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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스른 Interview

명파에서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

by Siho

10.02

류 작가는 본디 아카이버로서 아트케이션에 참여했기 때문에, 작가들의 작업(포트폴리오) 인터뷰와 더불어 1:1 인터뷰를 하는 것이 과업이었다. 프로젝트 중간인 10월 2일 (추석연휴 기간), 명파에서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 팀원인 류 작가가 나를 인터뷰한 것을 옮긴다. 시간 순으로 하자면 [철쭉할머니] 편인 10월 1일 다음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글의 흐름이 끊기는 것을 방지하고자 따로 뒤쪽에 싣는다.



1. 안녕하세요, 박시호작가님. 어떤 작업을 하는 작가인지 간단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몸과 호흡, 그리고 감각을 매개로 인간과 자연, 특히 바다의 관계를 탐구하는 예술가입니다. 퍼포먼스, 영상, 설치 작업을 중심으로, 우리가 잊고 지내는 ‘느림의 감각’과 생태와의 공명을 회복하는 작업을 만듭니다. 제 작업은 늘 “서로의 리듬을 듣는 것”에서 출발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행동과 자연의 시간, 사회적 관계가 서로 맞닿는 순간을 포착하려 합니다.



2. 최근에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셨죠. 포트폴리오 설명 때 “영국에서 외곽 지역에서 지냈었기에 한국에 와서도 서울의 부산함에 바로 적응하고 싶지 않다, 일종의 ‘범퍼’가 필요하다” 고 하셨던 게 기억나요. 실제 명파 생활은 어떠신가요? 2주 안에 결과물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 꽤 분주했잖아요. 애초 생각했던 여유로운 생활과는 좀 달랐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 생활하면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자신만의 다짐 같은 것도 있었을까요?

쉬우면서 어려운 질문이네요. 고성이 느린 것은 맞지만, 일정상 압박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니까요. 주최 측에서 정식 전시나 공연 수준의 완벽함을 요구한 건 아니지만, 결국 ‘어디까지 완성도를 높일 것인가’는 저 스스로 정하는 기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나만의 다짐... 다짐이라고 한다면 '바쁘지 말자, 스스로를 보채지 말자' 같은 생각정도를 마음에 품고 왔던 것 같아요. 서울의 속도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무서워서 아트케이션에 지원 한 만큼,


처음엔 ‘무언가 완벽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금세 그 다짐이 바뀌었죠.

명파에서는 모든 것이 사람의 속도대로 움직였어요. 누군가의 리듬에 맞춰 기다려야 했고, 그 기다림 속에서 작업이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완벽함보다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게 이번 체류의 가장 큰 배움이었습니다.



3. 옆에서 지켜보니 다른 사람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해도 시호님은 만족하시지 않을 것 같긴 해요. 평소 본인을 일 중독자, 완벽주의자라고 하셨잖아요. 이곳에서도 자신을 꽤 몰아붙이고 계신 것 같은데요?

저는 이번에 고성 생활을 스스로 ‘훈련’이라고 정의했어요. 제 완벽주의 성향은 일할 때 격하게 발휘되거든요. ‘더 잘해야 해, 더 잘 보여야 해, 모두가 이해했으면 좋겠어.’ 이런 수많은 욕망의 레이어가 있죠. 하지만 이곳에서는 매일매일 깨닫습니다. 그 모든 걸 다 이룰 수는 없다는 걸요.


이를테면 메뉴 하나를 개발해서 우리끼리 완벽하다고 결론 내도, 막상 어르신의 건강에는 안 좋을 수도 있고, 입맛에 안 맞으실 수도 있잖아요. 이런 변수들을 마주하면서 애초에 세웠던 제 기준점들이 계속 조정되고 있어요.

‘나는 내려놓는 걸 참 어려워하는 사람이구나’라를 느끼면서, 그런 것들을 조율하는 걸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엔 예술가적인 에고가 더 발현됐다면 지금은 반대로 이곳에 계신 분들의 행복이나 그분들과의 즐거운 순간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네, 그런 훈련…. 아니, 훈련이라기보다는 연습 과정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정말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훈련 장소에 와 있다고 생각해요.


4. 훈련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에 와 있고, 수행에 적합한 사람을 만나…. 이를테면 저처럼 이렇게 덜렁거리는 사람을 만나 화를 참는 연습과 수행을 하고 계시는군요?

거의 명상에 가까운 수행 중이죠. 감사합니다. (웃음) 사실은 조율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일해보는 사람과 모든 게 딱딱 맞는다면 그게 거짓말이겠죠. 서로 예민할 수 있는 예술가들이 만나 합을 맞춰가는 과정 자체가 제게는 필요한 단계였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그릇이 작다고 느낀 적도 많았지만, 그 덕분에 협업의 묘미를 알아가고 있어요.


또 협업뿐만 아니라 명파 생활 자체가 변수의 연속이잖아요. 저는 계획형 인간이라 처음엔 예고 없는 일정들이 불편했어요. 내 시간을 침범당하는 느낌이었죠. 즉흥적인 일, 일례로 이장님 댁에 고추 따러 간 적이 있는데, 그런 자리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들은 미리 약속을 잡고 듣는 이야기보다는 아무래도 자연스럽잖아요. 새로운 사람을 그 자리에서 알게 되기도 하고요. 도시처럼 시스템으로 척하면 척, 해결된다기보다는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점-점-점으로 이어져 있으니까, ‘그런 걸 못 찾겠더라고요.’ 하면 ‘누구네 몇째가 그거 하잖아.’ 말씀하시죠. 그러면서 연결되고 해결돼요. 계속해서 이런 변수에 대처해 나가는 능력을 배우는 게 이번 생활의 핵심인 것 같아요.


5. 결국 명파 생활이 예상과는 달랐지만, 완벽주의자 성향을 조금 내려놓고, ‘사람’들을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된 거네요. 그렇다면 오기 전에 상상했던 명파와 실제 겪어본 명파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랐나요?

저는 예술가들이 주도하고 마을 분들은 수동적일 거라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생각했던 마인드풀 이팅(Mindful eating), 그러니까 마음 챙김 식사 - 음식의 재료를 음미하면서 명상하듯 먹는 것- 를 제 딴에는 ‘센세이션 하다, 마을 분들과 작가들에게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일 것이다’라고 자부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이 분들은 이미 삶 자체가 ‘마인드풀 이팅’ 이더라고요. 직접 씨를 뿌리고 기른 작물을 수확해서 요리해 드시잖아요. 생명을 돌보는 과정이 이미 명상이고, 내 자식 같은 농작물을 드시는 게 마음 챙김 식사였던 거죠. 도시에서 온 제가 굳이 이름을 붙여 가며 가르쳐 드릴 필요가 없었어요. 볕 좋은 날 멍하니 앉아 계시거나 지나가는 사람과 담소 나누는 모습도, 우리가 동경하는 ‘느린 삶’ 그 자체였고요. 제 프로젝트가 너무 제 관점에만 갇혀 있었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작가님들과는 소소하게 진행하되, 마을 분들과는 조금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6. 그럼 이번에 아트케이션 페스타에서 선보일 작업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에 선보일 작품은 유선준 작가와 함께한 참여형 퍼포먼스〈안에 계세요?〉입니다.


과정은 처음 저와 선준 작가님이 어르신들께 초대받아서 맛있는 걸 사 들고 간 날부터 시작합니다. 저희가 싸간 음식도 충분히 많았거든요. 그런데도 계속 냉장고에서 열무김치니, 오이김치니, 백김치니, 반찬이니 계속 꺼내주셨어요. 우리는 바닥에 상을 펴놓고 앉아 있는데, 한 번도 앉으실 새가 없이 계속 따뜻한 밥 꺼내고, 국수를 말고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 만난 누군가에게 베푸는 이 마음은 뭘까?’ 하는 의문과 감동이 동시에 밀려왔어요. 이 환대에 우리 방식대로 보답하고 싶었죠.


마침 선준 작가님이 핸드밀로 커피를 내려 나누는 걸 좋아하시잖아요. 매번 새로 물을 받아 끓이고 - 물 끓이는 포트가 크지도 않아서 여러 명 커피를 주려면 - 똑같은 일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데, 그것을 신나게 하시는 모습을 보니 그 또한 환대의 모습으로 보이더라고요. 또 어르신들이 식후에 꼭 믹스커피를 드시는 걸 봤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밥을 대접받은 우리는 커피를 대접해 드리자.’ 어르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난 재료들—밤, 대추 같은 것—을 이용해 특별한 커피(라테)를 만들어 드리는 것으로 ‘보은(報恩)’을 하자는 거죠.


구체적으로는 - 밤은 씻어서 찌고 속을 파내어 페이스트화 해서 아몬드유와 섞어 밤 우유를 만들고 / 옥수수를 끓여 만든 시럽과 우유, 에스프레소를 섞고 옥수수 생크림을 올린 옥수수 라테, 그리고 대추를 씻어 씨를 제거한 후 물을 넣어 졸인 대추잼 등을 세트로 만들었어요.


때 마침 선준 작가님도 ‘은혜를 갚고 싶다’는 마음을 프로젝트로 만들려는 생각을 품고 계셨기에 그렇게 급속도로(!) 콜라보가 성립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7. 맞아요. 저는 단순히 어르신들이 드시는 스테비아 커피를 사다 드릴까 했는데, 그건 ‘예술’일까? 하는 의문은 있었죠. 그래서 탄생한 메뉴가 범상치 않은데요.

그냥 커피 믹스를 사다 드리는 건 ‘주고받기’에 불과하잖아요. 보은의 형태야 다양할 테지만 저는 이곳 고성에서만 가능한, 그리고 ‘어르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키워내신 생명들- 매일 보는 작물, 과일 같은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신비로운 것이다, 재미있는 것이다, 아름답고 귀한 것이다’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고요.

어르신들은 “뭐 볼 게 있다고 젊은 사람들이 여까지 왔나” 하시지만, 발에 차이는 그 밤과 대추가 더해져서 늘 드시던 커피가 새롭게 변신하는 경험을 드리고 싶었어요. 보은의 커피가 되는 거죠.


전체 프로젝트의 이름은 ‘안에 계세요?’로 정했어요. 우리가 항상 찾아가면 노크를 하면서 ‘어르신, 안에 계세요?’ 하고 말하는 것부터 관계가 시작되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들어가면 또 어르신들께 환대를 받죠. 요구르트든, 물 한 컵이든, 뭐든 내어 주시려고 하는 그런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이곳의 작물을 사용해 저희가 만든 라테인 거죠.

8. 제가 시호님한테 감동했던 순간들이 있어요. 저야 그냥 할머니께 당뇨가 있으니까, 알룰로스면 되겠지. 단순하게 거기까지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시호님은 크림이 원유가 100% 인지, 유화제가 들어갔는지, 시럽 같은 거를 써야 하면 여기에 뭐 안 좋은 향신료라든지 색소가 들어갔는지. 할머니들이 드시면 소화는 잘될지. 정말 꼼꼼하게 살펴보시더라고요.

전부는 아니지만 제가 옆에서 본 과정들도 참 특이했고요. 그러니까 고행에 가까울 정도로 굳이 줍거나 채집해서, 쪄서, 파내고 다지고, 시럽을 넣고 끓여 가지고, 그걸로 정성스레 음료를 만들잖아요.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재료를 시장에서 살 수도 있고, 시판 시럽 같은 거만 사용해서 만들 수도 있잖아요.

하다 보니 수행 같긴 했어요(웃음). 하지만 저희가 받은 밤들이 마트에서 온 게 아니잖아요. 할머니들이 직접 나무를 털고, 가시에 찔러가며 까신 밤이죠. 그 수고로움 자체가 숭고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고행의 결과물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어 보답할 때엔, 거기엔 못 미쳐도 중간 정도의 정성은 보여야 맞는 게 아닌가 싶어 시판 제품으로 대충 만들 수는 없었죠.

‘할머니들이 키우시는, 모아주신 그 밤을 가지고 이렇게 맛있는 음료가 탄생했어요’, ‘ 할머니, 여기 할머니 댁에서 따가라고 하신 대추, 제가 따다 말려서 이렇게 고았더니 이런 모양이 됐어요. 이렇게 달콤해졌어요.’라고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실제로 저희가 만든 밤 우유를 들고 갔을 때 할머니께서 ‘’ 네가 즐거우면 나도 즐겁지, 네가 맛있으면 나도 맛있지’라고 하시면서 다시 우리에게 또 나눠 주셨잖아요. 보답을 하러 갔는데 오히려 더 큰 마음을 받고 돌아오는 느낌. 그런 게 좀 마음이 찡한 포인트였어요.


9. 방문에 대해 말씀하시니 생각났는데 시호님을 보면 가끔 신기한 게, 감정에 푹 빠져 계시다가도 갑자기 ‘지금 녹음해 주세요’. ‘이거 찍어주세요.’ 하는 수신호를 보내실 때가 있어요, 분명 시호님도 저와 같이 상황에 몰입해 계셨단 말이죠? 그러다가 필요한 것을 바로 요청하시는, 몰입과 기록을 오가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이 사람은 기획자적인 마인드셋으로 이 모든 것을 짜놓고 진행을 하는가? 궁금하더라고요.

이건 그냥 저의 방식이고, 이 방식이 꼭 옳다고 할 순 없어요. 그렇지만 오늘 방문 + 촬영이 예정되어 있다 하면 저는 기록되었으면 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미리 구상하는 건 있어요. 100 중의 80%은 당연히 할머니와의 대화와 상황에 진심으로 몰입하지요, 하지만 어쨌든 할머니와 즐겁고 행복한 와중에도 머릿속 한편에서 20%가 ‘여기서 이 순간들은 기록해야 돼.’라고 작동하는 거죠.

물론 딜레마는 늘 있죠. 이 행복한 순간에 카메라를 들이대서 바이브를 망쳐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러면 우리만 좋고 끝나는 거잖아요. 무슨 마음들이 오갔는지, 할머님들이 과연 어떻게 이걸 받아들여주셨는지, 어떤 표정이셨는지가 우리의 ‘말’로만 남는 거잖아요. 제삼자에게 이 감동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순간은 기록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후에 그 기록을 보는 사람들도 ‘아, 행복하셨었구나’ ‘아, 무언가 찡한 순간이었겠다’ 하고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10. 그건 분명 결과물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머리로 알긴 하는데… 저는 몰입된 상황에서 기록까지 동시에 생각하기는 힘들더라고요. 애초에 이게 타고나는 건가요? 아니면 훈련인가요?

음… 이건 굉장히 명확한 어떤 시점이 있어요. 저의 N잡 중에 ‘심리극 지도사’라는 직업이 있는데, 상담은 아니고요, 대부분 그룹 즉흥극으로 아프거나 힘들었던 경험을 이끌어내서 다시 돌보고 치유하는 작업이에요.


그 과정을 수료할 때, 매번 사람들의 가장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었어요. 예를 들자면 아버지가 나를 버렸고, 어머니에게는 매일 맞고 자랐으며… 이런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계속 듣는데 처음에는 거의 매일 울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감정 전이가 조금 빠른 편이다 보니 매번 너무 슬프고 아팠죠. 그런데 실전에서 심리극을 진행하는 입장이 되면 공감은 하되 내 감정을 내비쳐서는 안 되는 거예요. 저는 그게 힘들었어요. 365일, 언제나 탁 치면 눈물이 나올 준비가 되어 있는 자타공인 ‘출렁이’가 나인데 참아야 했어요.


그 아픈 순간들을 이야기로만 들어도 아픈데 ‘재연’을 하는 걸 본단 게 참 힘들거든요. 그럼에도 ‘정말 그러셨을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다음 분이 이렇게 얘기해 주시고, 이러 이런 거 해 주시고….’ 이렇게 넘어가야 하는 거죠. 사람들은 다 눈물바다인데, 그리고 나도 바로 여기 눈가까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지만, 그 감정은 완전히 누르면서 ‘너무 귀한 말씀을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해야 돼요. 어떻게 보면 그때 ‘아, 너무 공감해. 정말 힘들었겠다. 하지만 나는 진행을 하고 있는 사람이야. 중심을 잡아야 해’ 이런 마인드를 계속 장착하는 훈련이 된 것 같아요.

11. 그것이 훈련이 되었기에 몰입하는 와중에도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계실 수 있는 거군요. 저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신선했어요. 전 감정에 완전히 젖어 있었거든요. 명파에서 시호님과 있었던 에피소드 중 손에 꼽을 법한 순간들이었어요. 반대로, 시호님 께도 명파 생활 중에 인상 깊었던 포인트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무엇이었나요? 얼마 전에 친구분도 왔다 가셨죠.

네. 생각을 해 보니까 너무 많은데…. 몇 년 전의 나와는 다르게 ‘내 작품을, 내가 하고 싶었던 거를 꼭 이룩하고 가야겠다’는 욕심이 적어진 것에 스스로 조금 놀랐어요. 어쨌든 ‘아트’케이션이니까 작가로서 괜찮은 작품을, 포트폴리오에 넣음직한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은 아마 다들 있을 거잖아요.


저는 어르신들에게 바다에 대한 퍼포먼스를 보여드리려고 했어요. 25분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드리고 함께 바다의 오염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거죠. 그런 작업이었다면 지금까지 제가 해온 작업의 맥락을 잇는 작품은 되었을 거예요. 작업의 맥락이란 게 창작자에게는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12. 그렇게 따지면 이번에는 굉장히 많이 튀신 거네요?

완전히 다른 트랙이에요. 저는 여기가 바다 가까운 데 있고 하니 바다 얘기를 하겠지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지내며 마을 분들에게 받은 게 너무 많아지니,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는 ‘이분들이 행복해할 일’을 하고 싶어 졌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힐끔) 선준작가님 덕분이 큰데, ‘의미’에 관한 생각을 되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어느 레지던시에서는 의미를 덜 생각하고 작업했다는 뜻은 아니고요. 다만, 다른 레지던시에서는 주민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이렇게 많지 않았어요.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의무가 있을지언정 이렇게 매일 지나가다가 만나고 인사하면서 그들의 삶에 푹 빠져드는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었어요.


해양 쓰레기 문제, 물론 중요하지만 사십 여 일을 머무는 제가 할머니들께 “일회용 컵 쓰지 마세요” 하고 계몽하려 드는 건 오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신 느슨하게라도 계속 명파를 찾으면서 할머니들께 바다는 무엇인지, 해녀분들에게 두려움은 무엇인지, 달라지는 바다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등은 오랜 시간을 들여서 귀하게 나누고 싶어요. 아트 씬에서는 “가벼운 거 하네”라고 평가할지라도, 지금 저에게는 이 ‘관계’와 ‘보은’이 더 중요합니다. 그간의 저의 행보엔 해양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삶의 속도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왔잖아요. 이번 작업이 다른 부분들과 꼭 동떨어져 있는 건 아니고 ‘마음과 맛’ 내지는 ‘반기는 마음(환대)과 맛’이라는 다른 섹터가 생길 것 같은 생각이에요.



13. 가볍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시호님은 이 아트케이션에서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와 그들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를 내려놓는 경험을 하고 계시는 거잖아요. 사람들은 ‘카페 차려요!’라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지만, 사실 진행하시는 프로젝트의 의미는 할머니들께서 베푸신 것들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을, 보은을 치환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잖아요. 그리고 ‘속도’ 하니까 정말 와닿네요. 저희가 선물 받은 그 많던 밤을 다 삶아서 파내던 기억이…


그러게요. 아마 개수로 치면 밤을 4-500개는 판 것 같지요?



14. 그럴 거예요. (절레절레) 그러면 시호님의 인상 깊었던 순간은 외부적인 게 아니라 본인의 내면적인 거였네요. 퍽 인상 깊습니다.

맞아요. 어떤 사건이 인상 깊었다기보다는 제 내면에서의 변화가 인상 깊었어요.


15. 성장이라고 하면 또 좋은 의미의 성장이잖아요. 명파에 와서 내가 이런 부분을 내려놓고 이렇게 성장했다가 되니까. 저는 만약에 같은 질문을 받았으면 외부적 사건을 뽑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출 아니면 할머니와의 교류 등을요. 작가님은 스스로의 마음을 바라봤다는 게 신선하네요.

그리고 지금 협업을 하고 계시잖아요. 물론, 여기서는 화자이기도 한 저 버드나무지만. 더 따지고 들어가면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밤을 주시고, 깻잎을 주시고, 채소를 주신 분들과 함께 하는 큰 협업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들 협업에 대해 조심스러운데 그 와중에 진행하신 이 협업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처음에 같이 하게 된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조금 다르긴 해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이유와 의미가 많이 다르긴 한데, 나쁜 쪽은 아닙니다. 단순했어요. 내가 생각하는 ‘은혜를 갚는 행위’를 나 혼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서, 좀 더 양적으로 많은 기쁨을 주고 싶었던 마음이 맨 처음에 있었죠. 그런데 고마운 기회로 저희 둘이 닭강정과 음식들을 들고 함께 할머니 댁에 갔잖아요. 류 작가님이랑 그때 처음 같이 얘기를 한 거예요. 그때 할머니들과 함께 대화하시는 걸 보면서, 굉장히 이야기를 잘 이끄시는구나 생각했죠.


어르신들께 환대를 받았고, 감사하니 ‘나중에 가서 또 좋은 시간을 보내야지’는 있지만, 그거를 굳이 내 작업과 연장해서 발표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 이긴 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류 작가님도 같은 생각을 하셨는지 ‘보은이 퍼포먼스가 될 수 있냐’고 물어보셨죠. 재미있는 시도가 될 것 같았어요. 물론 우리 둘의 작가적 성향이 다르고, 예술 장르도 완전히 다른데 어떻게 보면 저는 좀 성급하게 같이 하자고 한 것도 맞는 것 같고… (웃음).


16. 저에게 불리해지는 것 같으니 이제 마지막 질문을 할게요. 이 모든 것이 관객분들께 어떻게 전달되길 원하시나요? 또 어떤 반응을 일으키길 원하시나요?

저희는 페스타 부스에서 실제로 어르신들께 대접한 음료+ 다과 세트를 재연할 거예요. 그래서 ‘참여형 퍼포먼스’라고 이름이 붙었죠. 하지만 가장 바라는 건, 외부 관객뿐만 아니라 함께 한 동료 작가님들, 그리고 마을 분들에게 이 마음이 전해지는 거예요. 저희가 매번 어르신들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하는 ‘소용’과 ‘쓸모’의 고민도 작가님들과 함께 더 깊게 나누어 보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요. 쉽진 않겠죠.


하지만 우리가 페스타 때 만날 사람들 중 비단 몇 명에게라도, 우리가 할머니들께 받은 환대에 느꼈던 따뜻함과 감동, 그리고 그에 대해 보답하고 싶었던 저희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환대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훗날 할머니들이 저희를 “아, 그때 그 밤으로 만든 우유 같은 거랑 옥시시 커피 가져왔던 애들”이라고 기억해 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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