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ful Sewing class(1)
좋기만 할 리가. 대부분이 행복하고 감동적인 하루하루긴 해도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진즉부터 예상했다시피 그놈의 조별과제가 문제였다. 동서고금 나라 불문, 사람이 모여하는 일에는 당연히 부대낌이 있지 않은가.
평균 잡아 나보다 족히 10~15살씩은 어린 중국 학생들로 가득한 선택 과목. 여기서는 전공과목의 밀도를 기대하면 안되는 거였다. 모두가 실시간 번역기를 틀어두고 아이패드 화면에만 코를 박고 있다. 더러는 고국의 친구들과 채팅을 하느라 키보드가 분주하다. 교수가 강의하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중국어로 떠드는 통에 여기가 영국이란 게 실감이 안 날 때도 있다. (그리고 그것에 딱히 지적이나 화내지 않는 교수들도 문제이지 않을까... 왜 아니겠는가, 중국학생이 가장 큰 수입원일텐데). 수업에 별 관심 없는 학생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이 이미 익숙한 듯 자기 페이스대로 수업 진도를 2배속으로 빼는 교수님... 죄송하게도 내 전공과목이 이렇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사견이고 그렇지 않은 학생, 교수들이 당연히 더 많을 것이다... 아마도.
구구절절 자세히는 적지 않지만 그룹 액티비티가 매번 힘들었다. 지금까지 없던, 아니 어쩌면 있었겠지만 내가 딱히 알아차리진 못했던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여있다가 한방에
하며 빠악- 내 뒤통수를 방망이로 후려치곤 하는 일상. 머리가 댕댕댕 울리고 아픈 날이 계속 됐다. 당연히 일도 과제도 손에 안 잡혔다. 학교 밖의 무언가로 관심을 쏟아야 했다.
이럴 땐 눕는 게 답이라며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소셜 미디어를 휘릭 휘릭 올려보고 있는데 팔로우했던 문화센터에 올라온 수업 공고가 눈에 띄었다.
Mindful Sewing- 마음 챙김 바느질 클럽????
설명도 무언가 느슨하고, 사진도 너무 프로 같지 않은 적당한 퀄리티에, 딱히 힘들 것 같지 않은 무드.
오, 이거다 이거야!
- 부연설명을 하자면 나는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상당히 서툴고 무딘 편이다. 종이접기, 바느질, 만들기, 뜨개질... 이런 것에 정말이지 (이 표현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똥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왜 '이거다' 냐고? 해도 해도 너무 못하는 일이니 집중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
마침(?) 좀이 쓸어 몇 군데 구멍이 난 아끼는 스웨터가 있다. 구멍도 메꿀 겸, 마음 챙김도 할 겸 학교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다. 분명 할 일도 태산인 데다 마음도 몸도 그리 여유롭지 못했지만, 방구석에서 두통과 함께 몇 시간이라도 더 보냈다가는 뭔가 사달이 나도 날 것 같아서 부랴부랴 짐을 쌌다.
마음 챙김 바느질이라... 어떤 곳일까?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머릿속으로 상상해 본다. 그렉슨 문화센터의 분위기상 페스티브 한 분위기라기보다는 중년이상의 아주머니들이겠지? 아마 방 한 칸에 둘러앉아서 차 한잔 마시면서 주거니 받거니 그런 규방의 느낌이겠지. 그렇다고 너무들 말을 많이 시키시지 말았으면. 영어실력 뽀록나고 말이 뜸해지는 모먼트 반기지않아요…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걷는다. 한두 번 들러본 바로 동양인이라고는 본 적이 없어서 내가 들어갈 때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게 떠올랐다. 혹여라도 늦을까 봐 잰걸음을 걸어 문화센터에 들어섰다.
문화센터의 메인공간은 기본적으로 Bar의 형태다. 벽난로가 있고, 늘 음악이 크게 틀어져있고, 떠드는 커플이나 중년의 아주머니, 아저씨들로 가득한 것이 디폴트. 바깥에 있다가 갑자기 따뜻한 곳으로 들어오면서 안경도 김이 서려 앞도 안 보이는데 실내 어디선가 밴드는 연주까지 하고 있고 누가 개를 데려왔는지 개도 짖질 않나 안 그래도 떠들썩한 곳이 아주 오늘따라 난리 부르스도 아니다.
'어디지? 수업은...'
바텐더에게 물으니 저 안쪽에 안경 쓴 분이 있는 곳이란다.
설마?? 이 아비규환 속에서 마음 챙김을 한다고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우선 자리하기로 한다.
예상대로 연령대는 다소 높다.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아 조곤조곤하며 바느질을 하고 계시다. 누구 한 명이 바느질을 가르쳐 준다기보다는 서로 어느 정도 바느질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할 일을 하면서 차도 마시고, 서로 도움도 주고 그런 느낌이다. 나는 완전 초짜기 때문에 모임 주최자인 가브리엘라 (멀찍이 안경 쓴 이모)와 그녀의 친구 안토넬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두분 다 이태리의 로마가 고향이라고).
구멍 난 스웨터를 겨우겨우 메꾸며, 왜 하필이면 나는 이렇게 바느질하기도 어려운, 신축성 있는 옷을 가져왔는가, 내가 가져온 얇디얇은 실은 왜 뵈지도 않는가 자책하며 시간은 자알만 갔다. 그렉슨 센터의 코코아와 브라우니는 비건인 데다 매우 훌륭한 맛이다! 코코아와 바느질은 조화로웠고 소음에 취약한 나는 의외로 점차 이 사치로운 시간에 몰입하고 있었다.
몰입과는 별개로 나는 장장 2시간 동안 그 작은 구멍 두 개를 채 메우지 못했다. (대-단하다!)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는지 끝 맺는 시간 9시가 되기 전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일어난다.
결국 나와 진행자 가브리엘라, 안토넬라 이렇게 셋만 남았다.
"시호, 너는 오늘 여기 어떻게 온 거야?" 안토넬라가 물었다.
왜 왔더라.
"그러게요, 뭔가 집중하고 싶어서 온 것 같은데... 머리도 아팠던 거 같은데? 어, 그러고 보니 두통이 없어졌네요!"
"잘 됐네!"
두 아주머니는 나의 모친보다는 한 5-6년 정도 젊으신 느낌이다. 과한 관심도 아니고 방관하는 것도 아닌 딱 적당한 선에서 편안하고 능숙하게 나를 대해 주셨다. 아, 이 시점쯤에 나의 감상을 말하고 싶은데 할까 말까 할까 말까 망설이는데 내 맘을 눈치챈 듯 가브리엘라가 묻는다.
"시호, 오늘 Mindful Sewing 어땠어?"
말해야겠다.
"사실은... 마인드풀이라고 해서 뭔가 조용하고, 집중되고, 명상 음악 같은 거 틀어두고... 그런 분위기를 생각했거든요"
"하하하! 그럼 정말 놀랐겠네!"
"그러니까요. 처음에 와서 살짝 당황했어요. 이런 분위기에서 마음 챙김이 된다고...?"
"So there's two types of mindfulness, One: when you are go within and think- like what you said. 마음 챙김에는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거. 내면으로 내면으로 파고들 수 있게 스스로 그런 배경을 만드는 것과 "
"또 하나는요!!?"
"Don't give a damn about what's happening around you and take your time.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관심은 개나 줘버리고 너만의 시간에 집중하는 거지"
"오, 저는 두 번째 방법이 조금 더 마음에 드는데요"
"잘 찾아왔네"
그럼 그렇지. 내가 손재주는 좀 없어도 맞는 자리는 좀 찾지.
이 언니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두통? 개나 줘버리라지! 왈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