Oceanology? 해양생태학이랑은 뭐가 다른 거야. 해양인문학이란 것도 있네?' 한참 파고들다가 문득 해양과 관련된 모든 전공이 '이과'임을 알아차렸다. 즉 미대출신인 나는 아예 따라잡을 수가 없는 분야인 것이다. 아무리 바다에 관심이 많은 들 그를 '학'으로 배울 때에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이건 아닌 것 같다. 그럼 연극? 공연예술학과? 영국까지 가서 다시 메쏘드 연기를 훈련할 것인가. 아니, 무대는 연극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숭고하고 귀한 자리이다. 내가 어딜 감히 그 자릴...

 

 그럼 Visual Art?

나름은 말이 된다. 최근의 포트폴리오가 공연에서 전시로 방향을 튼 지가 좀 되었고, 나도 사람'들'이어야만 성립되는 연극에서 '사람'개인이 할 수 있는 전시의 안정감에 다소 편안해진 터다. (그렇다고 해서 전시가 쉽다는 뜻은 전혀 아니고)


며칠 내리 공부보다 젯밥에 더 시간을 쏟은 나는 다섯 학교를 추려내어 지원 마감시기, 학비, 위치 등을 적어 책상머리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었다.


이상하다?? 그러고 나니 없던 책임감이 슬슬 생기기 시작했다. 성적만 괜찮게 나오면 곧 영국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꿈에서- 현실로 도움닫기 해 갑자기 이만-치 뛰어 온 것 같은, 뭔지 모를 들뜸에 심장이 벌렁벌렁 했다.


'영국엘, 간다?'


아무 목적이 없이 공짜여서 토플을 공부하던 때와

목표와 하고 싶은 일이 생긴 이때의 나는 이미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다.








우습게도

마음가짐이야 얼마나 바르고 굳세건 말건

시험운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토플을 잘 보았냐고?

완전히 망했다.

공부를 안 하고 봤던 20대 때보다도 낮은 점수였다. 이럴 수가!! 딴짓에 너무 열중한 탓인가?



목표는 나와 있는데, 이제는 내가 미달이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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