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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젖은 인간

<Disabled theatre> 빈틈에서 느꼈던 충만감에 대하여

by Siho

나는 감정전이가 퍽 빠르다. 누가 어쨌다더라 하면 어떡해-하고 울고, 감격스러운 사연이 라디오에서 나오면 코끝이 벌개짐시롱 어느새 콧물 닦을 휴지를 찾아 헤메이는 인간.


그러고 보니 작년에 친구 결혼식 청첩장을 받고도 울었고 (결혼식은 왜 갈 때마다 나를 울리는 건지... 결혼식장에 뭔 가루라도 뿌리나) 원래도 그러한데 영국에 오고 나서는 유달리 눈물이 더 많아졌다. 하루 걸러 매일을 감동받아서, 행복해서, 때로는 답답해서 울면서 내가 왜 이렇게 자주 눈물을 흘리는지, 왜 이렇게 감성적이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계속 캐물었다. 마음 한켠 어딘가에 추스르지 못했던 감정이, 사건이 분명 있을 텐데.


처음 떠오른 원인은 꼬낭이. 이곳에 오기 불과 일주일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나의 가족인 고양이다. 하필 행사 기간 중에 그렇게 가 버릴 줄이야... 하루에 7,000명이 오가는 행사장을 지키면서 이리저리 뛰고 관리하느라 제대로 슬퍼할 새조차 없었다. 행사가 끝난 뒤엔 짐을 싸고, 미뤄둔 사람들을 만나느라 애도는 또 미뤄졌고 런던행 비행기에서 사진들을 정리하면서야 그 녀석의 부재를 새삼스레 느끼며 절절히 울었다. '14년을 함께 살았는데. 이제는, 이제는 없구나'. 그렇게 울다가도 기내식이 나오면 거절하지도 않고 받아먹는 내가 싫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로 '치킨 플리즈'를 외친 내 얼굴은 당최 무슨 모양이었을까.


가족과의 긴 헤어짐도 또 다른 원인일터다. 울기 시작하면 연달아 봇물이 터질 것을 알기에 나는 부모님 앞에서 굳이 꿋꿋했다. "1년인데 뭐"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늘 비비고 살던 가족들과 떨어지는 일이 어떻게 쉬울 수 있을까. 나는 슈트케이스를 끌고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애써 태연했다. 의연해야 했다.


이만하면 울어도 되나? 적고 보니 어떤 것도 그냥 변명 이다.

사실 몇 날 며칠을 더 지내보며 내가 발견한 정말의 이유는 <울어도 되기 때문> 일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어릴 적부터 '울지 마'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울지 마, 뚝"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시작된 거야 도대체?? 아니, 왜 울지 말라고 하는 거야? 생각해 보니 웃지 말라는 말만큼이나 폭력적이지 않은가. 울거나 웃거나 내 감정인데 말이지. (물론 때와 장소를 가려야겠지)


여기선 우는 것이 자연스럽다. 바보같이 콧구멍이 벌름거리며 울어도 다들 그냥 기다려준다.

"It's OK to cry"라고 말하면서. 그 말을 들으면 더 울어버린다. 쏟아내듯이. 그러다가 뚝 멈춘다.




전공모듈인 'Performance for Society, Poilitics and The Environment' 수업의 일환으로 장애인극단의 연극을 단체 관람하는 날이었다. 수업의 연장선이다 보니 뭔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극장으로 향했다.


공연은 시작도 전부터 삐걱댔다. 빔을 틀어야 하는 배우는 계속 벽 모서리들을 찾아 숨으려 했고, 스타트를 끊는- 휠체어를 탄 배우는 너무 긴장해서 첫 대사를 잊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심각한 공연의 퀄리티에 (부끄럽지만) 한숨을 푹 쉬며 핸드폰을 꺼냈다. 아직도 한 시간이 남았다. 어떻게 견디나.

아니다, 그래도 참아보자. 6개월을 넘게 연습했다는데 그 노력이 대단하지 않은가.


이 연극은 대사극이라기보다는 상황극에 가깝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회극이라고 해야 할까?

막 마다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이러한 상황에 맞닥뜨린 경험이 있는지, 나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다르게 고칠 수 있었는지를 관객들에게 질문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은 버스에서 휠체어 탄 사람이 내리는 상황이었다.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버스기사(배우)의 얼굴을 보니 여기도 저런 대우가 있긴 있구나 싶다.


그리고는 기차역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표도 있는데 믿지 않고 기차를 안 태운 젊은 역무원들 등 있을 법한 상황들이 그려졌다. 관객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고 때로는 역할극의 일부가 되어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처를 재연해 냈다.

이를 테면 버스 아저씨에게 다가가 "그렇게 대응하면 안 되지 않아요? 좀 더 친절하셔야죠" 라며 항의하고, 휠체어 탄 사람을 도와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예상가능한 범위였다.


이후에도 몇 번의 관객- 배우 바꿈이 일어났는데, 이 장의 상황극이 끝나고 연출이자 감독인 Cami(우리 교수님)가 배우들에게 질문했다. "어땠어요? 관객들의 솔루션이 마음에 들었나요?"


말과 행동이 다소 서툰, 아마도 지체장애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배우가 더듬더듬 말했다.

"도움, 이... 필, 요해... 요?라고 먼저.. 우리... 에게 물, 어, 봐주면... 좋,좋을... 것 같, 아..... 요."

그러자 다른 배우들도 고개를 주억거린다.

"맞아요. 때로는 우리가 그냥 해결할 수도 있고, 괜찮은 상황인데도 굳이 그렇게 나서면 더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도 있어요"

"의견을 물어봐 주면 좋겠어요"


아, 그렇구나. 이건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요청하지 않은 도움은 분명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일 수 있겠구나..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을 노트에 적었다.


다음 막이 시작되기 전, 이들의 거칠고 날 것인 몸짓(퍼포먼스)이 시작되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상의 자연의 이미지들과 이들의 몸짓이 함께 맵핑되어 어우러졌다.


휠체어를 탄 배우가 바닥에 8자를 그리며 일정하게, 때로는 변 박자로 바퀴를 굴린다.

다운증후군인 20대 청년은 무대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관객들과 시선을 맞추어 천천히 걷는다. 그러다가 한 관객과 눈을 맞추고 가만히 손을 잡아보더니 저리로 사라진다. 호르몬 문제로 엄청나게 뚱뚱한 배우는 마치 나비같이, 가벼운 곡선을 타고 스스로의 몸짓에 취해 마치 발레리나라도 된 듯 움직인다. 그 모습은 가히 우스꽝스러울, 그래서 웃음이 픽 터질, 줄로 알았는데 나에게서 터진 건 웃음이 아니었다.

갑자기 눈앞이 부옇게 흐려진다.

뭐야. 어우 씨, 나 또 우는 거야 지금?


볼을 만져보니 눈물이 분명 흐르고 있었는데

나는 내가 울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왜?

머릿속에 어떤 목소리가 맴돌았다

'아름답잖아'


도대체 뭐가 아름답다는 거야?

어떤 것도 박자에 맞지 않는 저 동작이?

가르쳐 준 동선을 모두 까먹고 제멋대로 인 것 같은 저 움직임들이?

아니면

관객들을 응시하다 못해, 제 감정에 겨워 다가가선 관객의 손까지 꼬옥 잡는 저 소년의 치기가?

이 장애인 배우들의 어디가...


어디가


어디가


안 아름다운 거야?


어느 것이, 이 순간 장애인 거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장애물은 나에게 있었다.


모든 것이 정확해야 한다는 강박,

틀리면 안 돼, 가르쳐 준 대로, 박자에 맞추어

완벽하게. 틀림없이. 정확하고, 적확하게.

그래야 뭘 받아?

칭찬, 인정, 박수, 명예, 상, 돈...


씨앙

그게 다 뭐야.

땀에 찬 저들은 자신의 표정에, 손짓에, 춤사위에 충분히 행복한데. 충만한데.

너는 무엇이 그렇게 부족한 거야? 너는.

무엇이 부족한 거야?

왜 완벽하지 못해 안달인 거야?

완벽해야 하는 이유가 뭐야?


관객을 한 사람씩 응시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다운증후군 청년이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더니 머리를 맞대었다

하지 마.

하지 마.

정말 멈출 수가 없게 되잖아.

그의 땀방울, 뜨거운 이마, 그리고 두툼하고 서툰 어떠한 마음 같은 것이

내 찡그린 이마 위에 턱 놓여있었다.


나는 이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줄줄줄 울었다.

휴지도 없어서 눈물인지 콧물인지를 닦지도 못하고

계속 주르르 주르르 흘렸다.


그것은 나의 지난 삶에 대한,

강박적인 생각과 그에 따르지 못하는 행동을 수없이 채찍질하고 검열하고

그 잣대를 그대로 남에게 씌운, 그리고 재단한.

365일을 매일 같이 그렇게 스스로를 해한 것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었다.


청년은 머리를 떼고 부드럽게 웃더니 제 자리로 돌아갔다. 자연스럽게 다음 막이 올랐다.


한 없이 부자유한 나에 비해

그들은 너무나 자유로웠다.

그것은 분명,

내가 가져보지 못한 자유였다.

그렇게 주룩주룩 울다 보니 어느덧 공연은 끝나있었다.

배우들은 돌면서 우리에게 해바라기 꽃을 하나씩 건넸다. 공연에 와줘서 고맙다면서.

아니죠. 내가 감사해야 하는 거죠. 그건 제가 할 말이에요.


우리는 배우들에게 우렁찬 박수를 보내고는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Cami가 말했다.

"돌아가며 소감을 이야기해 볼까요? 다들 어땠는지 궁금해요"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분명 그만 울고 싶었는데, 더 나올 눈물도 없었는데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허덕허덕 꺼이꺼이 하면서

오늘 당신들의 공연을 만나서, 당신들을 만나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내가 얼마나 완벽이라는 틀에 갇혀있었는지,

왜 그렇게나 무겁고 불필요한 줄자를 인생 내내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왜 고해성사를 지금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계속 그렇게 억억 댔다.


Cami 조용히 나를 토닥였다.

"지금 네 마음 너무 잘 알아. 그때부터 내가 이들의 연출을 맡기 시작한 거거든. 딱 그 순간을 나도 느꼈어. 나에게는 없는, 이들에게는 있는 선물 같은 어떤 것을 계속 보고 싶어서"


해바라기를 팔랑이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오늘 있었던 것인지

이놈의 울보는 도대체 왜 이렇게 주책인 지 또 울컥하며 자책하려다

아니다

나 지금 실은 굉장히 행복해서 우는 거 아니야?


랭커스터에 내가 오지 않았다면 없었을 일이잖아. 못 만났을 이들이잖아.


나 지금 그런 거야. 무지 행복한 거야.

울어도 돼.

울자.


Hey, It's OK to c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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