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ful Sewing class(1)
좋기만 할 리가. 대부분이 행복하고 감동적인 하루하루긴 해도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진즉부터 예상했다시피 그놈의 조별과제가 문제였다. 동서고금 나라 불문, 사람이 모여하는 일에는 당연히 부대낌이 있지 않은가.
평균 잡아 나보다 족히 10~15살씩은 어린 중국 학생들로 가득한 선택과목 [예술 경영]. 여기서는 전공과목의 밀도를 기대하면 안되는 거였다. 모두가 실시간 번역기를 틀어두고 아이패드 화면에만 코를 박고 있다. 더러는 고국의 친구들과 채팅을 하느라 키보드가 분주하다. 교수가 강의하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중국말로 떠드는 통에 여기가 영국이란 게 실감이 안 날 때도 있다. (그리고 그것에 딱히 지적이나 화내지 않는 교수들도 문제로 보이긴 한다. 왜냐면 중국학생이 가장 큰 수입원일 테니까?). 수업에 별 관심 없는 학생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이 이미 익숙한 듯 자기 페이스대로 수업 진도를 2배속으로 빼는 교수님... 미안하지만 내 전공과목이 이렇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사견이고 그렇지 않은 학생, 교수들이 당연히 더 많을 것이다... 아마도.
(나도 못하지만) 나보다도 더 영어를 못하는 23살짜리 친구와 한 조가 되었다. 예술단체를 하나 골라 그 구조와 마케팅 메서드 등을 파악해 발표하는 것이 최종이다. 이틀을 줄테니 구조를 먼저 짜오라, 그러면 내가 살을 붙이고 발표 스크립트를 만들겠다고 했다. 딱 한 시간 뒤에 누가 봐도 챗 지피티로 만든 구조를 보내왔다. 어이. 너 실력 이 정도 아닌걸 내가 뻔히 아는데 말이야...
구구절절 자세히는 적지 않지만 이 수업에서의 그룹 액티비티가 나는 매번 힘들었다. 지금까지 없던, 아니 어쩌면 있었겠지만 내가 딱히 알아차리진 못했던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여있다가 한방에
하며 빠악- 내 뒤통수를 방망이로 후려치곤 하는 일상. 머리가 댕댕댕 울리고 아픈 날이 계속 됐다. 당연히 일도 과제도 손에 안 잡혔다. 학교 밖의 무언가로 관심을 쏟아야 했다.
이럴 땐 눕는 게 답이라며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소셜 미디어를 휘릭 휘릭 올려보고 있는데 팔로우했던 문화센터에 올라온 수업 공고가 눈에 띄었다.
Mindful Sewing- 마음 챙김 바느질 클럽????
설명도 무언가 느슨하고, 사진도 너무 프로 같지 않은 적당한 퀄리티에, 딱히 힘들 것 같지 않은 무드.
오, 이거다 이거야!
- 부연설명을 하자면 나는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상당히 서툴고 무딘 편이다. 종이접기, 바느질, 만들기, 뜨개질... 이런 것에 정말이지 (이 표현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똥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왜 '이거다' 냐고? 해도 해도 너무 못하는 일이니 집중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
마침(?) 좀이 쓸어 몇 군데 구멍이 난 아끼는 스웨터가 있다. 구멍도 메꿀 겸, 마음 챙김도 할 겸 학교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다. 분명 할 일도 태산인 데다 마음도 몸도 그리 여유롭지 못했지만, 방구석에서 두통과 함께 몇 시간이라도 더 보냈다가는 뭔가 사달이 나도 날 것 같아서 부랴부랴 짐을 쌌다.
마음 챙김 바느질이라... 어떤 곳일까?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머릿속으로 상상해 본다. 그렉슨 문화센터의 분위기상 젊고 페스티브 한 분위기라기보다는 중년이상의 아주머니들이겠지? 아마 방 한 칸에 둘러앉아서 차 한잔 마시면서 주거니 받거니 그런 규방의 느낌이겠지. 그렇다고 너무들 말을 많이 시키시지 말았으면. 영어실력 뽀록나고 말이 뜸해지는 모먼트 싫어…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걷는다. 한두 번 들러본 바로 동양인이라고는 본 적이 없어서 내가 들어갈 때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게 떠올랐다. 혹여라도 늦을까 봐 잰걸음을 걸어 문화센터에 들어섰다.
문화센터의 메인공간은 기본적으로 Bar의 형태다. 벽난로가 있고, 늘 음악이 크게 틀어져있고, 떠드는 커플이나 중년의 아주머니, 아저씨들로 가득한 것이 디폴트. 바깥에 있다가 갑자기 따뜻한 곳으로 들어오면서 안경도 김이 서려 앞도 안 보이는데 실내 어디선가 밴드는 연주까지 하고 있고 누가 개를 데려왔는지 개도 짖질 않나 안 그래도 떠들썩한 곳이 아주 오늘따라 난리 부르스도 아니다.
'어디지? 수업은...'
바텐더에게 물으니 저 안쪽에 안경 쓴 분이 있는 곳이란다.
설마?? 이 아비규환 속에서 마음 챙김을 한다고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우선 자리하기로 한다.
예상대로 연령대는 다소 높다.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아 조곤조곤하며 바느질을 하고 계시다. 누구 한 명이 바느질을 가르쳐 준다기보다는 서로 어느 정도 바느질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할 일을 하면서 차도 마시고, 서로 도움도 주고 그런 느낌이다. 나는 완전 초짜기 때문에 모임 주최자인 가브리엘라 (멀찍이 안경 쓴 이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가브리엘라는 이태리의 로마가 고향이라고).
구멍 난 스웨터를 겨우겨우 메꾸며, 왜 하필이면 나는 이렇게 바느질하기도 어려운 신축성 있는 옷을 가져왔는가, 내가 가져온 실은 왜 뵈지도 않는가 자책하며 시간은 자알만 갔다. 그렉슨 센터의 코코아와 브라우니는 비건인 데다 매우 훌륭한 맛이다! 코코아와 바느질은 조화로웠고 소음에 취약한 나는 의외로 점차 이 사치로운 시간에 몰입하고 있었다.
몰입과는 별개로 나는 장장 2시간 동안 그
작은 구멍 두 개를 채 메우지 못했다. (대-단하다!)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는지 끝 맺는 시간 9시가 되기 전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일어난다.
결국 나와 진행자 가브리엘라, 안토넬라 이렇게 셋만 남았다.
"시호, 너는 오늘 여기 어떻게 온 거야?" 안토넬라가 물었다.
왜 왔더라.
"그러게요, 뭔가 집중하고 싶어서 온 것 같은데... 머리도 아팠던 거 같은데? 어, 그러고 보니 두통이 없어졌네요!"
"잘 됐네!"
두 아주머니는 나의 모친보다는 한 5-6년 정도 젊으신 느낌이다. 과한 관심도 아니고 방관하는 것도 아닌 딱 적당한 선에서 편안하고 능숙하게 나를 대해 주셨다. 아, 이 시점쯤에 나의 감상을 말하고 싶은데 할까 말까 할까 말까 망설이는데 내 맘을 눈치챈 듯 가브리엘라가 묻는다.
"시호, 오늘 Mindful Sewing 어땠어?"
말해야겠다.
"사실은... 마인드풀이라고 해서 뭔가 조용하고, 집중되고, 명상 음악 같은 거 틀어두고... 그런 분위기를 생각했거든요"
"하하하! 그럼 정말 놀랐겠네!"
"그러니까요. 처음에 와서 살짝 당황했어요. 이런 분위기에서 마음 챙김이 된다고...?"
"So there's two types of mindfulness, One: when you are go within and think- like what you said. 마음 챙김에는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거. 내면으로 내면으로 파고들 수 있게 스스로 그런 배경을 만드는 것과 "
"또 하나는요!!?"
"Don't give a damn about what's happening around you and take your time.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관심은 개나 줘버리고 너만의 시간에 집중하는 거지"
"오, 저는 두 번째 방법이 조금 더 마음에 드는데요"
"잘 찾아왔네"
그럼 그렇지. 내가 손재주는 좀 없어도 맞는 자리는 좀 찾지.
이 언니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두통? 개나 줘버리라지! 왈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