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ful Sewing class(2) 맘속에 작달막한 배움 한그루
이따금 타인으로부터 일반적이지 못한 나의 방향에 대한, 더 구체적으로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에 대한,
혹은 남들이 다 가는 길에 들어서지 않는 것에 대한 질문(을 가장한 질타)을 받았다.
예술을 하는 주변인들의 케이스를 보면 가족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케이스가 그렇게 많았다던데
나는 오히려 반대다. 가족은 내가 무얼 하든지 간에 100, 아니 200% 이상의 사랑과 응원을 언제나 보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축복받은 삶이라는 것을 또 잊고 살았네. 고마워요 사랑하는 엄마 아빠, 동생님아!)
하지만 여기서 가족의 단위를 조금 넓혀 '친척'으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해마다 설날과 추석이 그렇게 싫었더랬다. 전날부터 밤을 새우며 부쳐야 하는 동태 전 때문에도, 어딘가 불편하고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남성 전원 거실 대기, 여성 전원 부엌데기 (라임 좋고)] 때문에도 아니고(아예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그 수많은 '말' 들 때문이었다.
너는 어떻게, 남자친구는 있니?
왜 없니?
아직도 연극하니?
취직은 안 해?
결혼해야지 이제
손자 낳아야지 (손녀가 아님에 주목)
지금도 늦었다 등등.
그런데 이 언어폭력은 비단 어른들에게서만 나온 것은 아니고 같은 항렬의 친척에게서도 종종 촉발되었으니... 그전까지는 한 번도 그러지 않다가 자신이 결혼하고 나자 '너도 이제 결혼할 나이 지나지 않았냐'며 은근슬쩍 압박해 오는 데다가 외모 평가는 또 왜 그리 심한 걸까?
'또 살쪘네' '눈 아래는 그게 뭐야? 지방이야?' 등등...
구체적으로 논하진 않겠지만 뭐, 그렇다. 이런 정도야 순한 맛이라고 할 많은 여성 동지들이 보이고 들린다. 하아.
그런데 이 외모 지상주의라는 것이. 겉모습으로 누구를 판단하고, 판단되는 개념이 너무 우리에게 오래전부터 뿌리 박혀있는 터라 그게 참 별로인 개념임을 알아도 나 또한 어디 가서 그러고 있을 것임에 할 말은 없다.
영국에 와서 어느 순간 실감했다. 여기 친구들은 다들 키도 크고 머리도 작고 상당수가 금발에, 속눈썹도 길디 길고 콧날도 오뚝... 마치 모든 것이 우성인자 같달까?? 그 옆에 서면 얼굴도 납작하고 키도 작고, 다리도 짧은 나는 꼭 열성인자를 다 집합시킨 못난이 감자 같았다. 왜 이렇게 다르게 생겨 먹은 거야? 때문에 같이 서 있기도, 사진 찍기도 싫었던 적이 많다. 그들과 다르게 생긴 나는 늘 원시인처럼 보여서... 쳇.
변기에 앉아도 발에 땅이 닿지 않고 둥둥 떠있고...(힘을 못 받는단 말이다!)
하루는 아시아 핏이라는 바지를 샀는데도 도무지 바닥에 끌려서는.. 장난해?!!!! 너희가 말하는 아시아핏은 아시아 모델 기준이냐!
비싸서 수선도 못하겠고 바짓단을 대충 접어 입고 다니는 내 모습이 더 보기 싫다. 에라.
수요일.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Mindful sewing을 가면서도 마음은 삐죽빼죽, 평온하지가 못했다. 한껏 접어 올려 두툼해진 바짓단을 보고 있으려니 복장이 터져 원.
저번에 겨우겨우 구멍 하나를 메운 스웨터를 오늘도 들고 왔다. 학교에서 반짝이는 녹색 실을 구한 김에 반짝이는 트리를 스웨터에 수놓고 싶었다. 아이고... 실도 너무 얇고, 실내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고, 신축성이 엄청난 스웨터는 내가 열불이 나서 잡아당길 때마다 이쪽저쪽 울고 있었다. 울지 말라고!!! 네가 나냐고! (?)
짜부라지고 잔뜩 우그러든 나무 자수를 보고 있으려니 꼭 나 같았다. 못생겼는데 말도 참 안 듣고. 지멋대로... 짜증이 또 울컥 났다.
내가 열을 받아 가쁜 숨을 씩씩대자 옆에서 가브리엘라가 내 작업을 안경 너머로 힐끗 보며 물었다.
"시호. 잘 안 돼?"
"네. 거지 같아요. 이쪽으로 당기면 이게 울고, 저쪽으로 당기면 실이 자꾸 엉키질 않나..."
"빠르게 하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집중해 봐. 너무 세게 당기면서 촘촘히 하지 않아도 돼. 스웨터가 잘 늘어나니까 느슨하게 해도 돼.
"잘하고 싶으니까 그렇죠. 뭔가 바짝 당겨야 탄탄하고 제대로 되는데. 에이씨, 그냥 다 뜯어 버리고 새로 하고 싶어요"
나는 괜 시 실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아냐, 옷감이 얇아서 지금 다 뜯으면 옷이 상할 것 같으니까, 아래 나무는 그대로 마무리해도 될 것 같아. 그리고 위에 또 다른 나무를 하나 더 시작하자"
"휴... 힘드네요. 이거"
"실 하고 누가 이기나 싸우지 말고 그냥 천천히 한 땀 한 땀 해봐. 자꾸만 계속 확인하지 말고 그냥 가던 길 계속 가자... 하는 느낌이면 돼. "
가던 길 계속 가자.라는 말이 갑자기 힘이 됐다.
"네!"
나는 서둘러 아래 나무를 마무리하고 위쪽 나무를 시작했다.
아까처럼 한 번 할 때마다 바짝 당기면서 확인하지 않고 그냥 느슨하고 편안하게, 앞으로- 뒤로 오가며 이 녀석과 티키타카 대화를 했다. 그러다 보니 나무가 또 하나 생겼다.
"오! 벌써 나무가 두 개가 되었네?" 가브리엘라가 박수를 쳐 줬다.
"두 개가 너무 달라요. 그렇죠"
"하나는 네가 편안한 마음으로 꿰매었으니까. 너도 느껴지지?"
"네..."
좀 더 예쁘게 나무들을 스웨터에 심고 싶었는데. 삐뚜룸하고 성글게 자리 잡은 처음 나무가 참 못나보였다.
"뭔가 마음에 안 들어요. 나무들이 바르게 딱딱 세모 모양으로 서 있어야 예쁜데"
가브리엘라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웃었다.
"하하하. 시호야.
나무는 어떤 녀석도 똑같은 생김새로 자라지 않는 걸"
으이…
핑글
그리고 또 글썽
누구도 꼭 같은 생김새가 아닌 우리들, 그리고
거대한 우주 안에서
한 땀 한 땀 만들어진
멋진, 그리고
유니크 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